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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Feb 28. 2023

가족은 건드리지 맙시다

"장모님은 원래부터 말이 잘 안 통한다고 느꼈는데. 우리 엄마는 되게 쿨하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엄마랑 요즘 대화하면 꼰대가 되는 거 같아. 내 말을 안 들어. 자기 말만 해."

본인 엄마 디스인지 우리 엄마 디스인지, 그 중간 어디쯤인 듯한 말을 하는 남편에게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너네 엄마도 원래 그랬거든!"


서로의 가족은 건들지 않는 것이 우리 부부의 불문율이었는데, 남편이 선을 넘었다.

"장모님은 원래부터 그러지 않았어? 자기 말만 하시잖아. 내 말을 안 들으시는 느낌이 들 때 많았는데, 우리 엄마도 점점 변하네. 나이가 들면 다들 그러시나."

우리 엄마는 귀가 어두우시다. 오른쪽 귀가 거의 안 들리신다. 그래서 누군가 말을 하면 잘못 알아듣거나 아예 못 들을 때도 많다. 그런 물리적인 이유 말고도 사실 나도 우리 엄마랑 대화가 잘 안 되고 힘들었던 시기가 많았다. 엄마와 조잘조잘 대화하는 또래 친구들을 보면 우리 엄마와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그럭저럭 안부 전하며 일상 이야기도 하면서 지낸다. 결국 시가에 대한 불만을 얘기할 때 전화할 사람은 엄마밖에 없어서 엄마랑은 시가에서 받았던 불합리한 점에 대해 얘기하면 서로 공감해 주고, 예전 시절 얘기도 해주고, 평범하게 지낸다. 그리고 엄마의 대화방식이 예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기 전에는 직장에서 힘들었던 점을 이야기하면 사실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 "니가 잘해야지, 니가 그렇게 했어야지." 등의 공감 없는 말들. 그때 한창 성당에서 상담공부를 하시던 엄마가 어느 날부터는 공감하는 말을 해주기 시작해서 어색해하며 놀랐던 적이 있었다.

"네가 힘들었겠네."라는 말을 서른이 넘어서 엄마에게 들었지만, 헉, 엄마 왜 이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 그동안 우리의 대화가 잘못되긴 했었다.

내가 조금 더 어렸을 때 그런 말을 많이 들어봤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엄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안다. 자식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몰랐을 뿐이다. 그런 것들을 이제는 이성적으로는 이해하면서 지낸다.


그런데 남편이 우리 엄마를 디스 했다. 순간 너무 기분이 나빠서 통화 중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문이 막혔다고 해야 하나.

"아니, 어머님도 원래 조금 그런 면이 있으셨어. 애들 어릴 때, 내가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말씀드렸더니, 듣지도 않으시고 '안돼, 안돼.'그러셔서 당황했는데, 나는 애들이 귀여워서 말씀드린 건데, 본인 말씀만 하셔서 그때 기분이 좀 그랬어. 그리고 남편도 그랬잖아. 어머님 고집 엄청 세다고."

"뭐야 우리 엄마 욕하는 거야?"

"아니, 그런 일이 있었다고, 요즘 들어 더 말이 안 통하고 그런 건 모르겠던데. 별로 변하신 것도 아닌 거 같다고."

나도 평소에 어머님에 대해 생각하던 것을 이야기했다. 어머님이 평소에 내 말을 얼마나 안 들으시고, 말 끊으시고, 본인말만 하시는 일이 비일비재한지, 진짜 남편은 몰랐나 보다.


결혼 전에 남편이 그랬다.

"우리 엄마는 다른 시어머니하고는 다를 거야. 엄청 쿨할걸."

어머님이 쿨하신지는 사실 모르겠다. 그래도 며느리 편하게 해 주시려고 노력하시고, 뭐라도 하나 더 해주시려고 하시는 마음은 안다. 나한테 서운할 일도 무척 많으실 텐데, 특히 연락도 잘 안드리는 나에게 연락하라는 부담 한번 주시지 않으시고, 서운한 내색 하지 않으신다.

그 정도면 웬만한 시어머니들에 비하면 좋으시다. 사실 시어머니로써의 우리 엄마 모습보다 훨씬 멋진 시어머니이신건 맞다. 그런데 진짜 쿨한 건 아니다.

애들 키울 때도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간섭도 많으셨고, 내가 애들에게 하는 건 믿지 못하시고, 무슨 교육을 시켜야 하고 수학은 뭘 해야 하고, 집에 티브이는 없애야 하고 식탁은 어떤 걸 사야 하며. 악기는 뭘 몇 살 때부터 배워야 하고, 반찬은 어떻게 해야 안 짜고 등등. 당신이 할머니라는 게 아직도 안 믿긴다고 왜 자기를 할머니로 만들었냐고 하신 말씀은 많이 당황스러웠었다. 썰 풀자면 몇 날 며칠 걸리는 거 모든 대한민국 며느리들의 공통점 아니겠는가.


남편들의 가장 큰 착각인 "우리 엄마는 안 그래."를 시전 하는 남편에게 나도 말하고 싶다. "우리 엄마도 안 그렇거든."

하루도 빠짐없이 거의 매일 아들과 통화하는 엄마와 살았으니, 한 달 내내 연락 없이 지내는 우리 엄마와 나의 관계가 이상하겠지만, 나도 매일 통화하는 모자관계가 이상한 건 마찬가지라고. 그래도 한 번도 싫은 말 해본 적 없는데, 남편이 우리 엄마를 디스 했으니, 나도 시어머니 디스를 꼭 하고 싶었다.

아휴, 누워서 침 뱉으니 기분이 별로인가, 싶다가 왠지 통쾌하다.


결국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나 봐. 그러니까 책을 많이 읽고 항상 자기를 경계해야 해. 책 많이 읽는 사람들 보면 나이 들어서도 멋짐이 느껴지잖아. 그러니까 남편도 책 좀 읽지 그래?"

하면서 무독서가인 남편을 살짝 까면서 남편과의 통화를 마무리지었다.


요즘은 자꾸 사람들을 까고 싶은데, 이거 나도 꼰대가 되어가나 보다. 남 말할 때가 아니다. 어서 책을 펴 들어야지.



결혼식때는 우리 엄마 팔짱도 껴놓고 말이 안통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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