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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May 16. 2023

가족사진이 없어요

1학년 아들의 학교 알림장에 내일까지 "가족사진"을 가져오라는 준비물이 올라왔다. 선생님께서 원래 준비물 준비할 시간을 넉넉하게 주시고 올리시는데 하필이면 우리에게 없는 가족사진을 당장 내일까지 가져오라는 알림장을 보고 당황했다.

주말부부인 남편은 일요일 밤에 이미 떠나고 없기 때문에 나는 핸드폰 사진첩을 뒤적였다. 어디를 가더라도 아이들 사진만 찍거나 부부 중 한 명과 같이 찍은 세 식구 사진 투성이다.

온전히 4인가족을 담은 사진이 없다.


'맞다, 작년에 제주도에 갔었지. 그때 찍은 게 분명 어디 있을 텐데.'

스크롤을 내리다가 제주도 사진을 발견했으나 내가 셀카로 찍은 네식구의 사진에는 누군가가 잘려 있거나 눈밖에 안 나온 사진 투성이다.

할 수 없이 스크롤을 더 내려 무려 4년 전 사진을 찾아냈다. 아이는 4살인데 어플로 찍은 사진이라 내가 일단 잘 나왔다. 심지어 삼십대지 뭔가. 이 사진을 보여주며 "이걸로 가져갈래?" 했더니, 좋단다. 내가 이렇게 어렸네, 하면서.

나는 속으로 말한다. '나도 이렇게 어렸네.'


사진에 진심이 없는 편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시진을 잘 찍지 않는다.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별로 즐겁지 않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하루에도 수십 번 아이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때 찍은 사진과 영상은 보물 그 자체다. 돌려보면서 서로 깔깔거리는 추억 놀이를 가끔 하기도 한다. 그러고보면 사진찍는 행위가 무관심인 것이 아니라, 찍히는 대상에 대한 무관심은 아니었을까.


초등학생인 아이들의 모습을 중학생이 되어 바라본다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눈물이 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현재의 아이들은 사진을 찍어대고 싶을 정도로 귀엽지가 않아서 셔터를 잘 누르지 않게 된다. 특별히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 일을 할 때 둘째가 특히나 괴상한 표정을 지어대서 온전한 사진이 없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눈을 뒤집어 깐 그런 사진들도 훗날에는 추억 한 조각이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 어릴 때에 비하면 사진 찍기 얼마나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지, 감사해야 할 노릇이다. 그리고 지금의 아이들 모습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귀여운 모습일 테니까. 또, 점점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도 나니까.


나이가 들수록 사진첩에는 꽃사진이 늘어간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은 그 정도는 아니라서 "아직 젊다"라고 생각하려 한다. 아니면 꽃조차도 찍는 게 귀찮은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어렸을 때보다는 꽃을 보며 예쁘다, 나무가 벌써 이렇게 무성해졌네, 와-벌써 장미가 피네, 하며 자연의 변화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기는 한다.

자연의 변화를 눈치챌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꽃보다 더 꽃 같은 내 아이들의 귀한 모습도 더 많이 렌즈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미는 내년에도 피지만, 내 아이의 열 살과 여덟 살은 앞으로 영영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나의 마흔도. 인생에서 가장 젊은 호시절을 살고 있으면서도 호시절인 줄도 모르고 인상만 쓰며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았나 반성해 본다.


이번 주말에는 꼭 4명이 온전히 나온 가족사진을 찍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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