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이었다.
캠핑장에서 아이들은 물총놀이를 신나게 하고 있었다.
카라반 연결고리에 씌워둔 덮개 쪽으로 아이들이 물을 뿌리는데, 벌이 한 마리 날아서 들어갔다.
아이들은 벌이다, 벌이다 하면서 덮개에 물을 계속 뿌려댔다.
남편은 이상하다 하면서 얘들아 저리 가, 하고 덮개를 살며시 들어 올리려는데, 말벌 한 마리가 나오더니 눈 깜짝할 새에 남편 다리를 쏘았다.
"앗 따거. 벌에 쏘였어."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남편의 안위에 대한 궁금증은 전혀 들지 않았고, 그 옆에 서 있는 아들에게 돌진해서 아이를 들어 안고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이호야 괜찮아? 벌 안 쏘였어?"
"응 나는 괜찮아."
휴, 다행이다.
남편은 벌에 쏘인 오른쪽 발목을 들어 올리며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덮개 아래에 아무래도 벌집이 있을 것 같아. 벌이 몇 마리 나오는데?"
"아이고, 무서워. 어떡해. 빨리 없애줘."
"나 벌 쏘였어."
남편이 벌에 쏘였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인지하고 살짝 미안한 마음에 괜찮냐고 형식적으로 물어봤다.
혹시 아이가 벌에 쏘였다면 아마 병원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남편이 벌에 쏘인 것에 대해 어떻게 처치해야 하는지 인터넷 검색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벌에 쏘일 수도 있지, 안 죽어 안 죽어. 뭐 이런 생각을 안일하게 했다.
다행히 벌집은 캠핑장 이웃들의 도움으로 에프킬러 한통을 다 써서 제거했다.
그리고 남편이 벌에 쏘인 상처에도 이웃분이 연고를 발라주셨다.
다음날 출근한 남편은 계속 통증이 있어서 병원에 가서 처치를 받았다고 한다.
나는 남편이 벌에 쏘인 일이 별로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했다.
남편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적어도 그래 보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내 기억 속에 남아서 가끔 생각나게 했다.
남편과 아들을 대하는 나의 온도 차이.
당연한 것이라는 자기 합리화와 남편에 대한 미안함이 교차한다.
지난 명절에 남편의 외가 친척들이 모였다. 시어머님께서 혼자 사시는 집에 무엇인가 고쳐야 할 거리가 생기면 남편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어머님께서 여기도 고치고, 전구도 갈고, 커튼도 달아야 하고. 남편에게 많은 일을 시키신다.
남편은 툴툴대며 이것저것 사 와서 고쳐대곤 한다.
그날도 안방 문고리가 고장 나서 남편은 안방 앞에 앉아 새로 사 온 문고리를 달고 있었다.
그것을 본 셋째 외숙모께서 감탄을 하셨다.
"와 집에 남자가 이런 걸 해야지. 우리 남편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이런 장면 너무 신기하다."
이런 장면이 신기하다니, 우리 아빠도 늘 집안의 고장 난 것들을 잘 고치시고, 가전제품도 다 고쳐서 사용하셨기에, 이런 장면이 전혀 신기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는데, 안 그런 집도 있구나. 그때서야 남편의 행동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 알게 되었다.
재작년 2월이었다. 학기말 방학기간이라 아이들은 없었고, 학교는 한산했다. 나는 교실 짐을 정리하느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는 탕비실 천장에서 물이 줄줄 새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비가 오듯이 말이다. 너무 놀라서 옆에 있는 교무실로 뛰어가 "천장에서 물이 떨어져요 부장님!" 크게 외쳤다.
교무부장님은 50대 남자 선생님이셨고, 당연히 이런 상황에 의연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이 떨어지는 3층으로 모두들 우르르 뛰어올라갔다. 3층 탕비실 세면대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이미 3층은 물바다였다.
세면대 배관에서 물이 터져 나오고 있었는데, 이럴 때 우리 집 남편이라면 바로 잠재울 수 있을 거였다.
그러나 유일한 남자였던 교무부장님께서 세면대로 가까이 가셨지만 물은 전혀 잦아들지 않았고, 부장님만 흠뻑 젖으셨다.
시설관리 주무관님을 긴급히 호출했는데, 멀리서 천천히 걸어오시는 주무관님을 우리는 모두 손을 흔들며 기다렸다. 주무관님이 배관 근처에 가고 3초 만에 물은 멈췄다.
아, 모든 남자들이 맥가이버는 아니구나.
우리 아빠도 맥가이버였다. 모든 걸 고쳐서 사용하신다. 전선줄이 끊어져도 그걸 신기하게 이으신다. 어렸을 때는 신기하다기보다는 궁상맞아 보였다고 해야 하나, 그랬다. 아직도 친정에서 사용하는 드라이기는 20년도 넘은, 내가 결혼하기도 훨씬 전부터 사용하던 무거운 그것을 사용하신다.
남편도 공사현장에서 일하기에, 뭐든 잘 고친다. 심지어 신혼집에 들어가 살 때도 셀프 인테리어를 했다. 벽지를 뜯고 새로 도배를 했고, 한쪽 벽에는 벽돌을 붙였는데, 이건 남편이 시키는 대로 내가 했다. 그때 너무 힘들어서 앞으로는 절대로 셀프 인테리어를 안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집에서는 일 년도 못 채우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 했지만 그때 셀프 인테리어 덕분에 500만 원은 더 받고 팔 수 있었다며 남편은 좋아했다.
주말마다 집에 오는 남편은 가끔 상처가 하나씩 있다. 손을 베어서 밴드를 붙이고 있거나, 발등이 시퍼렇게 멍들었거나.
왜 그런지 물어보면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늘 한결같이 "다쳤어." 이게 끝이다.
한결같은 그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다.
모든 남편들이 다 맥가이버가 아니라는 사실이 나에게는 더 신기했지만, 모든 남편들이 한결같지도 않다는 것 또한 사실이니, 나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결혼 십 년 동안 한결같은 그가 어느 날은 지겹지만, 대체적으로는 감사하다.
아이들이 말썽부리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아이들 편을 안 들고 늘 내 편을 들어주니 든든하기도 하다.
오늘도 남편은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고 있는 나를 위해 외친다.
"누가 엄마 힘들게 해? 어떤 놈이야?"
아직은 내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