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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Feb 23. 2023

힘이 되기도, 힘이 들기도

가족이란 그런 것

초등학교 4학년때였나, 하교하고 집에 와보니 외할머니가 계셨다.

늘 말이 없으시고 수수한 미소만 지으시던 그분은 나에게는 항상 멀게만 느껴졌다. 내가 기억하는 외할머니는 거의 누워만 계시던 분이셨는데, 앉아 계신 외할머니의 기억은 그 때가 마지막이었다.

할머니는 화투를 놓고 계셨다. 베란다 앞에 햇빛이 들어오는데 그 자리에 앉아서 청록색 담요 위에 빨간색 화투장을 깔아놓고 계셨다.

내가 집에 들어가자 할머니는 나에게 손짓을 하셨다. 이리 오렴, 이런 눈빛으로.

수줍게 인사를 하고 할머니 곁으로 갔다. 할머니는 내 뺨을 한번 쓸어내리시고 다시 가보라는 듯 손짓을 하셨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서 책가방을 내리고 어색해서 거실로 나가지 못했다. 엄마가 올 때까지 방에 누워서 뒹굴뒹굴 거렸다.

할머니는 한동안 우리 집에 머무셨다. 그때 할머니는 병세가 시작되고 있어서 말씀을 못하셨다. 손짓만 하시거나, 으응 하면서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만 내셨다. 조용하셨고, 늘 소파의 왼쪽 끝, 같은 자리에 앉아계셔서인지, 늘 그자리에 있는 장식품처럼 할머니에 대해 의식하지 않고 지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할머니께서 안 계셨다. 그녀가 앉아 있던 소파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외할머니는 두 달 정도 우리 집에 계셨다고 한다. 할머니가 처음 집에 오셨던 그 햇살 내리던 베란다 앞자리와, 가버리시고 난 후 텅 빈 소파 자리만 기억에 남아있고, 그 두 달 동안 어떤 일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우리 아빠가 할머니를 모셔오고 모셔다 드렸다고 하는데, 무뚝뚝한 아빠가 할머니를 챙기는 방식은 출근할 때 인사하고 퇴근할 때 인사하는 정도였을 거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이 두 달을 아빠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7남매 중에 다섯째 딸이었던 우리 엄마는 자신의 엄마에게 그나마 기력이 있을 때 그 두 달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마음의 돌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작년에 새언니의 어머니께서 하늘로 가셨다. 평상시에 무척 건강하시고 운동도 미용도 사회 생활도 열심히 즐기시던 분이셨기에 암에 걸리셨을 때에도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병이 급격하게 전이되고 항암치료의 힘든 과정을 겪으시며 많이 지치셨다. 오빠는 자신의 장모님을 기꺼이 집으로 모셔와서 몇 달 동안 함께 지냈다. 

호주에 사는 언니의 여동생 식구들도 집으로 왔다. 30평도 안 되는 작은 집에 처갓집 식구들이 바글 거리는 생활을 두 달 넘게 했을 때도 오빠는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나는 우리 엄마가 며칠 와 계셔도 힘이 드는데, 집에 다른 식구들이 몇 달을 와있다니, 듣기만 해도 지치는 일이었다. 오빠는 아침에 출근하고 밤 늦게 퇴근하니, 크게 개의치 않았을까. 아무리 그래도 집에 와서 쉬고 싶은데 왁자지껄하고 옷도 편하게 못 입으면 불편했을 텐데, 오빠와 나는 속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니까 물어볼 수 없었지만 한 번도 힘들다는 내색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사돈 어른께서 돌아가시고, 지난 설에 언니를 만났을 때 언니는 정말 오빠를 다시 봤다고 한다. 먼저 장모님을 모셔오자고 한 것도 오빠였고,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어서 언니는 정말 결혼을 잘했다고, 그런 말을 우리 엄마에게 했다. 엄마는 눈시울을 붉히셨다. 나는 안 듣는척하다가 "진짜 결혼 잘했다고 생각한다고요?"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언니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아무리 내 부모라도 병시중을 하는 일은 힘이 들 것이다. 시어머니께서 아프시면 나는 모셔올 수 있을까, 안되더라도 해야 하겠지만, 건강한 시어머니를 두고 벌써 이런 걱정을 하고 있으니 나는 글러먹었다.

우리 부모님이 아프시면 우리 남편은 옛날의 우리 아빠처럼, 우리 오빠처럼 흔쾌히 모셔 올 사람일까. 닥쳐봐야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가족이라는 이름의 누군가가 어느 날은 나를 힘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가족이다. 마냥 좋기만 하지도 않고, 마냥 힘들기만 하지도 않다.

아무리 자기 부모라도 결국 병간호를 했던 엄마와 언니의 마음까지는 짐작도 되지 않는다.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왠지 두렵다는 마음이 먼저 드는 나는 아직도 갈길이 먼 철부지면서, 이제 부모의 늙음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서 조금은 슬프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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