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브를 맞추는 건

by 새벽책장

살면서 해보고 싶은데 도저히 배울 엄두가 안 나거나 중간에 포기해 버리는 사소한 일들이 있다.

예를 들면 댄스나 베이킹, 스페인어 같은 것들이 나에게는 그런 일들이다.

댄스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멋지게 웨이브를 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배움에 대한 욕망마저도 사라져 버렸고, 딸이라도 추면 좋을 것 같아서 방과 후 방송댄스를 배우는 아이를 바라만 보고 있다. 그런데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어린이가 아이돌 댄스를 장소 불문하고 춰대는 꼴도 썩 좋아 보이지가 않다. 욕심부리다 보면 늘 그렇게 나의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곤 한다. 베이킹은 이십여 년 전에 책을 사고 재료를 구매해서 몇 번 해본 적이 있지만 생각보다 재료비가 많이 들어서 포기를 했었다. 스페인어는 괜히 멋있어 보였는데, "올라" 한마디밖에 하지 못하고 이제는 손을 놓은 지 오래다.


영재발굴단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큐브의 달인들이 나올 때가 있다. 현란한 손놀림으로 샤샤샥 하고 번개처럼 맞춰지는 큐브. 그런 걸 볼 때면 나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그러나 주변에서 큐브를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도 어려웠고, 사실 나도 배워야겠다는 엄청난 의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것도 마냥 나에게는 요원한 일이었다.


여덟 살이 된 둘째 아이가 학교에서 큐브를 잘하는 친구를 만나고 오더니 4년째 집에 굴러만 다니던 큐브를 찾아들고 와서 배워보고 싶어 했다.

"방과 후 수업에 큐브반이 있던데, 그거 엄청 재미있대. 다음 분기에 한번 들어볼래?"

"아니."

수업은 듣기 싫으면서 잘하고는 싶은 마음. 어린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겠지.

"그런데 엄마도 큐브는 못하는데, 어디 가서 배우지 않으면 할 수는 없지."

제 누나가 학교에서 '트위스트'와 '데이지'에 대해 친구들에게 배운 구석이 있어서 그걸 동생에게 가르쳐줬다.

"트위스트를 하면 원래대로 돌아와. 그리고 처음 시작은 데이지를 만드는 거야. 하얀색을 여기 여기에 맞춰봐."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큰아이는 큐브에 흥미가 없어서 던져버렸고, 둘째 아이는 짜증만 내고 있었다.

모양이 엉망이 되자, 이걸 맞추라고 나에게 미션을 주고 입을 내밀고 앉아버린다.

"야. 엄마도 못 맞춘다니까!"

머리가 안되면 힘으로라도 해야지 어쩌겠는가. 나는 큐브를 분해해서 색을 맞춰 아이에게 건넸다.

빨강, 파랑, 노랑, 연두, 하양, 주황 여섯 면의 색깔이 가지런히 정렬된 모습을 보자 만족하는 표정을 지으며 가지고 쪼르르 가버린다. 휴 손가락 아파.

어느 날은 큐브를 분해하고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이 "하, 뭐 하냐? 코미디 영화 찍냐?" 라며 비웃었다.

그래,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렇게 힘으로 맞춰진 평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트위스트 기술에도 익숙하지 않은 아이가 트위스트를 하다가 손가락이 꼬여 큐브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기 어려워지고 만다.

아이는 가지고 와서 다시 나에게 내밀고 나는 다시 큐브를 조립한다.

몇 번의 분해와 조립 끝에 "와! 나 안 하고 싶다. 아씨. 진짜 짜증 나네. 내가 이걸 배우고야 말겠어."라는 마음이 들고 말았다. 역시 배움에는 적절한 외부자극이 필요한가 보다.


호기롭게 유튜브를 켜고 맨 위에 나오는 영상을 클릭한다. 배우면 어쨌든 아이에게 알려줄 수도 있고, 사십여 년간 멋진 손놀림을 부러워했는데, 이제는 내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겠지, 하는 마음도 들어 살짝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유 선생님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여러 단계가 있기에 초보자인 나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도통 모르겠고 영상은 이미 끝이 나있었다.

