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선악을 판단할 것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년 수련회에 갔지만 기억에 남는 설교는 하나뿐이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했고, 휴거를 주장했던 다미선교회 사건이 있었다.
같은 해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라는 책도 나왔다.
그해 여름수련회에서 나는 저자의 강의를 처음 들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타락하지 않은 대중문화는 없었다. 내가 좋아하던 마이클 잭슨, 조지 윈스턴, 야니의 음악들은 물론, ET같은 스필버그의 영화까지도. 그야말로 성경에 기반한 CCM이나 찬송가, 오래전에 만든 <십계>나 <벤허> 같은 영화를 제외한 모든 것이 악에 물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서태지의 노래를 거꾸로 들려주기도 했고 <엑소시스트> 영화 중간중간에 숨겨진 악마의 얼굴을 보여주기도 했다. 미국 하드록 밴드 KISS의 앨범재킷에 번개처럼 묘사된 'S'를 보며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는 성경 구절과 연결시켜 사탄의 노래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미 답을 정해두고 끼워 맞추기 식의 주장을 한 것이었지만, 그때는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그전까지 스멀스멀 올라오던 의심들이 이런 세상의 악한 문화 때문이었나?
나도 모르게 타락해가고 있었다는 두려움에 혼란스러웠다.
그 무렵의 나는 오직 기독교만이 옳고 성서는 오류가 없다고 믿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하나만 알 때는 그게 전부인 줄 안다. 그래서 그가 대표로 있는 출판사의 잡지도 챙겨보았고, 심지어 대학교에서는 '세상의 문화를 기독교세계관에 맞춰 변화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문화사역론 강의를 듣기도 했다.
창세기는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는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선과 악, 신과 악마, 기독교와 다른 종교.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면 참 간단하고 쉽다.
하지만 세상은 흑과 백 사이의 회색이 더 많다.
어쩌면 선악과의 이야기는 선악을 판단하는 하느님처럼, 인간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은유적 표현일 지도 모른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기에 때로는 그 판단이 타인을 향한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기독교에서 파생된 온갖 이단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한때 아무 의심 없이 믿었던 내 모습이 겹쳐지면서 마음이 복잡하다. 그들 역시 그때의 나처럼 내가 믿는 것 외에는 모두 거짓이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할 수만 있다면 그때의 부끄러운 기억들을 모조리 지우고 싶다.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저금 듣는 설교가 정말 성서에 입각하고 있는가?
누군가 자신의 말을 하느님의 뜻인 것처럼 강요하지는 않는가?
이제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니라 이런 의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