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반바지의 교훈

교훈은 없다

by 새벽책장

엘리베이터에서 손잡이에 올라가는 일은 도대체 몇 살까지 하게 되는 걸까.

이제 초등학생이니 그만할 때도 된 것 같은데, 내가 너무 허용적이었나 싶어 이제는 단호하게 엘리베이터에서 장난치는 일을 못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회적인 규범을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올라가고 싶고, 뛰어내리고 싶고, 구석이 있으면 파고들어 가고 싶은 심리가 있다.

놀이터에만 가도 위험해서 올라가지 말아야 할 곳을 굳이 꾸역꾸역 올라가는 아이들이 있다. 겁이 많은 우리 집 두 녀석은 아직 그렇게 높은 곳에는 올라가지 못한다. 그래도 다른 아이들이 하는 걸 보면 따라 해보고 싶은 아들은 요즘 들어 매달리고 올라가기에 푹 빠졌다.

어떤 친구들 중에는 손이나 발보다 마음이 앞서서 떨어지고 넘어지는 아이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그걸 보고 있는 나는 가슴이 철렁한다. 옆에 같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떨어진 아이의 엄마들이 쏘아대는 레이저 눈빛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놀이터에서 아이를 보고 있지만 일은 순식간에 벌어진다.


얼마 전에는 벤치에 앉아서 하필이면 그때 전화 온 지인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통화를 하느라고 아이들을 보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 한 어머니께서 우리 아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해서 전화를 끊고 달려가봤다. 술래잡기를 하다가 친구가 땅에 떨어진 초콜릿을 집어 들었는데, 그걸 먹었다고 놀렸다는 것이다. 분명 "야. 그거 먹지 마. 김지후 땅에 떨어진 거 먹었다. 야 그걸 왜 먹냐." 라며 소리소리 질렀을 것이다. 게다가 친구가 술래잡기 규칙을 어겼다고 뭐라고 했나 보다.

지척에 있던 나에게는 들리지 않았으니 평소보다는 크게 소리 지르지는 않았을 테지만, 친구는 기분이 상했고, 놀리지 말라고 싸움이 낫겠지.

아들은 이상하게도 놀이터에서 특히 목소리가 커지고 행동이 커진다. 한마디로 너무 심하게 '오버'를 한다. 아들이 오버할 때마다 나는 숨고 싶다. 중학년만 되도 조금 차분해지겠지,라고 생각하려 하지만 특히나 다른 친구들과 트러블이 생기는 날이면 속이 상하고 화가 나는 것은 분명하다.

울고 있는 친구에게 사과하라고 하니 순순히 "미안해"한다. 하지만 표정은 하나도 미안하지 않다.

나도 아이와 아이의 엄마에게 "지후야, 미안해." "죄송합니다."하고 고개를 숙인다.


나는 모든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유독 내 아이에게는 관대하지 못하다. 오히려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까봐 아이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경향이 있다.

'엄마는 검사나 판사가 되지 말고 아이의 변호사가 되어 주어야 한다'는 글을 읽고 무릎을 탁 쳤었지만 내 행동은 변화가 없다. 나는 남의 아이들보다 내 아이들에게 오히려 엄격한 판사가 되곤 한다.

"당신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징역 5년, 집행유예 3년에 처합니다. 땅땅땅."

집행유예기간 동안 아이가 또 잘못을 하면 더 닦달하고 더 믿지 못하고, "너 엄마랑 약속 안 지키잖아. 너랑 약속해봤자야." 라거나, 이미 잘 놀고 있는 아이에게 "놀이터에서 친구 배려해 가면서 놀아."라며 배려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

믿어주는 엄마가 되야지, 생각하면 뭐 하나. 매번 엄마는 나를 안 믿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도록 행동하는 내가 가장 문제다.


엘리베이터에서 두 녀석은 경쟁하듯 양쪽 모서리의 손잡이에 올라가서 엉덩이를 댄다.

사회적 규범에 맞지 않는 행동이다. 며칠 전 큰 아이는 거기에 걸터앉았다가 내려오면서 손잡이에 바지가 걸려 쭉 찢어지고 말았다.

속으로 "인과응보야. 아이고 가지가지한다."라고 말하며,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마 나에게서는 그런 말이 눈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을 것이다.


올라가고 매달리는 걸 도대체 몇 살까지 하는 걸까.

"이제 손잡이에 올라가는 일은 더이상 안돼. 초등학생이잖아. 지킬 건 지키자."

"엄마. 나는 안 올라가는 걸 못할 것 같아." 하며 불쌍한 표정으로 마치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말하는 아이를 보며, "네 행동인데 왜 네가 컨트롤을 못하니. 그런 것도 좀 배워야지. 안 하다 보면 안 하게 돼."


말해주고 말해주다 보면 행동에 변화가 올까, 그냥 잔소리에 불과할까.

아끼는 반바지가 찢어졌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으면 자유롭게 두고 싶은 나의 육아관이 자꾸만 흔들린다. 그 타인에게 주는 피해의 범위가 점점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놀이터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도 어찌보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이고, 손잡이에 걸터앉는 것도 누군가는 싫어하는 행동이다.

그래서 이것도 안돼, 저것도 안돼 하며 졸졸 따라다니며 아이를 제지하는 나는 제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누가 그 정도는 괜찮아요, 하며 선을 정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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