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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May 22. 2023

우리 남편은 허당입니다.

연애기간이 짧았다. 그 사람의 존재를 알게 된 날로부터 정확히 7개월 후에 우리는 결혼식장에 서있었으니까.

연애를 많이 해보면 좋은 남자를 골라서 결혼을 잘한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래서 연애를 많이 해보라는 선배들의 충고를 늘 귀담아 들었지만, 많이 하고 싶다고 하게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누군가가 나를 좋다고 해줘야 연애가 성립되니까 말이다. 나만 좋으면 뭐 하냐는 말이다.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은 나에게 호감이 없었고, 나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은 죄다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아무도 주지 않은 노처녀라는 딱지를 혼자서 짊어지고 있던 어느 날 남편을 만났다.


그는 내 눈에 대단해 보였다. 동갑이었지만 나보다 삶의 지혜가 넘쳐 보였고, 뭐든지 뚝딱뚝딱 고쳤으며 아는 것도 많아 보였다. 어렸을 때는 공부를 잘했고, 초등학교 시절 전교 어린이 회장이었다는 것이 시할머니의 레퍼토리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전교 어린이 회장이라는 게 왜 그렇게 또 멋있어 보였을까. 딱 초등학교 때까지 잘 나갔다는 말임을 왜 깨닫지 못했을까.


그와 첫 데이트에서 경마장에 갔다. 그런 곳에 처음 가본 나는 도박 같은 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돈을 건다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건 말이 앞서나가기 시작할 때 엄청 흥분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마치 월드컵에서 우리 선수가 골대 앞까지 드리블을 해가고 있는데 소리를 안지를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옆에 있는 그를 슬쩍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런 흥분되는 순간에 저 여유로운 표정이라니. 그는 우리가 건 말이 앞서 달려가는 상황에서도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았다. 와 감정을 잘 조절하는 사람이구나, 이런 모습도 멋져 보였다.

그는 화를 잘 내지 않기는 한다. 운전을 할 때도 욕하거나 "아이씨"한 번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그가 하는 말이라면 다 믿었고, 이렇게 해야 한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따랐다.

하지만 살면서 하나둘씩 벗겨지는 그의 실수들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자잘한 것들은 완벽한데, 큰 일에서 한방 먹이는 소질이 있었다.


남편은 건설회사에 다닌다. 하지만 현장직이기 때문에 '노가다'에서 만큼은 전문가다. 하지만 나는 그가 건설회사에 다니니까 '분양'쪽에도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도 다 아는 것처럼 행동했기에 나는 그를 믿었다. 신혼특공으로 분양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날, 우리는 서류를 제대로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고, 아기띠에 아기를 넣은 나는 마감시간에 맞춰 주민센터로 인감증명서를 떼려 다녀와야 했다.

하지만 인감증명서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결국 우리는 서류 미비로 신혼특공에 분양을 넣지 못했다.

모르면 나한테 알아보라고 말이라도 하던지,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해놓고 안심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뒤통수가 더 아프다.


지난 주말, 아이의 발레 콩쿠르가 있었다. 발레학원에서 헤어 메이크업을 하고 모두 함께 출발했다. 시간이 조금 아슬아슬해서 최대한 빨리 가야 했다.

하지만 출발하고 5분 후에 남편은 화장실이 급하다고 했다. 우리 남편은 어디 나가려고 할 때면 화장실에 가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는 그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남의 집 남편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꽤 된다고 해서 잠시 위안을 받았었다. 그래도 이미 출발한 도로 위에서 그러면 반칙 아닌가.

나보다는 운전을 잘하는 남편이었기에, 휴게소나 졸음쉼터를 찾아서 해결을 하겠지 싶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조금씩 안 좋아지고 그의 표정도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내비게이션을 확대해 보던 남편이 반색하며 "여기 휴게소 있다. 살았다!"를 외쳐서 나도 한시름 마음을 놓았다. 그렇게 들어선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서 볼일을 보고 출발하는데 내비게이션이 계속 방향을 못 잡았다.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휴게소에서 나서자 갑자기 도착예정 시간이 30분 이후로 훌쩍 늘어났다. "방향을 잘못 나왔나 보네." 남편의 말에 나는 "괜찮을 거야. 시작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말로 용기를 주었다. 그러나 말과는 다르게 심박수가 심각하게 오르고 있었다. 이때부터 심각해져서 아이들에게도 조용히 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다. 급똥이 마려웠던 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른들의 실수로 길을 잃었는데, 괜스레 아이들에게 화를 내게 되는 이런 상황이 너무 싫었다.


서울 도로는 계속 막혔고,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함께 나가는 콩쿠르 친구들은 벌써 도착했다는 카톡 알람이 울리고, 나는 죄송하게도 늦을 것 같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참가는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뭔가 이상하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00 아트홀 맞지 않아? 혜화역 근처?"

"어? 혜화역 아닌데 경복궁 역이 제일 가까운 역인데, 00 아트센터. 00 대학교 안에 있는 거."

"헉, 잘못 쳤는데, 00 아트홀로 가고 있었어."

"다시 찍어봐."

이미 늦은 시각인데, 다시 찍고 보니 30분이 더 늘어나고 말았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손이 떨리고 뇌가 정지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어떻게 도착지를 잘못 입력할 수가 있지." 눈물이 흘렀다.

뒷자리에서 아이도 눈물을 흘렸다. 메이크업이 번지면 안 되기에 나는 뒷지리로 건너가 아이를 끌어안았다. 속으로 욕을, 욕을 뱉어내고 싶었다.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이렇게 중요한 날에 도착지를 잘못 입력하고 여기까지 올 수가 있냐고!


결론은 광란의 질주를 하여, 다행히도 입장시간은 지났지만 5팀정도 여유가 남아 있어서 아이들은 성공적으로 무대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과 다른 어머님, 아버님께 고개 숙여 사과하느라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모두들 겉으로는 괜찮다, 다행이다고 해주셨지만 속으로는 어땠을지 알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눈물이 난다.


중간중간 허당짓을 할 때마다, 남편을 믿지 말자, 내가 먼저 알아봐야겠다는 다짐을 수두룩하게 해 왔다. 하지만 이렇게도 중요한 날에 제대로 확인을 안 하고 도착지를 설정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무리 남편을 믿지 못하더라도 이미 내비게이션을 찍은 남편한테 "잘 찍었어? 어디 봐봐. 내가 확인해 보게."라며 매사에 모든 일을 확인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에게도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을 테니 말이다.



"남편, 다른 부인들 같았으면 부부싸움 각이야. 나니까 참았지. 알지?"

"무슨 소리야. 한 배를 탔는데 다 내 잘못이라는 거야? "

정색을 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그의 태도에 다시 화가 났다. 여기서 내 잘못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봤다.

남편의 급똥 시간에 출발한 죄, 본인이 찍은 내비게이션을 확인하지 않은 죄, 중간에라도 길이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죄(나는 서울 지리를 전혀 모른다), 남편에게 도착지를 00 아트센터로 찍었는지 물어보지 않은 죄.

죄가 많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하면 나도 수녀님들처럼 마음이 평화로워질까.


초등학교 때 나의 장래희망이었던 수녀가 되지 않은 죄 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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