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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연 Nov 11. 2024

흰 운동화가 좋아졌다


무슨 색을 가장 좋아하세요?



이젠 흰색이라 답한다. 운동화도 새하얀 것을 신기 시작했다. 신발 빠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면 꽤나 큰 도전이다. 


물건을 흰색으로 구입한다는 것은 '나는 그것을 자주 세탁할 준비가 돼 있는가'라는 질문에 감히 'YES'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다 흰옷에 김치 국물이 한 방울 튄다고 상상해 보라. 아마 바로 물티슈로 옷감을 비비며 한숨을 쉬게 될 것이다.


옷에 잡아먹히면 안 돼. 아무리 좋은 옷이어도 사람이 먼저여야지.


어머니는 말했다. 사람이 먼저다. 옷이 먼저가 아니라! 그래서 검은 운동화만 신었다. 절대 빨지 말아야지! 


하지만 또다시 어머니의 말을 거역하고 만다. 흰 운동화를 구입하다니. 심지어 그 운동화는 신발 끈도, 가죽도 하나 없는 진짜 완전한 흰 천으로 되어 있단 말이다. 


예상은 전혀 빗나가지 않았다. 얼룩 한 번에 가슴이 철렁였다. 괜히 걸음도 조신해진다. 비 오는 날의 물웅덩이는 근처도 가지 않는다. 운동화에 잡아먹히고 만 것이다.


그렇게 2 주가 지났을까. 산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아이보리 운동화로 변해 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검은 얼룩은 마치 잿자국을 온 얼굴에 묻힌 어린아이가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외치는 것 같다. 


"저 좀 씻겨 주세요!"


그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냥 검은색으로 살 걸 그랬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신발장을 열었지만 다른 운동화는 없다. 이 운동화를 사며 모든 운동화를 버렸기 때문이다!(도대체 무슨 비장한 마음으로 이 운동화를 산 것이냐)


도살장에 끌려가는 마음으로 운동화를 화장실로 데려갔다. 구석에 처박혀 있던 빨랫비누를 철푸덕 앞에 던져 놓고 쭈그려 앉아 신발 빨래를 시작한다. 몇 년 만에 손으로 운동화를 빠는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렇게 벅벅 비누를 칠하고 있을 때쯤. 음, 이상하게 쾌감이 올라온다. 때가 벗겨지는 것이 실시간으로 보인다. 흰 운동화라 그런가. 다 빨고 나서 보니 비포 애프터가 확실하다. 오, 마르니 더 하얘졌다! 


다 마른 신발을 보니 변태 같은 쾌감이 몰려온다. 이야,,, 드디어 흰 운동화를 책임질 줄 아는 어른이 된 것인가!


그렇게 1년. 지금껏 다른 운동화는 사질 않고 있다. 심지어 이 아이와 함께 하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다가 발견하고야 한다. 이름하여 '자동 세척 솔'. 마치 전동 칫솔처럼 빨래 솔이 자동으로 돌아간다. 덕분에 이 아이와는 더없이 행복한 신혼 생활을 보내고 있다.


마음도 다르지 않다.



마음에도 흰 마음과 검은 마음이 있다. 상처를 투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흰 마음. 상처를 받아도 난 괜찮다며 밖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고 숨기는 검은 마음. 


검은 마음은 편하다. 들여다 볼 필요가 없다. 살아가는 데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 


흰 마음은 왠지 부담스럽다. 조금만 상처가 나도 제발 자기를 들여다봐달라고 애원을 한다. 신경 쓸 일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흰 마음이 좋다. 자신의 얼룩을 그대로 보일 줄 아는 용기가 자랑스럽다.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했나. 그렇게 드러내는 아이일수록 더 들여다보게 된다. 왜 그러니? 무슨 일이 있었니?


편한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을 들고 살아가는 자가 무엇을 느끼는가.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솔직할 줄 아는가. 뭐 그런 것들. 


그리고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것도 스킬이 생긴다. 마치 내가 자동 세척 솔을 발견한 것처럼... 편하고, 빠르게 다시 새하얗게 돌아가는 나만의 지름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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