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 광화문에서
2026년 삼일절은 주일이었기에 평소와 다름없이 광화문에 있는 교회를 찾았다.
원래 가고 싶을 때만 교회 가는 편이지만,
사순절만큼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되도록 예배에 빠지지 않으려 한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오니
윤어게인, 민주당 해산, 중국공산당과 차별금지법 반대를 외치는 시위대가 거리에 가득했다.
태극기와 성조기, 그리고 이스라엘 국기를 든 그들은 '아스팔트 세력의 결집'을 외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그들을 극우라 부르지만 그들 스스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자유우파'로 정의한다.
집회에서 나오는 찬송가 소리를 통해 그들 중 상당수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07년 전 삼일절, 그날은 어떤 일이 있었나?
감리교신학대 은퇴교수 이덕주의 글에 따르면
1919년 3.1 운동 당시 우리나라의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1.5%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의 민족대표 중 개신교인은 16명으로 거의 절반에 가까웠다.
이들은 개인의 구원을 넘어 민족의 구원을 꿈꿨다.
이스라엘 민족이 신의 도움으로 이집트의 압제에서 벗어났던 것처럼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천도교(15명)나 불교(2명) 등 다른 종교와 기꺼이 손을 잡고 대화하며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조선 후기 박해로 인해 조선총독부와 협력적 관계를 유지했던 가톨릭과 달리, 개신교는 YMCA나 노회, 기독교 기반 학교 등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항일운동을 펼쳤다. 유관순 열사와 화성 제암리 교회에서 보듯이, 그들은 죽음을 불사하며 불의에 맞섰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무엇인가?
지금 광화문에 나온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시위를 하는 것일까?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무슨 의미일까?
1919년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개신교인들은 부당한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하고자 싸웠다.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존엄과 국권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들은 종교의 경계를 넘었고 자신의 신앙을 민족의 고통과 분리하지 않았다.
그들이 외친 자유는 억압받고 고통받는 이들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에 비해 지금 광화문에 나온 이들이 말하는 '자유'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것은 어쩌면, 권력자가 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권한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자유,
혹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혐오할 수 있는 자유,
헌법 위에서 국가의 질서를 뒤흔들 수 있다는 자유가 아닐까?
돌을 드는 손과 구원하는 손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성경에 근거하기에 신의 뜻이라고 굳게 믿는다.
사회주의는 신을 부정하며 동성애는 성서에서 죄라고 규정한 것이니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율법을 어겨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던 여인을 구해주셨다.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녀를 정죄한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하셨던 말씀이다.
그들은 성서에서 동성애에 대한 말씀은 보면서도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라고 하신 말씀은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자유라는 단어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혹은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그들을 모른 척하고 넘어가기에는 영향력이 계속 커지고 있는 것 같아서 두렵다.
같은 종교를 믿고 있지만 이토록 다른 세계에 서 있는 그들을,
나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신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지만 도무지 그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아니. 그게 가능하긴 할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