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십 년 차의 소회
토요일 아침 일곱 시다. 평소라면 나 혼자 살금살금 나가 아침밥을 하고 식구들에게 늦잠의 달콤함을 더 채워주기 위해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앉아 있을 시간이지만 이번 주 토요일은 달랐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고, 부엌에서는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울려 퍼진다.
정신은 떠졌지만 눈과 몸은 떠지지 않은 채로 달강달강 소리를 들으며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는 몹시도 아팠다. 금요일 새벽부터 시작된 몸살과 장염으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호 유치원 등원 버스에 혼자 가라고 했다. 아이는 당연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식빵하나 겨우 먹이고 유치원 버스 타는 곳까지 식은땀을 흘리며 가서 겨워 아이를 등원시켰다.
그래도 집에는 늦잠 자는 복병 일호가 있다. "일호야, 일어나서 그냥 시리얼 먹어."
말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병원에 갈 기력조차 없는 것은 처음이었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보다 더 아팠으니, 말해 뭐 하겠는가.
일호는 일어나서 신나게 게임을 하고 유튜브를 시청하고 시리얼을 먹은 후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집에 돌아온 일호는 "엄마 배고파"라는 말로 나를 깨웠고, 밥은 굶길 수 없으니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그러모아 쓱싹쓱싹 비벼주고 말았다.
오후 두 시 반, 이호의 유치원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이 되었다.
"일호야 엄마가 너무 아파서 그러니, 오늘 동생 유치원버스 타는 데 가서 데려와줄래?"
당연히 못해, 싫어라는 말이 나올 줄 알았지만 일호는 "알았어."두말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주었다.
아이고, 다 키웠네, 소리가 절로 나와 아픈 몸이지만 흐뭇한 눈물이 흘렀다. 아프면 감정이 더 요동치더라.
다행히 남편이 오는 주말이다. 우리는 주말부부이지만 그가 오지 않는 주말도 있는데, 천만다행으로 이번주는 남편이 온다. 그의 퇴근을 이리도 반기던 날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기다려졌다.
그의 퇴근한다는 전화 소리가 울린다.
"남편, 빨리 와주라."
"아파?"
목소리만 듣고도 아픈 걸 알아채준다. 사실 더 아픈 척 목소리 연기를 조금 한 건 비밀이다.
"응, 빨리 와서 애들 좀 챙겨줘. 지금 치킨 시켰으니까 와서 같이 먹으면 딱 맞겠다."
치킨은 마침맞게도 남편의 퇴근 후 10분 만에 도착했다.
세 식구의 치킨 뜯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토요일 아침에 눈을 뜨니 일호와 이호는 작은 방에서 자고 있고, 남편은 거실에서 자다가 아침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한테 병이라도 옮을까 봐 아이들을 격리했다는 남편. 응 참으로 고맙네. 내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 2주 동안 집에 오지 않을 만큼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지켜주더니 역시 그대는 아직 코로나에 한 번도 안 걸린 멋진 대한민국 상남자야.(절대 비꼬는 거 아님)
한결 나아진 몸상태로 달그락 소리를 조금 더 듣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리폭탄을 돌리고 설거지 삼매경에 빠진 그. 무슨 요리를 했길래 설거지가 산더미인가 봤더니 그 새 냉장고정리까지 했다.
엄지 척을 올려주고 나니 아이들이 하나둘씩 깨어나, 온 식구가 둘러앉아 남편의 전복죽 앞에 모인다.
전복을 좋아하는 이호와 죽을 좋아하는 일호. 그런데 둘 다 전복죽은 싫단다.
아침부터 전복죽을 끓였는데 먹기 싫다는 아이들에게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고, "너희들이 좋아할 만한 걸 넣어주지." 하며 냉장고에서 소금통을 꺼내온다. 좋아하는 소금을 한 번씩 더 뿌려준 후에야 아이들의 입가에도 웃음이 번졌고 네 식구가 둘러앉아 전복죽을 먹는다.
임신했을 때 감기에 걸린 적이 있었다. 감기약을 먹을 수 없었기에 콧물을 훌쩍이며 퇴근한 나는 남편이 만들어 놓은 배숙을 보고 감동을 하고 말았다. 배숙이라는 것을 난생처음 봤고, 처음 먹었다.
달콤했고, 꿀같았다. 물론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우리는 다 그렇게 사는 거 아닐까. 한 번의 따뜻했던 기억으로, 십 년을 이십 년을 버티는 거다.
그때 그 배숙 사진이 어디 있을 텐데. 사진을 찾기 위해 핸드폰 사진첩을 오랫동안 뒤적였다. 지워졌나 보다고 포기할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후 핸드폰을 몇 번 바꾸기도 했고, 사진첩 정리도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진을 지웠을 리 없다는 믿음으로 끈질기게 뒤지고 뒤져 찾아냈다.
사진을 찾은 기쁨도 기쁨이지만, 십여 년 전의 우리의 사진을 다시 보니 참 뭉클했다.
핸드폰을 바꾸면서 앨범들이 뒤죽박죽 되는 바람에 아이들 사진과 연애 때 사진들이 섞여있었다. 연애할 때와 신혼 때의 사진들이 최근 몇 년은 열어보지도 않은 사진첩 앨범속에 있었다. 그 속에서 그는 얼굴도 홀쭉하고 뱃살도 홀쭉했던, 처음에 잘생긴 그 얼굴로 거기 있었다.
다시 봐도 잘 생겼다. 그러니 내가 6개월 만에 결혼을 했을 것이다. 아무리 다정하고 자상했어도 이 얼굴이 아니었으면 결혼을 안 했을 거다.
그러나 오늘도 일호가 아빠에게 한 마디 했다.
"아빠, 마스크가 작아? 턱이 다 나왔어."
그렇다. 그의 갸름했던 턱선은 어디로 갔을까.
나 역시 말할 것도 없이 늙었고, 볼품없어졌다.(원래도 미모가 없기는 했지만 젊음이라도 있었는데 말이다)
며칠 후면 결혼 십 주년이 된다. 십 주년에는 커플링을 새로 맞추자고 했는데, 지금까지 안 맞추고 있는 거 보면 우린 또 이번에도 그냥저냥 넘어가겠지, 괜찮다. 커플링 따위. 전복죽이면 충분하다.
결혼식장에 왜 신부대기실만 있고, 신랑대기실은 없냐고 장난스럽지만 집요하게도 몇 번이나 말하던 그의 모습이 생각난다. 아직 우리는 젊은 거 같은데, 이렇게 나이가 들어버렸다.
십 년 동안 뱃살과 턱살만 늘어난 게 아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똘똘 뭉친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만으로 기분까지 알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아프다고 전복죽을 끓여주는 남편이 있으니, 아프다고 동생을 데리고 와주는 딸이 있으니, 아프다고 엄마를 꼭 안아주는 아들이 있으니, 아직은 살만하다.
결혼 십 년은 그런 거다. 아직은 살만한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