엇갈리는 입장 사이에서
의회에서 일하다 보면 종종 민원을 가지고 찾아오는 시민들을 만난다.
금전적인 이익을 위해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무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기까지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일하는 지역은 원래 농촌에 가까웠지만 현재 빠르게 도시화되고 있다.
오래 거주한 원주민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옛 건물들과 골목 풍경 등
지역의 역사를 보여주는 소소한 것들을 지키고 싶어 하셨다.
남들 눈에는 별 것 아닐 수도 있고 보존 가치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자신의 삶과 추억이 담긴 공간이었고
이를 활용하여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거나 관광이 활성화되기를 원했다.
반면, 개발을 원하는 사람들은 혹시라도 땅을 파다가 문화유산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다.
문화유산이 나오고 추가발굴을 해야 한다는 결정이 나오면 개발이 늦어지는 건 물론이고 주변 지역까지 건축 제한이 걸릴 수 있다. 토지나 건물 소유자들이 그런 입장을 취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그나마 등록문화재나 향토유산 등으로 지정되면 제도적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양쪽의 이해관계가 충돌했다. 하지만 부동산이 계속 오르고 있는 수도권에서는 개발을 원하는 쪽이 이기기 마련이었다.
어느 날, 지역의 역사가 지켜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의회를 찾아왔다.
개발과정에서 사라지고 있는 근대건축물을 시가 매입해 리모델링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무원들이 왜 이리 소극적이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나 역시 한때 도시재생에 관심이 많았기에 그들이 어떤 마음인지 심정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 건물들과 토지의 가격은 이미 너무 올라서 의원 1명이 나선다고 해결될 수준이 아니었다.
건물주 역시 보존보다는 개발과 보상을 원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 정도 금액이라면 단체장이 공약으로 내세울 정도는 되어야 현실화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공무원들이 소극적이었던 이유도 이해가 된다. 자기가 책임질 수 없는 것, 실현 가능성이 낮은 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결국 또 다른 희망고문이 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의원은 선뜻 정책토론회도 열고 관련 조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이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공론장을 열어준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실무자 입장에서는 법적인 근거도 없는데 조례를 만들 수 있을까?
아니. 조례를 만든다고 해도 시장이 그런 사업을 하지는 않을 텐데.
그런 생각들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의원이 자기를 도와주니 뭔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내심 기대할 지 모른다.
의원 역시 그들의 주장에 공감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례를 만들었다는 성과를 과시하고 표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엿보였다.
개발과 보존, 재산권과 누군가의 추억 혹은 공무원의 조심스러움과 의원의 적극성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답은 없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그럴 수밖에 이유를 갖고 있었고 누구의 편도 들기 어려웠다.
의회에서 일한다는 건, 첨예한 갈등 사이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