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가해자가 될 뻔했습니다

by 새벽책장

저녁 5시 10분.

아이 친구 엄마 번호가 휴대폰에 떴다. 이상하다. 이 시간에 전화할 일이 없는데, 묘한 긴장감에 전화를 받았다. 그동안 아이 친구 엄마와 전화번호를 교환했지만 딱히 통화할 일도 없었다. 나는 엄마들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왠지 힘들다. 아이들 생일파티에서 몇 시간 동안 함께 있어도 편한 엄마가 있고, 놀이터에서 삼십 분 같이 있는 것조차 불편한 엄마가 있는데, 지금 전화가 온 엄마는 후자에 속한다.


"이호 엄마! 이호가 아까 학교에서 우리 땡땡이한테 욕해보라고 시켰는데 안 한다고 하니까 뺨을 때렸다는데요!"

인사도 없이, 통화가능하냐는 말도 없이 자기 할 말을 먼저 하는 사람은 대체로 흥분해 있기 마련이다. 아니면 예의가 없거나.

나는 먼저 "땡땡이가 그런 말을 했어요? 그게 사실이라면 죄송해요. 저도 이호한테 물어보고 다시 전화드릴게요." 하고 끊었다. 내가 침착하게 말해서인지 상대방은 갑자기 할 말을 잃은 듯이 아무 말도 없었다.

전화를 끊고 화가 났다. "이호야, 이게 무슨 말이야. 네가 땡땡이한테 욕하라고 시키고 뺨을 때렸다는데?"

이호는 말 그대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게 무슨 말이야?"라며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저 표정을 안다. 정말로 거짓말하지 않을 때 나오는 표정이다.


모든 엄마는 자식을 믿어줘야 한다. 세상 모두가 욕을 해도 엄마만큼은 믿어줘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에도 믿어줘야 하는가? 네가 아무리 잘못을 해도 나는 너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잘못을 했으니 혼나야 하는 건 당연하다.


이호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쉬는 시간에 땡땡이가 장난을 쳐서 이호가 "아이씨"라고 했더니 땡땡이가 "씨 0"이라는 욕을 해서 선생님께 일렀단다. 그 이후에 선생님에게 땡땡이가 불려 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까지 봤다고 했고, 그래서 하교할 때 엄마들에게 서로 "땡땡이가 욕했어요!" "이호가 먼저 욕했어요!"라며 맥락 없는 말들을 했던 것이었다.(사실 뺨을 맞았다면 하교할 때 엄마한테 먼저 말하지 않았을까. 그런 말 없이 30분 동안 놀이터에서 같이 놀았다는 게 먼저 이상했다.)

또 중간 시간에 땡땡이가 손가락 욕을 해서 다른 친구와 같이 그걸 목격한 이호와 친구가 동시에 "욕하지 마"라고 말하고 서로 "찌찌뽕"이라고 했다고 한다. 상황 설명이 너무 구체적이라서 나는 우리 아들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말이다. 땡땡이 엄마는 땡땡이를 믿듯이.

나는 땡땡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들은 내용을 설명했고, 그녀는 우리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에 어이없다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럼 누가 거짓말하는지 밝혀서 혼내야 하지 않겠어요?"

뭐, 그렇겠지. 뺨을 맞았다니까 많이 화가 났나 보다.

나는 늘 생각했다. 아이가 때리고 오는 것보다 맞는 게 차라리 낫다고. 그래서 차라리 맞고 오지,라는 생각을 하며 나 또한 가슴이 떨리고 손도 떨렸다.


저녁밥을 해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땡땡이는 학원으로 출발하려는지 학원가방까지 챙겨서 나와있었다. 나는 또 왜 이런 것까지 배려하는지 그 집 앞으로 찾아가고 있는 내가 모지리 같았다.

아이와 손잡고 가는 와중에

"엄마는 이호 말을 믿어. 그런데 혹시 잘 못 말한 게 있으면 엄마가 도와줄 수 없으니까 엄마한테는 조금도 틀리게 말한 게 있으면 안 돼. 혹시 아까 말한 것 중에 고치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 이야기해 줘."

"전부 진짠데?" 따위의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이호를 꼭 안고 갔다.


표정만으로도 독을 뿜어낼 것처럼 두 사람은 화가 잔뜩 나서 우리 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글쎄, 그 입장이 안 돼 보아서 이해가 안 가는 것일까. 나는 그녀가 조금 무서웠다.


