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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Feb 24. 2023

손걸레질을 하다가 엄마 생각이 났다

결혼 십 년 동안 방바닥을 손걸레로 빡빡 닦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결혼하자마자 임산부가 되었으니, 신혼 때는 청소기만 이틀에 한 번 돌리는 것이 나의 청소생활의 전부였고, 아이가 태어났을 때에는 청소기를 하루에 두세 번씩 미는 걸로 청소를 끝냈다.

아이가 있으니 물걸레질을 더 열심히 했어야 했겠지만 그때는 물티슈를 뽁뽁 뽑아서 아이의 생활 반경만을 치울 뿐이었다. 그리고 손목과 무릎을 아껴야 했으므로 쭈그려 앉아서 걸레질을 하는 일은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 크고 산후 손목통증도 이제는 무시할 정도가 되다 보니, 요즘에는 걸레질을 조금씩 하고 있다. 물티슈로 청소를 하면 바닥에 얼룩이 남는다. 또한 물티슈 사용을 제한하고 싶기도 해서 어느 날은 집에 처박아 두었던 잘 닦인다는 걸레를 꺼내봤다. 걸레질을 하면서 먼지를 모으고 얼룩을 닦는 행위가 생각보다 마음을 개운하게 만든다는 것을 마흔이 넘고서야 느꼈다.

그래서 옛날 엄마들이 기어 다니면서 손걸레질을 했던 거구나, 하며, 엄마 생각이 났다.

밀대를 사용해서 걸레질할 때 손이 닿지 않던 공간도 손걸레를 사용하니 먼지제거가 잘 되었다. 책장 위, 텔레비전 화면의 손자국, 창틀, 선반 등. 그동안 물걸레질을 참도 안 하고 잘 살아왔구나. 그 먼지들 다 내 코와 아이들 콧속으로 들어갔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적당히 더러운 곳에서 자라야 면역력이 좋아지는 법이라는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이제부터는 조금 더 부지런해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어렸을 때 나는 내 방 정리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도 해주지 않았으니 내 방은 말 그대로 돼지우리였다. 이불을 바닥에 깔고 자는데 그걸 개키지 않고 학교에 다녀오면 다시 발로 쓱쓱 밀어놓은 다음에 또 그걸 끌어와서 자곤 했다. 책상 위는 얼마나 정신없었는지. 엄마가 청소를 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었다. 내 물건에 손대지 않는 게 더 좋았던 십 대 시절이었으니까.


더러운 방에서도 별 탈없이 잘 자랐고, 결혼한 후에는 내 집이라는 공간을 나름 정갈하게 유지하고 지내고 있으니, 사실 아이들에게 물건 정리나, 자기 방 정리에 대해서 집요하게 시킬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구리는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곤 하니, 나는 우리 딸아이가 책상 위를 정리하지 않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며칠 전에는 언제까지 저런 꼴로 지내나 두고 보자는 심정으로 정리를 해 주지 않고,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더러운 꼴을 잘 보는 내 성향 덕택에 한숨은 나오지만 기다릴 수 있는 마음도 있는 나를 칭찬하며 기다렸다.

아이는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했던지 자기 전에 갑자기 책상 위를 정리하고 바닥의 쓰레기를 가져다가 버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또 엄마 생각이 났다. 내 방 청소를 해주지 않던 엄마. 엄마 덕분에 지금의 나는 더러움도 살짝 눈감을 줄 알고 아이에게 청소에 있어서는 잔소리를 하지 않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는 항상 집안을 기어 다니며 손걸레질을 하셨다. 그럼 그 등위에 폴짝 뛰어 올라가서 '이랴이랴' 거렸다. 요즘 나는 걸레질을 할 때면 내 등위에 뛰어올라 백허그를 하는 둘째 아이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엄마가 생각난다. 내가 등 위에 올라갔을 때 한 번도 내려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던 엄마. 온 집안을 말을 탄 듯 그렇게 한참 등 위에서 걸어 다니다가 지루해지면 다시 내려와서 인형놀이에 빠지곤 했다.


엄마는 우리 남매를 출가시키고 시골 주택으로 이사 가셨다. 주택살이는 꽤나 일이 많은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버린 엄마는 예전처럼 기어 다니며 손걸레질을 하지 않으신다. 눈에 보이는 곳만 대충, 그것도 잘 빨지 않는 걸레를 들고 다니며 쓱쓱 닦고 마치기 일쑤라 오랜만에 엄마집에 가면 구석에 거미줄이 종종 보이곤 한다. 그런 것들이 이제 더 이상 엄마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시력도 나빠지고 무릎도 좋지 않으니 대충 쓱쓱 닦기만 하고도 마음 편히 지내신다.

나는 엄마 집에 가면 제일 먼저 청소기를 든다. 우리가 온다고 나름 쓸고 닦았을 집안이 내 눈에는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러나 "엄마 여기 거미줄이 있어. 여기는 좀 닦아야지." 이런 말은 삼킨다. "애들이 과자를 흘려서 미는 거야."그러면서 거실과 안방을 청소기로 대충 밀며 거미줄을 제거한다.

나에게 방 청소를 하라고 잔소리하지 않던 엄마처럼 나도 엄마의 공간에서 그냥 그녀의 것들을 인정하고 싶다.


엄마는 내가 걸레질을 못하게 하신다. 무릎을 아껴야 한다, 나이 들면 손목이 아프다, 그러시면서. 나도 물론 손걸레질을 즐기는 건 아니다. 단지 바닥에 뭍은 먼지와 얼룩이 닦여 나갈 때의 희열이 조금 뿌듯하고 시원하다. 나중에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그 정도 먼지쯤은, 그 정도 더러움은 보지 않고 넘어갈 수 있으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사실 걸레질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진짜 얼룩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주로 문제를 일으키니까. 가족들에게 눈에 보이는 얼룩을 지우라는 간섭을 하지 않음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얼룩을 남기지 않는 것이 결국에는 더 좋을 수 있겠다는 생각, 내가 걸레질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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