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쓸모
몇년 전, 넷플릭스에서 나온 <나는 신이다>라는 다큐멘터리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나도 호기심에 보기 시작했지만 끝까지 볼 수 없었다.
그들이 왜 그렇게 빠져들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나 역시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말도 안되는 이단과 사이비에 빠지는 걸까?'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하지만 사랑받지 못해 마음이 약해질 때, 스스로를 믿을 수 없거나
앞으로의 미래가 막막할 때 사람은 누구나 의지할 곳을 찾는다.
나 역시 그랬다.
부모님께 원하는 사랑을 받지 못하면서
스스로를 '문제(죄)가 많고 사랑받을 수 없는 아이'라고 인식했다.
그런 나에게 교회가 주는 메시지는 강렬했다.
부모님도 온전히 품어주지 못하는 나,
내가 원하지 않아도 죄를 짓게 되는 나를 위해 신이 직접 죽기까지 하셨다.
그게 열다섯 살의 나에게는 얼마나 감동적인 이야기였는지 모른다.
중학교 3학년 때 침례를 받으며 나는 결심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신을 위해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그 무렵의 나는 꽤 반항적인 학생이었다.
부모님과 선생님, 나를 통제하려는 어떤 권위도 거부했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학교에서는 자율학습 동의서를 돌렸다.
형식은 자율이었지만 사실상 강제로 방학 내내 학교에 와서 자율학습을 하라는 요구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동의안함'에 체크했고 방학 내내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런 내가 교회와 관련된 일에는 절대적으로 순종했다.
생물 시험에 진화론 문제가 나왔을 때, 거리낌 없이 창조론으로 답했다.
수학여행과 부활절 성가연습이 겹쳤을 때도, 고민 없이 수학여행을 포기했다.
그때는 그것이 옳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달라졌다.
아기를 낳고 출산휴가로 집에 머물 때였다.
하루종일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면서 집에 아기랑 갇혀있는 듯해서 너무 힘들고 외로웠다.
그때 동네엄마들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친절하게 나에게 연락하며 이것저것 호의를 베풀었다.
그러던 어느 날, 특별히 일주일에 두 번씩 우리 집까지 와서 일대일 성경공부를 해주겠다고 했다.
아기를 데리고 외출하기도 어려웠던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처음에는 고마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성경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떼어내서 끼워 맞추는 느낌이랄까?
대화는 점점 논쟁이 되어갔고 고민 끝에 나는 더 이상 성경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이단과 사이비에 대한 책에서 그들에게서 들었던 것과 동일한 성경해석을 발견했다.
그제서야 그들이 처음부터 의도를 가지고 나에게 접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단과 사이비는 외롭고 불안한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씩 파고들면서 '의심하면 안 된다'는 자물쇠를 채운다. 다행히 나는 의심했기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중학생 때의 내가 그들을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맹목적인 믿음은 그래서 위험하다.
믿음이란 신앙에 대한 질문이나 의심을 부정하며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다.
나는 무엇을 믿는가? 왜 그렇게 믿게 되었는가?
끊임없이 질문하고 현실과 부딪치며 성찰하는 가운데 진정한 믿음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