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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Mar 12. 2023

캠핑장의 까칠녀

누구를 향한 원망인가.

캠핑족이다. 나 말고 남편이 그렇다. 나는 따라다니지만 캠핑족은 아니다. 캠핑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여기 캠핑장은 장박컨셉이다. 당일치기 손님도 있지만 대부분이 몇 년씩 캠핑카를 세워두고, 몽골텐트나 컨테이너를 지어두고 생활한다. 별장 같은 개념이지만 진짜 별장 소유주가 보면 뭐 움막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다들 친분이 두텁다. 새로 들어온 사람도 금방 친해지곤 한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무리 지어 노는데 꼬꼬마들이 커가며 점점 태블릿을 들고 오기 시작하며 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땅 파고 개미 잡던 아이들이 언니 오빠 따라 이제 몇 시간씩 게임만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나마 내가 따라오는 날은 엄마 눈치 보느라 자제를 하는데 아빠만 오는 날은 대충 들어봐도 가관이다.


남편은 아이들을 위한 캠핑을 하지 않는다. 본인을 위해서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에서 뛰어노는 캠핑의 본질을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끼리 놀게 내버려 두는데, 캠핑장 분위기가 대체적으로 그렇다. 물론 아이들끼리 노는 것, 너무 좋다. 그러나 문제는 모여서 게임만 하루종일 한다는데 있다. 

이번 캠핑에서 남편과 나는 트러블이 있었다. 솔직히 아이들이 골방에 들어가서 게임만 하고 있으면 정말 편하다. 어른들끼리 모여서 친목을 맺고, 술을 마신다. 그런데 아이들의 게임, 어른들끼리의 친목도모, 음주. 이것들은 모두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다.




시어머니는 당신 젊은 시절 이야기를 종종 하시는데, 아이들 어릴 때 어디 놀러 가면 시아버지께서 처음 보는 옆 텐트 아저씨랑 술 마시느라 애들은 어머니 혼자 다 보시고 텐트 접는 것도 어머니 혼자 다 하셨다는 레퍼토리를 몇 번째 말씀하신다. 그놈의 술 때문에 많이 싸웠는데, 당신 아들 땡땡이는 안 그런단다. 개뿔 안 그러긴 뭘 안 그래. 


이번에도 내 말은 안 듣고 옆텐트 형 누나와 골방에 모여 게임만 하는 아들을 혼냈다. 여기까지 와서 이럴 일인가 자괴감도 들고, 아이들 하고픈대로 풀어놓는 다른 부모들의 다정한 말투도 왠지 듣기 싫다. 집에서도 저렇게 말하나 싶은 조근조근한 말투들. 나도 그러고 싶다. 아이들에게 웃으면 오은영 선생님 빙의되어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다. 다들 어쩜 그리 오은영 박사님 말투로 말하는지, 못하는 내가 한심 할 뿐이다.


이곳에 오면 모든 게 못마땅해진다. 그중에 가장 못마땅한 것은 바로 나다.

불편해서 화장실도 참다 참다 겨우 한 번씩 가고 세수도 못하고 잠든다.

밤 11시, 애들은 내가 화가 나서 누워있는 카라반으로 기어들어오고 자기들도 눈치는 있는지 엄마 잔다고 스스로 양치질을 하고 내복을 갈아입는다. 엄마 나 잘게, 하는데 나는 대답도 안 하고 자는척한다. 부모와 아이 중에 하나는 어른이어야 한다는데, 이 중에 제일 속좁고 잘 삐지는 건 나다. 

이렇게도 캠핑장만 오면 속 좁은 사람이 된다. 다들 아이들에게 참 관대하다. 서로의 부부에게도 한없이 자애롭다. 집에서도 그러한지 궁금할 따름이다. 똑같겠지, 집에서도 그렇겠지. 그래서 나도 집에서와 똑같이 행동한다. 게임 시간을 규제하고, 지킬 건 지키자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나만 속 좁은 엄마가 된다.


주중에도 혼자 동동거리고 애 키우기 힘든데 주말까지 남들 눈치 보는 곳에서 친분도 없는 사람들과 아무 의미도 없는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깝다. 그래서 나는 주로 친목도모 자리에 끼지 않고 혼자 틀어박혀 있는 편이다. 내 마음을 속이고 어울리다 보면 주말을 통째로 날리는 기분이라 속이 많이 상한다. 틀어박혀서 뜨개질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이번주에도 추리소설 한 권을 다 읽어버렸다. 내 시간은 괜찮은데, 아이들의 시간은 너무나도 아깝다. 캠핑장에만 오면 특히 더 버릇없이 구는 아들도 밉다.

이곳에서는 살림꾼이 되는 남편도 어이없다. 집에서는 자기 먹은 것도 안 치우는 양반이 말이다.


집에 가려는데 어제오늘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캠핑장 가족 한 분을 만났다.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다음에는 게임하는 거 가져오지 말고 놀거리 챙겨 와요." 하신다.

응? 나 게임 때문에 화난 거 캠핑장에 소문이 났나, 싶어 남편에게 물어보니 자기가 소문냈단다. 

이런 낸장, 오늘도 그 집 엄마 참 까칠하시네, 애들이 불쌍하고 남편이 불쌍하다,라는 뒷말이 무성할 것이 예견되니 참으로 서럽다.


그래도 별 수 없다. 자연에서 뛰어놀지 않을 거면 캠핑을 왜 가나.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규칙을 어기는 게임시간을 아이들에게 줄 생각은 없다. 그래서 매번 캠핑장 까칠녀를 자처한다. 




그는 집에 오자마자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본다. 나는 점심 식사 준비를 하느라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부엌에서 쌀부터 씻는다. 미역국을 끓이고, 어묵을 볶는다. 머리까지 화르르 불이 붙는 기분이다. 

그는 밥을 먹고 다시 소파에 누워 코를 곤다. 나는 캠핑 다녀온 물건들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린 후에 건조기에 오래 방치된 빨래를 꺼내 갠다. 

그러다 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
"싸울까?"
캠핑장 까칠녀가 집까지 따라왔다.


캠핑장에서 받은 서러움과 남편의 행동들에 화가 나서, 여자에게 결혼은 손해보는 장사라는 엄마 말이 떠오른다. 싸우고 싶지만 또 아이들 때문에 그렇게 참는다. 


결혼에 대해 누가 묻는다면, 참고 참고 또 참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왜 나만 참는지 억울해진다.

허 참, 그 까칠녀 오늘따라 끈질기게 안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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