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아들 친구 엄마가 브런치를 먹자고 했다

by 새벽책장

아이는 재민이 이야기를 가끔 했다. 재민이는 돌봄 교실에 다녀서 하교할 때 마주친 적이 없지만 아이가 여러 번 이야기한 탓에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놀이터에서 같이 놀지 않는 재민이의 존재는 점차 흐릿해지더니 어느샌가 아이의 입에서도 내 입에서도 재민이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어느 날 낯선 번호로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재민이 엄마예요. 혹시 내일 시간 되시면 같이 커피 한잔 하실래요?"

나는 낯가림이 심한 편이다. 낯선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일 중에 하나라고 누누이 꼽고 다니는 극 I성향이다. 그런데,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문자에 한동안 뭐라고 답할지 멍해졌다.

순간 드는 생각은

"둘째가 재민이 때린 거 아냐? 만나서 항의하려고?"였다.

학교에서 학부모가 "내일 교실로 찾아뵙겠습니다."라고 했다면 밤잠은 이미 글러버린 상태였을 테고, 교사와 학부모가 상담기간도 아닌데 굳이 만날 일은 그런 일이 대부분이었으니 학부모와의 만남은 즐거운 일이 아니었던 최근의 사회 분위기가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교사 입장이 아니니까, 엄마 대 엄마로 만나는 일은 그런 게 아닐 거라고, 혼자 난리부르스를 추다가, 답장을 했다.

"네 좋아요. 11시쯤에 뵐까요?"

"그래요. 브런치도 괜찮으시죠? 제가 예약해 놓을게요. 3단지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되니까 2단지에서 만나서 같이 걸어가요."

그렇게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이 친구 엄마와 브런치를 먹게 되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소개팅을 참 많이 했다. 결혼정보회사에 낸 돈도 몇 백이었고, 동료 선배들이 시켜준 소개팅까지 하면 40번째까지 세다가 그만뒀지만 어림잡아 80번은 족히 만났을 거다.

그때는 그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처럼 여겨졌다. 결혼말이다. 그래서 돈까지 써가며 누군가와 인연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써댔다.

어쩌다가 약속을 잡았는데 취소가 되면 어찌나 행복하던지. 나는 혼자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몰랐다. 나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한 채 낯선 사람과의 휴일을 어색하게 보내는데 시간과 돈을 써야 했는지,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푸릇푸릇한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안 해도 괜찮아. 하고 싶은 걸 해."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마흔 넘은 지금도 이렇게 힘들 일이냐,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랜만에 생긴 약속이 설렜다. 물론 약간 말이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2단지에서 재민이 엄마를 만났다.

처음 만난 사이니 당연히 어색하게 인사를 했고, 어색하게 함께 브런치 카페로 걸어갔다.

그러나 이건 소개팅이 아니다. 아이들이라는 매개체가 있어서인지 신기하게도 어색함은 금세 사라졌다. 아니면 내가 이제 아줌마가 다 되어 낯선 사람과도 거리낌 없이 대화할 수 있는 뻔뻔함이 생긴 건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그렇게 두 시간을 아이들과 학교 이야기로 깔깔 거리며 웃다가 아이를 하교시키기 위해 학교로 향했다. 재민이는 돌봄 교실로 가기 때문에 2단지에서 재민이 엄마와 헤어지며 또 보자고 기약했다.

물론 또 만나야 한다. 재민이 어머니께서 밥값을 계산하셨기 때문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내 친구들도 잘 만나지 못하는데, 이렇게 아이 친구 엄마라는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어 가는 일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다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재민이 엄마와 절친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아이 친구 엄마는 그런 존재니까 말이다. 하지만 브런치 정도야 먹을 수 있는 사이는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 앞에서 매일 마주치는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인사하고 아이와 엄마의 안부를 묻는다. 사람 만나는 게 싫은 나도 어차피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야만 하는 존재이니 아줌마가 되어서 웃기지 않아도 열심히 웃는다.

엄마 없이 놀고 있는 놀이터의 어린이들에게도 최선을 다해 웃어주고, 간식을 나누어 먹인다.


1학년을 하교시키고, 드디어 아이들이 다 떠난 어질러진 교실에서 책상 줄을 맞추고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는 그 시간이 익숙한 나였지만, 이제 학교 밖에서 하교 후 어린이들의 일상도, 그 속에서 엄마들의 노고도 알게 되었기에 조금은 더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결국은 사람 사는 세상이니까. 혼자서 노는 놀이터는 친구들과 함께 노는 놀이터보다 재미가 없다는 걸 우리 집 일 학년도 이미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도 엄마들에 대한 편견을 조금쯤은 깨부술 수 있는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고, 모두가 결국은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애쓰고 있는 '어른이'들이라는 걸 느끼는 순간, 그들 모두 대견하고 응원해줘야 할 존재들이라는 사실만이 문득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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