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이후의 종교
외국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가장 신기해하는 풍경으로 높게 올라간 아파트들과 수많은 교회를 꼽을 수 있다. 일본이나 중국, 대만 등 다른 동아시아 나라들은 기독교의 비중이 높지 않은데 우리나라는 유독 교회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나 역시 기독교인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가 점점 조심스러워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상당수를 차지했던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왜 이리 나빠지고 있을까?
서울대 종교학과 성해영 교수가 쓴 '종교 이후의 종교, 내 안의 엑스터시를 찾아서'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오랜 기간 종교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나침반이었다.
종교적 신념은 지금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높은 이상을 가지고 실천하거나 깨달음에 정진하고 윤리적 행동을 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확산된 것도 유교의 남녀차별과 신분계급 등 기존의 질서를 깨고 사회의 대안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관순뿐 아니라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서양 선교사의 영향력 하에 있는 교회를 통해 일본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을 했고 복지나 교육사업 등에 매진해 왔다. 그런 희생을 통해 지금의 한국 기독교가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기독교가 사회개혁을 추동하고 문제를 해결하던 흐름이 바뀌었다. 오히려 사회가 한국 기독교를 걱정하고 우려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출생이 감소하고 교회로 유입되는 신자들이 줄어들었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기독교는 수많은 종교의 하나일 뿐이다. 문제는 교회가 이에 대한 대안을 합리적으로 모색하기보다는 동성애자, 무슬림, 불법이민자 등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의 연대를 공고히 하고 자정의 목소리를 억눌렀다는 것이다. 그러한 행동의 근거로 성서를 내세우며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제는 아예 정치적인 행동과 교육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책에서는 지성적, 윤리적, 명상 수행의 균형을 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내 소원을 이루어달라는 유아적 형태에서 나아가 내 존재의 깊은 차원을 깨닫고 나의 정체성을 넓히고 교리를 유연하게 해석하는 심층적인 발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기독교 내부에 있는 나로서는 매우 공감이 가는 주장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회에서는 성서가 어떻게 쓰였는가? 이게 정확히 어떤 맥락에서 쓰인 것이고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직 목사나 사제가 해석한 대로 믿고 그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비중이 훨씬 높은 편이다.
비종교인은 늘고 있지만 템플스테이나 명상 클래스,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었다. 예전에는 정해진 순서대로 대학을 나와 취업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다면 지금은 평생직장이란 공무원이나 선생님을 빼고는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고 거의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나 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것은 엄청난 기회인 동시에 나만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마음의 위안을 원하지만 종교가 이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이자 내면에 불성이 있으며 다른 사람 역시 그러하므로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지금, 여기에서 실천해야 하는 것을 해답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내가 어떤 것에 기쁨을 느끼는지 찾고 이를 키워가면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타인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고 그릇된 길에 빠지지 않기 위해 지적, 윤리적 수행도 수반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위해 종교가 다시 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