학교에서 괜히 화가 나 소리 지르는 학부모들이 오버랩되었다고 느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 상황에서 뭔가 설명하고 납득시키려는 그런 노력들이 구차하게 느껴지며 밑바닥까지 떨어지던 느낌을 아이 친구 엄마에게도 느끼고 있었다. 뭐, 아직 가해자라고 몰리는 상황이니까 일단 죄송 모드로 나가야 개싸움이 안될걸 알기도 했고, 싸우는 걸 회피하는 성격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호는 태평스럽게 앉아서 "땡땡이랑 놀아도 돼요?"따위의 상황파악 못하는 말을 해대고 있었고, 반면에 땡땡이는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씩씩대고 있었다. 3시간 전에 재밌게 놀던 애가 맞나 싶었다.

그녀는 이호를 보자마자 "시시티브이 본다? 시시티브이 봐?"라며 아이를 쳐다보았다. 이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그러면서 또 멋쩍게 웃었고, 땡땡이는 자기 엄마를 보면서 "그런데 엄마 있잖아. 이호가 먼저 이래이래 저래 저래해서 내가 기분이 답답했어. 그래서 엄마 있잖아. 어쩌고 저쩌고." 솔직히 나는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횡설수설을 알아듣는 척하면서 앉아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아들에게 "그래서 이호가 너 때렸어?" 물었다.

그러자 울 것 같은 표정의 땡땡이는 "아니"하고 말하고 말았다.

"뭐? 안 때렸다고? 하.. 아까 엄마가 여러 번 물어봤을 때는 때렸다며?"

"안 때렸어."

"그럼 네가 욕은 했어?"

"응"

"뭐? 씨0이라고 욕했다고?"

"응. 엄마 미안해. 엄마 한 번만 봐줘."

땡땡이는 순진하게도 시시티브이를 본다는 말에 아마 무서웠던 모양이었다. 반면에 이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 두려울 게 없었고 말이다.


그 후 상황은 땡땡이 엄마의 사과와 땡땡이의 사과. 그리고 나의 안도의 한숨으로 이어졌다.




나는 학교에서 많은 아이들을 만나지만 "친구가 00하라고 시켰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자신이 욕을 해놓고 친구가 시켰다고 말하는 경우가 제일 많은데, 친구가 욕하라고 시켰다는 말에는 어쨌든 자신이 욕했다는 사실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이미 욕은 해버렸고 그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거기에 친구가 자신을 때렸다고 하는 경우도 많은데, 뺨을 때렸다는 경우는 자주 보기는 어렵다. 물론 실제로 친구 뺨을 때리기도 하지만 보통은 팔이나 가슴을 미는 정도지 뺨을 때리는 8살은 거의 보기 어렵다.

땡땡이가 왜 이호가 뺨을 때렸다는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아이들은 거짓말을 한다. 어른도 하지 않는가, 아이들의 거짓말은 정상적인 발달과정이다. 또한 남자아이들은 "욕"이나 "폭력"에 관심을 가지는 시기가 있다. 우리 아이가 욕을 했다고 너무 놀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잘못된 행동을 하면 혼을 낼 필요는 있다.

나는 아이의 학교생활을 잘 모른다. "아이씨"라는 말을 했다는 건 아이가 인정했으니까 그건 또 내가 반성을 한다. 그렇다. 나는 운전 중에 아이씨를 자주 외친다. 너무 무섭기 때문이다. 누가 갑자기 끼어들거나 급정거를 할 때에는 아이씨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고쳐야겠다고 또 아이를 통해 반성하게 된다.


땡땡이 엄마는 땡땡이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럼 우리를 만나러 나와서 땡땡이가 사실을 말하기 전까지 아이의 거짓말에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니, 돌려 말하면 우리 아이가 뺨을 때린 걸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곱씹을수록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동네에서 미운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남의 아이에게 동네 아줌마가 훈계를 하는 게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잘못을 누구라도 야단치고 혼내줄 수 있는 세상이면 더 좋으련만, 교사가 아이를 지도해도 아동학대가 되는 세상에서 동네 아줌마가 기분 나쁘게 말했다고 신고 안 당하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아아기 커 갈수록 점점 각박해지고 아이를 키우기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우리 아들이 욕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게 아니라서 안도했다면 나는 너무 이기적이라고 욕먹어도 할 수 없다.