첫날은 그렇게 데이지에서 아랫면을 흰색으로 맞추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나의 단계를 성공하고 나니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기기는 했으나, 하교하고 돌아온 아이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했나 보다. 하얀색 면만 맞추는 걸 알려줬지만 여섯 면이 가지런히 아름다운 색을 뽐내도록 정렬하라고 다시 나에게 짜증을 부린다.

'이 눔 시끼, 내가 지 하인이야 뭐야.' 하루에도 스무 번씩 드는 생각을 억누르며 "엄마한테 예의 지켜서 말해."라는 한 마디만 던진다.

제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많은 게 어디 큐브뿐이랴. 인생이 원래 그러한 것인 줄 아직 여덟 살은 모를 수 있지.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아서 생기는 짜증까지 야단을 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나를 괴롭히는 건 참기가 어렵긴 하다. 뭐, 내가 자식을 낳은 죄인이니까 벌을 달게 받자, 하는 마음으로 콧김을 내뿜으며 나는 다음날에도 유 선생님께 큐브 강의를 듣는다.

아이의 짜증이 듣기 싫던 그날, 드디어 나는 삼일 만에 큐브를 맞추고야 말았다.

해보고 싶다, 는 작은 마음을 가지고 살던 사십 년이 단 삼일 만에 해냈다, 로 바뀌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느낀 작은 성취감. 그것은 나에게도 신선한 기분을 되새겨 주었다.


하교하고 돌아온 아이에게 "이호야 엄마 큐브 이제 달인 됐다." 말해주고 그 앞에서 큐브를 썩썩 돌려서 보여주었다. 물론 처음에는 종이에 하나하나 적어놓은 단계들을 보면서 해야 했다.

뭔가 마법의 주문 같은 법칙들도 외워댔다. "올돌내돌 올돌돌내"

맞다, 이건 마법의 주문이다.

이제는 종이를 보지 않고도 큐브는 내 손 안에서 여섯 면이 가지런히 정리된 예쁜 정육면체로 바뀐다.

해보고 싶었던 사소한 일들을 해내는 즐거움이 꽤나 만족스럽다.

물론 쿠브의 달인들처럼 몇 초만에 스스슥 썩 하고 맞춰지지는 않는다. 나의 큐브는 매우 느리고 천천히 움직인다. 모서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제자리에 맞는 짝을 찾아낸다. 빠르게 할 필요는 느끼지 못한다. 나는 그저 천천히 하더라도 큐브를 맞추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원래의 목적인 아들에게 알려주기는 대실패다. 하나하나 알려주어도 사실 헷갈리는 부분이 많기도 하고 공간감각이 아직 발달하지 않아서인지 모서리의 색깔을 맞춰서 제자리에 놓는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 또다시 그 녀석의 짜증은 시작되고 만다.

결국 "엄마한테 왜 이렇게 버릇없이 말하니? 엄마가 네 하인이야? 알려주면 그냥 배우면 되지. 왜 자꾸 알려주는 사람한테 짜증이야?" 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이제 녀석은 제 기분이 좋을 때 한 번씩 여기 다음 부분 알려줘, 하며 어제 알려준 그 부분을 다시 설명해 주기를 바란다.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해 주려고 나는 또 노력한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매일 큐브의 색깔을 맞춰가듯 서로에게 맞춰가는 연습을 한다.

그러면서 한 번씩은 기쁨도 느끼고 짜증도 느낀다. 색이 다 맞춰져도, 그게 끝은 아니라는 것도 안다.

다시 헝클어진 큐브는 기분이 좋은 날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가는 연습을 한다.

그러다 보면 나도, 내 아이도 언젠가는 큐브의 달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서로에게 맞춰가는 연습. 내가 달인이 되야할 것은 큐브가 아니다.

오늘도 나는 '내 아이들의 달인'이 되기 위해 서로의 모서리를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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