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기 싫은 이유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by 꽃피랑

요즘은 주일에 교회 가기가 싫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광화문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탄절이 다가오는데 교회에 가야지. 생각하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시청역에 내리면 전광훈 목사의 설교소리가 들린다.


그와 나는 같은 성서를 보고 같은 찬송가를 부른다.

하지만 그는 중국과 이슬람, 현 대통령을 혐오하고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서 그들만의 결속력을 다지는 듯한 느낌이다.

몇 년째 그는 지치지도 않고 주일마다 광화문으로 나오고 있다.

이제는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화가 나서

교회 의자에 앉자마자 하느님에게 속으로 따졌다.


'하느님도 나한테 꼼짝 못 한다며 모독하는

저 사람을 언제까지 그냥 놔두실 겁니까?

하느님이 계시다면 뭔가 심판을 하셔야 되는 거 아닌가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거다.

신이 있다면 왜 선한 사람이 고통받고 악한 사람은 아무 일 없이 잘 사는가?


어제 설교주제였던 세례 요한도 그랬다.

그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다가 춥고 어두운 감옥에 갇혔다.

반면, 폭군인 헤로데는 호화로운 궁전에서 권력을 누리고 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아가 나타나서 기존의 권력층을 심판하고 자신을 감옥에서 해방시켜 줄 거라고 믿지 않았을까.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지 않았고 애가 탔던 세례 요한은 제자를 보내 묻는다.

'당신이 진짜 메시아가 맞나?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되나?'


세례 요한도 예수님을 의심했구나.

갑자기 나와 광장에 있던 그들이 묘하게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중국인을 혐오하는 것처럼 나도 그들을 혐오했구나.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아예 말하려 하지도 않았구나.

심지어 나는 나 자신조차 마음에 안 들고 화가 나서 파괴하려 할 때가 있다.


어쩌면 나는 그들에게서 내 안에 있는 악을 보고 증오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신의 관점에서는 그들이나 나나 똑같이 이기적이고 악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지.


결국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생각한 방식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에서 멸시받던 죄인과 세리, 창녀와 밥을 먹고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었다.

그 결과, 세례요한은 결국 감옥에서 죽었고

예수님 역시 십자가에서 죽었다.


상식적인 눈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다.

이래서야 뭐가 달라진다는 건가.

이런 희생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지만 이처럼 오래 참고 사랑을 사랑하셨기에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매주

회에 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감명을 받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 역시

그의 길을 따라 나 자신과 그들을 심판하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하려 노력하겠다는 다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몸과 마음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마음을 바꾸면 부자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