땡땡이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왜 우리 이호를 걸고넘어졌을까. 초등교사 16년 차지만 솔직히 모르겠다. 원인은 여러 가지일 테니까. 엄마한테 거짓말을 꼭 해야 하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고, 이호를 나쁘게 말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말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속이 좋지 않았다.

"땡땡이가 거짓말했다고 친구들에게 말하거나 놀리거나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래도 사이좋게 놀아야 하는 거야."라고 말해주면서도 나는 이호가 앞으로 땡땡이와 거리를 두었으면 좋겠다는 이기심을 숨기고 있다.

"땡땡이가 거짓말했으니까 놀릴 거야."라고 말하는 이호도 아마 속상했나 보다. 그래도 나는 아이가 또 괜히 트러블을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친구의 잘못을 한 번쯤은 용서해 주고 모르는 척해주는 게 진짜 멋진 거야. 놀리고 또 문제 생기면 사이가 더 나빠질 뿐이야." 라며 설득 아닌 설득을 해보지만 이호의 마음까지 내가 어떻게 돌이켜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날 저녁은 이호가 거짓말도, 폭력도 행사하지 않았고, 욕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자랑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비록 단원평가 점수는 땡땡이보다 훨씬 볼품없지만, 초등학교 1학년 아이에게 공부와 학원으로 바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더 갖게 되었다.

나는 이호에게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는다.(숙제는 하라고 잔소리 잔뜩 하지만 말이다.) 많이 뛰어놀고 친구 마음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길, 지금처럼 적어도 엄마에게만큼은 거짓말이 필요 없는 환경에서 자라도록 아이를 더 많이 보듬어줘야겠다는 생각이다.


누가 정답인지 장담은 못한다. 단원평가 백점을 받지 못하면 엄마의 한숨이 기다리는 땡땡이, 수학학원 레벨을 높이는 게 목표라는 땡땡이. 중학생들이 읽는 영어 원서를 읽는다는 땡땡이가 못 자란다는 게 절대 아니다.

그래도 나는 이호가 단원평가를 50점 받아도 괜찮다. 사실 우리 반 아이가 단원평가를 50점 맞으면 남아서 가르치고 가르치고 보충하고 보충한다. 그런데 내 아이는 왜 괜찮은지 나도 모르겠다. 아마 믿음이 있어서 아닐까. 결국 잘할 거라는 믿음이 있다. 아직도 혼자 책을 읽지는 않지만 엄마가 읽어줄 때는 아무리 재밌는 걸 하다가도 달려오는 모습만으로도 만족한다.


요즘 들어 주위에서 초등 저학년인데도 공부 때문에 갈등하는 가정을 자주 목격했다. 그리고 저학년부터 그렇게 자라던 아이들의 엄마가 고등엄마가 되어서 울고 있는 경우도 최근에 여러 번 마주쳤다. 아이가 정신과에 가야 한다고, 자해를 한다고, 엄마와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반면에 공부하라고 잔소리 안 하며 키웠고,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책을 많이 읽고 자기 꿈을 찾았으며, 고등학생인데도 (여전히 공부는 안 하지만) 엄마와 사이가 너무 좋은 집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 엄마는 아이 걱정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찾았고, 열심히 하고 있으니 걱정할 게 없다는 엄마의 마인드를 본받고 싶었다.


시어머니는 지금 공부 못하는 건 하등 상관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항상 대학 가봐야 안다고 하신다. 어머님이 말씀하시는 좋은 대학에 가려면 지금 공부를 잘해야 한다. 엄마가 뭔가 관심을 곤두세우고 아이를 가이드해야 한다. 생기부 공부도 해야 하고 정보도 수집해야 한다. 계속 공부 못하면 결국 소위말하는 명문대에는 갈 수 없다. 그러니 어머님이 결국 대학 가봐야 안다는 말씀이 나에게 부담감이 된다. 아이가 대학을 못 가면 엄마 탓이 되어버리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잘못되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꿈이 있었으면 좋겠다. 꿈이 있는 엄마와 꿈이 있는 아이. 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해보고 실패하고, 도전하고 찾아봐야 한다.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건 잔소리로는 어림도 없고 어떤 가이드도 필요치 않다. 가슴에 희망이 부풀어 있는 사람, 실패해도 다시 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지난주 우리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에 학교폭력으로 신고를 당할뻔했다. 아이의 말밖에 증거가 없으니 그렇다고 우기면 영락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교사 엄마는 아동학대로 언제든지 신고당할 수 있고, 아들은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당할 수 있는 사회.

억울해도 툭툭 털고 일어서는 단단함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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