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죄송합니다.

by 새벽책장

갑자기 화가 솟구칠 때가 있다.

오늘 아침에 유튜브에서 분명 영재 엄마들의 공통점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놓고 또 이런다.

"화가 나도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고 인격적으로 대우해 줘라."

네네 알고 있습죠. 그런데 나는 그게 왜 안될까요. 정말 자괴감이 든다.


심지어 심각한 상황도 아니었다. 그냥 애 둘이 투닥거릴 뿐이다. 둘이 그럴 때 제일 화가 난다. 애를 하나만 낳았다면 나도 우아한 엄마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누가 둘셋 낳으라고 한 것도 아니면서 나는 왜 누군가를 원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애 깊은 남매나 형제들을 볼 때면 신기하다. 어떻게 저렇게 누나가 동생을 예뻐하지, 어쩜 저렇게 동생에게 양보를 잘하지. 그런 생각들 말이다.

우리 집은 누나가 절대 동생에게 양보하지 않는다. 동생은 누나가 좋아서 매일 껴안으려고 따라다닌다. 그런 동생이 침 묻혀서 싫다고 소리를 지른다. 세네 살도 아니고 침을 질질 흘리는 애도 아닌데. 그래놓고 갑자기 동생이 귀엽다고 난리다. 종잡을 수 없다.


둘이 또 네가 잘했네 내가 잘했네 싸우고 있어서 설거지하다 말고 소리를 빽 질렀다. 화를 내면 조용해지니 화를 안 낼 수가 있나. 하지만 그런 방법이 아니고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라는데, 도무지 두 아이의 감정을 다 읽어줄 수가 없다. 한 놈에게 이러했구나, 그러면 다른 놈이 잘못한 게 돼버리고, 다른 놈에게 이러해서 속상했구나, 그러면 또 다른 놈이 잘못했다는 말이 되니까. 그럼 전문가들은 말하겠지. 한 명씩 데리고 들어가서 얘기하라고. 쓰읍. 한 명 데리고 방에 들어가면 나머지 한 명이 거실에 가만히 있는 게 신기한데.


독서 모임을 하다가 이야기가 나온 것 중에 의외로 "오은영이 싫어요."라는 분들이 많으셨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라는 상황이 사실은 같아 보여도 엄밀히 따지면 모두 천차만별이다. 아이는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놀이터에서 자기보다 더 까부는 친구들이 주변에 있으면 아들은 얌전해지곤 한다. 심지어 의젓해 보일 때도 있다. 그 아이의 주체 못 하는 소리 지름과 난리법석에 동조하지 않고, "그러지 마."하고 만다.

의도치 않게 동생들과 놀이터에 남게 된 날에는 주변에서 "형이라서 역시 의젓하네요."소리를 백번은 들은 것 같다. 내가 봐도 의젓했으니 영유아 어머님들 눈에 멋진 형아로 비췄을 법했다.

하지만 자기보다 얌전한 친구들, 그리고 자신의 까부는 모습을 좋아해 주는 친구들이 옆에 있을 때면 나는 창피해서 집에 가고 싶어질 지경이다. 어찌나 엉덩이를 씰룩 대고 소리를 지르는지.

아이들도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발을 뻗을 만하니까 뻗는 거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집에서는 동생에게 절대로 양보하지 않지만,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양보를 잘한다는 첫째 아이. 이중적인 게 아니고 사회생활을 잘 해내고 있는 모양새다. 잘하고 있다.


나조차도 집에서는 소리를 빽 지르지만 어디 교실에서 그럴 수 있을까. 한 번 숨을 들이쉬고 복식호흡으로 목소리를 내리 깔 수밖에.

집에서도 엄마가 참고 있다는 걸 좀 보여주고 싶은데, 왜 참아지지가 않는 건지. 나도 발을 뻗을 곳을 찾고 내 맘대로 발을 뻗고 있나 보다.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지 않다. 엄마가 참고 있으니까 그만하자. 엄마가 참고 있으니까 그만하자. 엄마가 참고 있으니까 그만하자. 외울 때까지 반복한다.


"엄마 샤워하게 그만 좀 해라" 소리를 질러버렸다. 샤워하려고 옷을 반쯤 벗었는데, 또 소리를 지르고 싸우고 있으니 팔은 한쪽만 낀 채로 거실로 나와서 빽빽 거렸다.

옷을 반쯤 걸친 여자가 소리를 지른다. 와 상상하니까 굉장히 엽기적이고 무섭다.

샤워를 끝내고 화장실을 쓱쓱 닦고 있으니 꼬맹이가 와서 문을 열고 갑자기 백허그를 한다.

"엄마 아까 화나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 애들 때문에 못살아.

눈물이 반짝하고, 나는 돌아서서 아들을 꼭 껴안는다.

"엄마도 화내서 미안해."

아이는 만족한 웃음소리를 내며 쪼르르 나간다.

화장실 청소하다가 눈물을 훔치고, 누가 나 좀 혼내 줬으면 싶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이 자라니 정말 사랑한다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아직 늦지 않았다. 오늘의 내가 가장 빠른 나다.

오늘은 등교하는 아이에게, 하교하고 돌아온 아이에게 제일 먼저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







이전 15화찢어진 반바지의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