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특별하다.
가스라이팅하는 사람들은 처음에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 다가와서는 상대방을 자신에게 종속시킨다.
부모님께 원하는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던 나에게 교회는 따뜻한 위로를 주는 공간이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게 믿었다.
어릴 때 작은 동네교회를 다니던 나는 초등학생 4학년 때 엄마를 따라 대형교회로 옮겼다.
엄마는 그 교회의 말씀이 좋다고 했다. 작은 교회에서는 누가 얼마나 헌금을 내는지 주보에 표시하고 십일조와 건축헌금을 독려한다. 하지만 그곳은 교인이 워낙 많았기에 헌금 때문에 눈치볼 필요가 없었다.
주일학교에 처음 갔을 때 봤던 어린이 성가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단정한 가운과 질서 정연한 모습, 찬양할 때 조명을 받아 빛나는 아이들.
하지만 학년마다 천 명이 넘는 교회였기에 성가대에 들어가려면 오디션을 봐야 했다.
5학년 성가대의 정원은 총 100명이었고 지원자는 거의 200명에 달했다.
합격통지를 받았을 때 나는 선택받았다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선택받았다는 감동 때문에 나는 오랫동안 성가대를 떠나지 못했는 지도 모른다.
1990년대 초, 사회 곳곳에는 어디나 불합리한 체벌과 폭력이 만연했다.
가정폭력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고 아이들은 '사랑의 매'로 다스려야할 존재였다.
문제는 내가 속해있던 성가대에서도 그런 문화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선생님 혼자 100명의 어린이들을 통제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연습 중 몇 번을 조용히 하라고 경고해도 아이들은 잠시 사그라들었을 뿐이었다.
소곤대던 목소리는 조금씩 커졌고 도저히 연습을 이어갈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
선생님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모두 일어서!"
선생님의 화난 얼굴에 놀라 아이들이 쭈뼛쭈뼛 일어섰다.
한 줄에 10명씩 줄을 세워 어깨동무를 하고 구령에 맞춰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앉았다 일어나는 게 언뜻 들으면 쉬워 보이지만 합이 맞지 않으면 맞을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해야 했다.
아이들이 힘들어서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면 "정신력이 부족하다! 똑바로 안해!"이런 식으로 윽박질렀다.
연습할 때 떠드는 것 외에도 예배시간에 졸거나 목사님께 제대로 인사를 안한다는 등의 이유로 종종 그런 일을 겪었다.
한 번은 기합을 받던 중 어떤 아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저 화장실 가고 싶어요"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냉혹했다.
"넌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냐? 조금씩 싸서 말려!"
파도타기 뿐 아니라 오리걸음, 쪼그려 뛰기, 엎드려뻗쳐.
그렇게 기합을 몇 번 받고 나니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두려움에 길들여졌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가대"이기에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시련으로 정당화되었다.
예배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일반병사라면,
성가대는 그 중에서도 특별히 선발된 특수부대같은 존재였으니까.
그렇게 기합을 받은 후,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감사하는 찬송가를 연습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가끔씩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어떤 날은 '나는 선택된 성가대니까 이 정도 힘든 건 참고 순종해야지. 우리가 잘못했으니 이 정도 벌을 받는 게 당연해'라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다른 날은 '아무리 그래도 하느님을 믿는 교회에서 이렇게까지 체벌을 받아야 되나?'싶었고 화가 났다.
이미 집에서도 정서적 학대를 받았기에 교회에서만큼은 쉼을 기대했다.
그런데 이제는 여기서도 폭력을 당하고 있다.
성가대를 그만두고 싶다가도
"내 믿음이 부족한 게 아닐까?
난 왜 다른 아이들처럼 순종하지 못할까?"
그런 생각에 나 자신이 싫어지고 죄책감이 들었다.
지금은 사회가 많이 달라져서 아이들에 대한 신체적 체벌이 명백한 폭력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교회 안에는 여전히 문제제기를 억압하고 가스라이팅하는 방식이 남아있는 것 같다.
봉사나 성경공부 등을 하지 않으면 믿음이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분위기,
주일성수나 십일조, 각종 헌금을 강조하는 설교,
교회나 목회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주의 종을 네 마음대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들.
내가 노력해도 어차피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다는 무력감.
그런 것들로 인해 나 같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조용히 교회를 떠나는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