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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Mar 05. 2023

어른도 서툴다

응답하지마 갱년기

아이들에게 화를 많이 낸 날이다.

아 왜 이렇게 기분이가 안 좋냐, 하면서 엄마 기분 안 좋으니까 말 시키지 마, 분위기를 뿜어내다 보니 화장실에서 그분을 만났다. 그래서 기분이 나빴구먼.

지난달에도 그랬다.

기분이 한없이 우울했는데 다음날 생리를 했다.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갱년기인 것 같다. 이런 호르몬의 노예라니.

산후우울증도 이겨냈지만 갱년기는 이길 수가 없나 보다.


이십 대 시절, 자의식이 남달랐던 친구 하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까짓 호르몬 때문에 인간이 좌지우지되면 되겠어? 생리한다고 성질내는 여자애들 이해가 안 가. 스스로를 컨트롤 못하는 애들이, 앞으로 뭘 할 수 있겠어?"

그때는 나 역시 생리통만 있었지, 심리적인 변화가 별로 없던 시기였기에, 호르몬의 노예라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스스로 기분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이가 들어서 약해진 것일까, 아니면 호르몬이라는 녀석이 더욱 강렬해진 것일까. 나이가 들면 여성호르몬의 분비가 줄어드니까, 호르몬의 영향을 덜 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지만, 남자들만 봐도, 나이가 들면 유해지고, 드라마를 보면서 울기도 하고, 아줌마처럼 변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던가. 나 역시 더욱 눈물이 많아지는 갱년기 소녀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애초에 나이가 들면 약해지는 것이 맞는 건가. 신체는 약해지겠지만 내면은 더 단단해지는 것일 게라고, 어른들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평화로운 일상을 산다고, 그러니 나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말이다.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한 이십 대와 삼십 대를 지나고, 이제는 누가 봐도 진짜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도 중심을 잡고 살기가 어렵다.

그러나, 다시 어릴 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아, 아직도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할 줄 알았다면 그때 고민하지 말걸 그랬다.




얼마 전 설거지를 하다가 아끼는 유리컵을 깨트렸다. 유리컵은 우유를 따라 마셔도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고, 아이스티를 타 마시면 더 시원해 보이는 효과가 있어서 좋아하는데, 그걸 깨트렸으니 속이 상했다.

며칠 후에는 또 설거지를 하다가 아이가 아끼는 컵이 손에서 미끄러지면서 이가 나갔다. 며칠 사이에 이가 나가거나 깨트린 그릇과 컵이 부쩍 늘었다.

안 그러더니 자주 뭘 떨어트리고 깨트린다. 늙어서 그런가. 손에 힘이 없나 싶을 정도로 실수를 한다.


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우유팩을 열 때 굳이 반대방향으로 딸 때가 많았다. '여는 쪽'이라고 친절하게 쓰여있고, 그 부분은 잘 열리게 접혀있는대도 안 열리는 반대쪽을 뜯으니 그게 잘 뜯길 리가 있나 맨날 우유팩 주둥이가 찢어져 있기 일쑤였다. 그럼 그걸 그냥 두고, 반대방향을 다시 따면 되는데 나도 찢어진 부분으로 우유를 따르다가 흘리기라도 하면 "아이 참 엄마 이걸 왜 이렇게 따놨어." 하며 짜증을 냈다. 내 기억에 거의 그랬으니까 아마 엄마가 사십 대부터도 우유팩을 그렇게 땄던 것 같다. 물론 제대로 따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평범한 날은 기억에 잘 남아있지 않으니, 자주 잘못 따놓던 우유가 유독 생각난다. 우리 둘째는 여섯 살 때부터 우유를 혼자 열었는데, 항상 여는 쪽으로 잘 연다. 그걸 볼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주의력이 떨어진다는 것일까. 중심이 흐트러진다는 것일까. 나는 가짜 어른인 것만 같다.


아직도 멀었다. 인생의 반을 살아오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으니 앞으로는 좋은 선택만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른의 삶도 실수투성이, 매일을 후회하는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것이다. 어릴 때는 몰랐다. 마흔이 넘으면 안정된 삶을 살 줄 알았는데 말이다. 겉에서 보이는 모습만이 전부가 아니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날씨와 비슷해서, 매일매일 시시각각 변한다.

스스로를 모르는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니 울고 짜증을 내는 법다. 그래도 나는 엄마니까 나의 본성을 그대로 표출해서는 안된다고 스스로를 다잡는다. 나의 기분을 컨트롤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하므로, 오늘도 어렵고 서툰 어른의 세상에서 애쓴다. 다들 그렇게 애쓰면서 살고 있을 테니,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측은하다.


나이가 들수록 몸의 근육도 키워야 하고 마음의 근육도 키워야 하니 바쁘다. 죽을 때까지 이렇게 애를 쓰면서 살아내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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