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50만 원

by 새벽책장

지난 설에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70살에 죽을 거니까 그전에 너네한테 도움 되는 뭔가를 해야지."

"네에? 무슨 그런 말씀을."

"야 옛날에는 내가 60이면 죽을 줄 알았는데,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십 년은 더 살 수 있겠더라고."

나는 차마 말은 못 하고, 속으로만 '70이면 몇 년 안 남았어요 어머님. 제가 볼 때는 90세까지는 사실 것 같은데. 그리고 요즘 70대는 노인도 아니던데, 70대 분들이 들으시면 서운할 소리예요.'


그러면서 시어머니는 내가 휴직해 있는 올해, 매달 50만 원씩 보내준다고 하셨다. 나는 부모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거절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신혼 초에 "너 고집이 세구나? 나도 한 고집해.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두고 보자." 이런 말씀을 웃으며 하셨던 분이시기에 이제는 웬만하면 투닥거리를 하지 않고 일단 하고 싶으신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다.

어머님이 50만 원씩 주신다면 일 년 동안 600만 원이라는 거금인데, 참으로 난감하기 그지없다. 사실 그 50만 원 아니어도 우리 부부가 살아가는데 지장은 없고, 부족하지도 않다.

"어머님이 보내시면 그냥 다 모아뒀다가 다시 돌려 드릴 거예요. 그러니까 보내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고 났기에, 안 보내실 줄 알았다. 그런데 어제 통장에 찍혀있는 어머님 성함과 50만 원을 보니 나는 감사한 마음보다 화가 났다.




어머님이 이런 생각을 하시게 된 데에는 시조카의 사교육비가 어느 정도 드는지 아시기 때문일 거라고 지레짐작한다. 시조카는 우리 큰아이와 동갑이다. 영어유치원을 나왔고, 계속 영어학원, 수학학원을 다니며, 예체능을 꾸준히 돌리고 있다. 수영, 바이올린, 인라인, 줄넘기, 바둑...

아무래도 시어머니는 시누이의 사교육비를 보시고 우리 집은 아이가 두 명이니 그 두배로 들 거라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하지만 우리 집은 영어학원도 수학학원도 다니지 않는다. 심지어 이제 둘째는 유치원도 졸업하므로 유치원비 30만 원도 굳는다.

작년까지는 큰아이가 욕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해봤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발레, 피아노만 하기로 했기에 학원에 드는 비용이 오히려 작년보다 줄었고, 둘째는 수영과 학교 방과 후 수업만 하기로 했다.

아마 우리 집 아이 두 명의 사교육비가 시조카의 그것보다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머님은 구체적으로 사교육비가 얼마 드는지 물어보시지는 않으시고, 매번 만날 때마다 "네가 지금 돈이 없을 때지, 돈이 없어 죽겠지? 힘들 때야. 집 사고 이자내고 애들 학원 보내고." 하신다.

"아니에요 어머님, 저희 돈 하나도 안 쪼들려요. 남편이 많이 버나 봐요. 쓰고도 남네요. 호호호."

해도 어머님은 나의 말은 믿지 않으신다.


나는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몹시도 불편한 인간이다. 나도 내가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결혼할 때에도 부모님께 전혀 손 벌리고 싶지 않았는데, 양가에서 3천만 원을 주셨다. 덕분에 감사하게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 갚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시댁 어른들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으시다. 그렇기에 더 불편한 마음이 든다.

어머님의 50만 원은 그냥 50만 원이 아니다. 얼마나 아끼고 아낀 것인지, 적금 하나를 못 들고 주시는 돈일지 알기에 마음이 좋지 않다.


시누이 결혼시키실 때 없는 집안이라고 설움 당하신 이야기를 종종 하신다. 폐백음식도 오백이 넘는 금액의 것을 딱 집어서 해오라고 하셨고, 사위가 원하던 명품시계도 비슷한 가격이었다. 그때 돈이 없어서 여기저기 빌려 혼수 준비했던 이야기를 하시면서, 어머님의 살아오신 세월을 느꼈다.

사십도 안된 나이에 이혼하시고 혼자 아이 둘을 키워내시느라 안 해본 일이 없으셨다. 하지만 지금 어머님은 억척스럽다기보다는 사모님 소리 들으며 집에서 화초나 키우시던 분처럼 소녀스러우시다. 외향도 그렇고, 마음씀씀이도 그러하시다.

우리에게는 아끼고 쓸데없는데 돈 쓰지 말라는 잔소리를 시도 때도 없이 하시면서 정작 어머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큰돈을 주시고, 본인이 하시고 싶은 일을 또 일 년 동안 얼마나 참으시려고 그러시는지 답답한 마음이 나를 울컥하게 한다.

감사하다기보다는 몸 둘 바를 모르게 만드는 어머님에게 화가 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어머님 제발 이제는 본인을 위해서 돈을 쓰세요. 저희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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