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에 입원한 아이들을 상대로 요가와 체육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처음엔 요가를 가르치려고 시작한 일이지만,
아이들과 가까워질수록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방향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모두 함께 몸으로 소통하는 것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제는 요가 수업이 아니라 '놀이 수업'이 되어 가는 현장을 발견하며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과 '그래 이거지' 하는 자부심을 동시에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고충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이들의 갈등입니다.
게임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에 마구잡이로 공격을 하기도 합니다.
혹은 몸을 조절하지 못해 옆에 있는 친구를 발로 차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교사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중재를 하고, 상황을 무마시킵니다.
문제는 아이들의 감정까지 교사가 해결해 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수업 도중 또다시 들려오는 분노의 소리.
"너 왜 내 물건 밟아!"
게임을 하다가 행동이 격해진 나머지 아이들이 한 아이의 물건을 밟고 만 것입니다.
또다시 시작된 분노.
이번에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감정이 아이에게 찾아온 것 같았습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욕을 하고, 책상을 내리치는 행동은 저조차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래, 아픈 아이들이니까.
우선 감정을 흘려보내고 다시 놀이에 집중하게 만들자.
하지만 더 이상은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이대로 또 달래주었다간 이 아이가 커서 정말 큰일 날 수도 있겠다는 직감이 스쳐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처음으로 저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네가 많이 힘들었구나.
그런데 선생님도 이 수업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는데
매 수업마다 이렇게 화를 내니 선생님이 너무 속상해...
이렇게 제 감정을 이야기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분노에 차 몸을 부들부들거리고
오히려 자신의 억울함을 쏟아내기에 바쁘더군요.
저도 기분이 상했습니다.
수업을 망친 것도 모자라 내 감정도 이렇게 무시하다니...
하지만 더 이상 이 아이에게 제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심코 던진 한 마디.
"네가 그 물건을 너무나 사랑했구나.
네가 사랑이 많아서 그래..."
그때였습니다.
아이가 반응하기 시작한 것은.
갑자기 아이의 눈빛이 달라지며 눈물을 터뜨리기 시작합니다.
엄마 아빠 주려고 만든 건데...
이거 엄청 소중한 거란 말이에요...
아이는 또다시 자기의 억울함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보았습니다.
그 순간 달라진 아이의 눈빛을...
분노라는 감정 속에 숨겨져 있던
자신의 진짜 마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
자신도 어찌할 줄 몰라
그저 분노로, 억울함으로만 포장되었던 아이의 진심.
아이 앞에서 표현하진 못했지만
순간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겨우 중학교 1학년 아이가,
마음이 아프다는 이유로
엄마 아빠도 보지 못하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그 외로움, 쓸쓸함
그것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사건 이후,
새로운 수업 시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게임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2주가 흘렀을까요.
갑자기 아이가 저에게 줄 것이 있다더군요.
그리고 건네준 편지.
그 안에는 '자신이 미안하다. 앞으로는 화내지 않겠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습니다.
아뿔싸,
생각해 보니 그날 이후
이 아이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던 것을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놀랍게도 아이는 제가 말한 것을 다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
그것 때문에 우리는 분노하고, 슬퍼하고, 다투기를 반복합니다.
그것이 있다면, 우리는 분노할 필요도, 슬퍼할 필요도, 다툴 필요도 없어집니다.
저는 이 아이를 통해
우리 모두가 지닌 그 마음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p.s.
오늘은 아버지의 두 번째 기일입니다.
그에게도 누군가의 사랑이 있었다면,
조금은 다른 죽음을 맞이하진 않았을까,
그렇게 수없이 되뇌인 시간도
벌써 2년이 되어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