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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Mar 13. 2023

"안녕하세요"의 대답은 "안녕하세요"

직장에서 마주치는 한 분은 먼저 인사하는 법이 없으셨다. 물론 그가 나보다 나이가 많다. 하지만 어디에도 나이가 어린 사람이 먼저 인사하라는 법은 없다.

그분은 내가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하면 한결같이 "네"라고 대답하신다.

한두 번은 별생각 없더라도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나는 기분이 별로일 수밖에 없다.


직장이 아닌 곳에서도 자주 겪는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종종 겪는 일인데, 같은 주민이기에 인사를 드리면 의외로 "네"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어색하고, 갑작스러운 인사에 말문이 막혀서 그런 대답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매번 같은 사람이 네,라고 말하는 것은 습관인 건지, 상대를 무시하는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나는 기분이 나쁘다. 




나의 첫 직장은 기간제로 근무했던 초등학교였다.

그곳에서 같이 기간제로 근무하던 명예퇴직한 여선생님과 자주 점심을 같이 먹었다. 그분은 나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조언은 인사였다.

"인사할 때 큰소리로 하세요. 인사만 잘해도 직장생활이 편해질 거예요."

당시 이십 대였던 나는 웬 잔소리냐 싶었지만 그분의 조언이 늘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원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가진 나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크게 인사를 했다. 동료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말이다.

나도 인사하는 것이 부끄럽고 어색하고, 민망할 때가 있다. 특히 인사를 했는데 받아주지 않거나, 나를 누군지 몰라한다거나 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런 부담감때문에 인사하기 직전까지도 망설인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당연히 인사를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에 복도 저 끝편에서 걸어오는 누군가를 발견하면 어떤 타이밍에 인사를 해야하는지 또 고민이 든다. 학교 복도는 왜이렇게 긴지. 

그리고 아까 만났는데, 또 마주치는 경우에도 인사를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그럴 때는 주로 눈으로만 인사하라는 말을 어디에서 주워들었기에 그렇게 하고 있지만, 선배들 입장에서 보면 그것도 버릇없어 보이지는 않을지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첫 직장에서 만난 선배 선생님의 조언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분의 말이 진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사만 잘해도 평균은 넘는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나도 쉬운 일이라면 조언을 해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인사를 잘하는 일이 심적으로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요즘은 우리 아이들의 꼬마친구들을 만나곤 하는데 인사를 잘하는 아이에게 애정이 가게 마련이다. 아이들의 친구들은 나를 봐도 먼저 인사하지 않는 경우가 90% 이상이다. 열 명 중 한 명 정도의 아이들이 멀리서도 다가와 "이모 안녕하세요?" 한다. 그 친구들은 너무 예쁘다. 내 자식도 어디 가서 이런 예쁨을 받았으면 싶어서 매번 이야기를 하지만 내가 같이 있을 때 만나는 친구 엄마들에게 이토록 상냥하게 먼저 인사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자기들 말로는 인사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에구 누구를 탓하랴. 내가 바로 그런 아이였으니 말이다. 수줍고 어색해서 엄마뒤에 숨기 바빴고, 인사하려는 그 순간에 가슴이 쿵쾅거리고 인사를 안 받아주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더해져 옆길로 돌아가거나, 땅만 보고 지나가기도 했다. 

어른이 된 지금이야,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아직도 누군가와 인사를 나눈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하다. 

그렇기에 꼬마친구들이 먼저 인사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만나면 먼저 인사할 수 있는 사람이 인사하면 되는 것이니까. 먼저 인사 몇 번 해주다 보면 꼬마들은 어느새 자기가 먼저 인사하기도 하며 커간다.


그런데 문제는 어른들이다. 안녕하세요의 대답은 "네"가 아니다. 그런 건 이미 유치원 때 다 배운 건데, 그들에게 자기보다 어린 여자가 하는 인사에 "네, 안녕하세요."라는 말로 대답을 해주기가 오히려 어색한 것일까 싶기도 하다. 이제는 뒤에 숨을 엄마가 없으니, 스스로의 수줍음을 자기에게 숨기는 것처럼 더 약해 보이기도 한다. 안쓰럽긴 모두 마찬가지다. 




아이가 3학년이 되어 영어교과를 처음 접했다. 그동안 엄마표로 해준다고는 했는데 둘째에 비해 영어가 통 시원찮다. 지난 겨울방학에 영어교과서를 한 권 주문해서 같이 들여다봤다. 교과서는 조금씩 구성이 다르지만 모든 교과서의 첫 단원에서는 거의 "Hello, 누구."를 배운다. "Hello." 하면 그다음 대화는 무조건 "Hello." 나 "Hi."이다. 


답은 정해져 있다. 안녕하세요, 의 대답은 안녕하세요다. 

오늘도 용기를 내어 먼저 인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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