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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Mar 04. 2023

세면대를 뚫을 때 쾌감이 느껴진다

가사분담에 대해

세면대를 뚫는 일은 쾌감이다.

세면대 뚫는 긴 솔을 이용해서 배수구 깊숙이 집어넣은 후 천천히 끌어올리면, 배수관에 걸려 있는 각종 이물질들이 따라 올라온다. 특히 그곳을 막는 주범은 머리카락과 개털이다.

우리 집에는 마땅히 걸레를 빨만한 장소가 없기도 하고, 세면대에서 휘리릭 빨아버리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주로 그곳에서 걸레를 빨곤 한다. 그래서 세면대의 물 빠짐이 시원하지 않을 때 한 번씩 솔로 청소를 해준다.

솔을 천천히 잡아 올릴 때 딸려 올라오는 머리카락 덩어리가 보이면 손으로 잡아 쭉 뺀다. 주우우욱, 더러우면서도 시원하다.


살면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지만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일이 있다. 집안일은 거의 그렇다. 그런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낼 때 어른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어른이 되었다면 꼭 주부가 아니라도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며 살아야 한다.

먹었으면 치워야 하고, 더러워지면 닦아야 하고, 변기 안쪽도 솔로 문질러야 하고, 화장실 거울을 주기적으로 닦아야 한다.

당연한 것인 줄 알았던 일들에는 누군가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어머니께서는 사위에 대해 불만이 있으시다. 퇴근하면 손하나 까딱 안 하고, 쓰레기 버리는 일이나 분리수거조차도 안 하신다는 푸념들을 가끔 나에게 던지신다. 그럼 나는 또 속으로 생각한다. '어머나, 어머님 아들이랑 똑같네요.'

"그래도 우리 아들은 좀 하지 않니?"

"네? 뭐, 가끔 하죠. 분리수거는 담배 피우러 나갈 때 들고나가기도 해요. 그런데 음식물이나 일반쓰레기는 안 들고나가더라고요. 고모부는 담배도 안태우시니까 일부러 나가야 하잖아요. 귀찮을 수 있죠."

"그래도 우리 아들은 설거지도 하고, 청소기도 밀잖아."

"네? 손에 꼽을 정도로는 했죠. 한 번도 안 했다고는 못하지만, 딱히 한다고도 못해요. 특히 청소는 한 번도 하는 걸 못 봤는데요. 깔깔깔."

"그래도 하네. 땡서방은 아무것도 안 한다니까. 자기 잠잔 몸만 빠져나가."

"네에 고모가 힘드시겠네요."

결국 시누이가 힘들겠다는 정답을 맞힌 자는 더 이상 질문을 듣지 않을 수 있다.


가끔 나는 남편 들으라는 듯이 아이들에게 말한다.

"집안일은 모두가 해야 하는 거야.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알았지?"

그러면 남편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모르겠지만, 다음번 식사 때 아들에게 숟가락 젓가락을 놓으라고 한다.

얼마 전 휴일 점심에 아들이 수저를 놓았는데, 저녁에 남편이 또 시켰다.

"아까는 내가 했으니까 이번에는 아빠가 해."

아빠는 안 하고 시키기만 하니, 상황의 불합리함을 아이들도 단박에 알아챈다.


아이들이 많이 어릴 때 일이다. 회식을 하고 늦게 들어와서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보는 남편에게 나는 거실정리를 하며 설거지 좀 해달라고 말했다.

편은 깜짝 놀라며 "내가? 내가 먹은 것도 아닌데?"라고 했다.

나도 역시 깜짝 놀랐다. 니 자식들이 먹은 거잖아.

그도 자기가 말했지만 곧 이상한 말인 것을 알아차렸나 보다. 그러고 나서 설거지를 했기 때문에 싸움이 되지 않았다. 설거지를 끝까지 안 했다면 또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어제 아들이 말했다.

"아빠는 귀여워."

"엄마는?"

"엄마는 불쌍해."

"왜?"

방바닥을 닦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이렇게 매일 일하니까."

방바닥을 이렇게 이렇게 매일 닦는 불쌍한 엄마는 화장실 청소도 혼자 한다. 배수구에 걸려있는 머리카락은 남편눈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세면대의 물이 잘 내려가지 않아도, "청소해야겠네"라고 말로만 청소를 한다. 걸레를 빠는 우리 집 세면대에서는 머리카락과 개털을 자주 뽑아내줘야 한다. 이물질이 가득 차서 물이 시원찮게 내려가는 세면대처럼, 인간에게도 잘못된 관념이 꽉 들어차면 그다음 생각으로 유연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세면대의 머리카락은 제거하는 쾌감이라도 있지, 남편의 잘못된 생각은 꽉 막혀서 뽑아지지도 않는다. 회사에 다니면서 일한다는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가사일이다. 바깥일을 한다고 집안일을 안해도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가사도우미를 고용했다면 들었을 그 비용을 나에게 지불해야 마땅한 것이고 말이다. 비록 지금은 집에 있지만 일할 때에도 집안일은 모두 내 몫이었기에 화가 나고 있는데도 참고 있는건지, 화를 내지 않고 있는건지 나조차도 잘 모르겠다.

이런 글을 쓰는 걸로 봐서는 내 안에 화가 가득 차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내 속도 누가 뚫어뻥으로 뚫어줬으면 좋겠다. 어느날 속이 뻥 뚫린다면 세면대의 이물질을 끄집어 내는 것처럼 쾌감이 느껴질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그런데도 시어머니는 '아들은 며느리를 잘 도와주고, 사위는 딸을 하나도 안 도와주는 점'이 몹시도 못마땅하고 아까우신가 보다. 어머님이 생각하시는 '가정적인 아들'이라는 허상을 긴 솔로 뚫어드리고 싶다. 아오,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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