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반대시위를 보며
지난주, 국회에서 3일간 교육을 받았다.
아직 벚꽃 시즌은 아니었지만 산수유와 목련이 피어있었다.
국회 안의 카페에서는 한강이 내려다보였고,
다른 의회에서 일하는 옛 동료를 만나 오랜만에 담소를 나누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여의도는 나에게 고향과 같은 곳이다.
여의도중학교를 나왔고 학창 시절 내내 다녔던 교회도 국회 앞에 서 있다.
거기서 성경구절을 외웠고 침례를 받았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곳이지만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오랫동안 가지 않았다.
예배 시간, 기도를 할 때면 '북한의 저 악한 공산주의가 무너지게 해 주옵시고' 그런 구절이 나오곤 했다.
학교에서는 반공교육을 받고 반공포스터를 그리던 시절이었다.
교과서에는 북한 공비에게 살해당한 이승복 어린이의 이야기가 실려있었다.
그때 교회는 신을 부정하는 공산주의를 미워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미움의 대상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울의 한 구청에서 일할 때였다.
인권 담당 직원이 도무지 일을 할 수가 없다며 답답해했다.
차별금지조례가 만들어져야 인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데 지역 교회들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된다는 것이었다. 차별금지법 역시 같은 이유로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오랜만에 국회에 갔을 때도 차별금지법 반대 시위가 한창이었다.
피켓에는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옹호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결사반대한다고 쓰여있었다.
물론 성서에는 동성애가 죄라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성서에는 분명 금지되어 있음에도, 오늘날 거의 지켜지지 않는, 수많은 규정들이 적지 않다.
구약의 레위기에 따르면 돼지고기와 새우, 조개를 먹을 수 없다.
모세오경을 엄격하게 지키는 정통유대교인들은 안식일에 노동은 물론, 가스불을 켜는 것과 전기 사용까지도 금지된다. 그런 이유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던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의 비판을 받았던 것이다. 신약에서도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하고 머리에 수건을 쓰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규정들을 문자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어쩌면 교회가 시대적 흐름 앞에서 방향을 잃어갈 때, '동성애'라는 공동의 적을 설정하여 내부 결속을 유지하려는 것은 아닐까?
동성애를 정신병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미 미국정신의학회는 1973년, 세계보건기구는 1990년에 동성애를 질병 목록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동성애를 치료해야 할 병으로 인식하고 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남편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사람을 사랑해야 할 교회가 성소수자, 이슬람, 중국을 혐오하는 모습.
예수님이라면 과연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은 세리와 창녀들과 함께 식사하실 때 종교지도자들이 비난하자 의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을 위해 왔다고 말씀하셨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멸시하던 사마리아로 일부러 들어가셔서 다섯 번이나 남편을 바꾼 여인과 대화하셨다. 지금 시대에도 5번이나 결혼한 여자는 손가락질받는데 그때는 오죽했을까? 경계 밖에 있는 사람들을 배제하지 않고 먼저 다가가는 것이 예수님의 방식이었다.
예수님을 따르는 그들은 왜 스스로를 의인이라 여기며 누군가를 밀어내는지, 예수님이 정말 그걸 원한다고 믿는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