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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로서 한국어 교육 석사 논문 심사날.

인생의 가장 기뻤던 추억 

누군가 내게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어떠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나의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을까? 내 나이 37 중간중간 아주 많은 행복과 슬픔 그리고 좌절이 있었겠지만, 딱 하나를 고르자니 쉽지 않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유학을 가서 5년을 살았다. 그때는 중국이 제2의 고향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멕시코에 온지 8년 차. 결혼 후 2년 반 만에 멕시코에 와서 결혼 10주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이곳이 나의 제 2고향이 된듯하다. 멕시코에 와서도 참 많은 일들이 일었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바로 대학원 논문 심사 날이 아닐까.



2017년 1월 어느날 새벽,, 난방시설이 없는 멕시코 겨울의 새벽은 언제나 차가웠다. 하지만 그날은 정말 중요한 날이라,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새벽 3시, 아직은 깜깜한 밤. 아무도 깨어 있지 않는 그 밤에 나는 컴퓨터 앞에 긴장한 체로 앉아 있었다. 곧 이어 교수님들이 등장하시는 모습이 모니터로 보였고, 나의 심장은 곧 터질 것처럼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새벽 3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새벽이서 그랬을까 내 심장 소리가 너무 커서 내 귀에까지 들리는것만 같았다. 바짝 긴장해서 앉아 있었는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화면 넘어 마이크 넘어 논문 심사가 시작 되었다. 나는 긴장했지만 준비한 원고를 가지고 발표를 했다. 제발,,제발,, 이 발표가 나의 마지막 발표이기를 바라며,,, 다시는 이 과정을 겪고 싶지 않다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간절한 마음을 다해 발표를 했던 거 같다. 수없이 수정을 거친 나의 논문, 솔직히 잘 쓰고자 하는 마음 보다는 일단 통과만 하자는 마음이 컸기에, 떨렸고 긴장되었다. 정말 이 논문지옥에서 탈출 하고 싶었다. 준비한 발표는 모두 끝났고, 나는 화면 넘어 이어진 교수님들의 회의를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곧 교수님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화면 넘어 들려왔다.

“ 김소현 선생님 일단 정말 수고 많으셨고 지난번 보다 훨씬 좋아졌네요. 여기 여기 부분만 수정하면 더 좋아질 거 같아요. 그래서 통과 입니다!!” 휴~ 새벽 5시 나는 3년간의 긴 마라톤을 마친 듯 합격이라는 통보를 받고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연신 교수님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꾸벅꾸벅 했었다. 아, 이렇게 하나를 끝내는구나. 내 인생에 다시 없을 긴 여정이었다. 논문 심사가 끝나고 바로 남편한테 달려가 기쁜 소식을 알렸다. “나,, 통과야, 나 통과라고!!!” 남편의 담담한 축하 한 마디 “축하해 마누라” 이런,,, 너무 기쁜데 이 기쁨을 형용할 수 있는 표현이 몇 개 없음에 잠깐 당황했지만, 너무 기뻤고 그날의 아침 공기는 더 상쾌한 거 같고 이곳에서 다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 마저 생기는 그런 아침이었다.


나는 이곳에 와서 온라인으로 외국어로서 한국어 교육 석사 학위를 받았다. 처음엔 이곳의 심심함을 달래려 시작했던 공부가 지금의 내가 이곳에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온라인으로 공부를 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 시차가 달라 새벽 3시 기상은 다반사고 이제 막 태어난 백일둥이 둘째를 허리춤에 끼고 수유를 하면서 화상 세미나에 참석 했고, 일상을 살면서 수많은 논문들을 읽어가며 수업을 듣고 소논문을 쓰고 세계각지에 있는 선생님들과 만나 합동과제를 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했는지,,, 참,,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할거 같다. 내 인생에 논문이라니, 처음부터 자신이 없었지만, 써야 했다. 매일매일 컴퓨터를 끌어안고 내가 이걸 왜 시작해서 이 고생을,,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하겠다고 온라인으로 대학원이냐 하면서 후회하기를 몇 만 번 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꾸역꾸역 쓰니 하얀 화면 가득 100페이지가 넘는 글이 써졌고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통과까지,,, 장장 3년의 시간이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 시간들을 통해 나는 이곳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고 버틸 수 있었다.

때로는 엄청 고되고 힘든 일이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곤 한다. 나에게 대학원 공부는 그런 과정이었다. 이곳에서 살기 위한 몸부림. 덕분에 지금 나는 행복한 한국어 교사로 잘 살고 있다. 그때 이 과정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해외 생활 중 가장 기뻤던 일을 꼽으라면 바로  외국어로서 한국어 교육 석사 논문 심사를 받는 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외국어로서한국어교육 에 관심 가시지신 분들이 재미있게 읽어 주시면 참 좋겠다 생각하며,, 부끄럽지만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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