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달리기는 재밌잖아요

by 새벽책장

내가 학생이었을 때 가장 싫어하던 과목은 체육이었다. 아마(근거는 없지만) 대략 20년 동안 초등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목 1위가 체육일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체육시간이 싫었다.

발령을 받고 수많은 어린이들을 만났지만 아직까지 체육을 싫어하는 어린이는 없었다. 나처럼 자기의 의견을 말하는데 서툴렀던 어린이가 속마음을 숨긴 채 체육시간을 좋아하는 척했던 적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체육시간이 싫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어린이는 본 적이 없다.

물론, 체육이라고 좋다고 운동장에 나갔지만 갑자기 배가 아프거나 다리가 아파서 스탠드에 앉아있겠다는 6학년 언니들은 몇몇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녀들도 피구를 하거나 발야구를 하는 날에는 절대로 아프지 않았다.


그렇게도 좋아하는 체육시간을 어리석은 초임시절에는 무기로 사용했다.

"너희들 오늘 사회 쪽지시험 다 통과 못하면 체육 없다."

그러면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정말로 눈이 휘둥그레진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녀석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니까) 으아아악, 너무해요!!라는 비명소리가 울려 퍼진다.

뭐, 체육이 싫었던 어린이가 교사가 된다고 다시 좋아질 리는 없으니, 체육이 든 날 비가 오면 나는 속으로 기뻐했다. 당시에 우리 학교에는 강당이 없었으므로 비가 온다는 것은 교실 체육을 하거나, 다른 수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사건인지, 당시의 나는 미처 몰랐다. 지금이라도 사죄하고 싶어 진다.


코로나 이후로 부모님을 초대하는 가을운동회가 자취를 감췄다. 대신 학년 체육대회라는 명목으로 자그맣게 3시간 정도 게임을 하곤 하는데, 그나마도 어린이들은 기뻐 날 뛴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학교에서 운동회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계시는 학부모님들과 솜사탕을 파는 아저씨들을 보는 건 예사였다.

성대한 가을 운동회에는 당연히 연습도 필요하다. 운동회 그 하루를 위해 얼마나 많은 수업시간을 빼서 연습을 해야 하는지 알면 학부모님들이 절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어린이들은 신나겠지만.

그 해 나는 6학년 남녀 부채춤을 지도했었다. 여자아이들만 부채춤을 추는 건 뭔가 남녀차별 같다는 의견이 슬슬 풍겨오던 시대분위기여서 남자아이들도 여자아이들도 귀여운 한복을 차려입고 디제이디오씨의 뱃놀이에 맞춰 흥겨운 부채춤을 추었었다. 아, 그걸 지도하는데 얼마나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는지, 장정 같은 6학년 남자 어린이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벌써 나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꼰대 교사가 되어가고 있다.

약 200명의 어린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동작은 지금 생각해도 경이롭다.


하지만 당시 가을 운동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부채춤이 아니다.

운동회의 꽃, 바로 이어달리기다. 그중에서도 1학년들의 이어달리기. 1학년들은 이어달리기가 뭔지 모른다. 바통을 넘겨야 하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그래서 연습을 꼭 해야 하는데, 어떤 친구가 연습을 했는데도 몰랐던지, 연습하는 날 빠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운동회 당일, 바통을 받고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모두 놀랐고, 이어달리기를 주관하던 체육부장님은 달리는 아이에게 전속력으로 질주해서 아이를 돌려세워주셨다. 뛰던 아이는 돌아간 몸 그대로 올바른 방향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6학년 담임 눈에는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럽고 웃기던지 배꼽을 잡고 우리 반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상대팀이었기에 우리 반 아이들도 웃을 수 있었지, 같은 백팀이었다면 녀석들은 1학년이라도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말이다.


내가 삼십 대가 되면서는 어린이들에게 체육시간이란 절대적으로 소중한 것임을 알게 되었기에, 그리고 체육시간을 통해서 담임과 아이들 간에 신뢰와 우정이 싹튼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체육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한다. 강당시간, 다목적실 시간에 무조건 체육을 하러 가고 날이 좋으면 운동장에서도 뭐든 하려고 한다.

교육과정에 있는 체육 수업을 하는 것에 대해 간혹 아이들이 불만을 품기도 한다. 학기 초에는 체육시간은 매일 피구와 축구를 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잘못 가진 어린이들이 있지만 교육과정에 나오는 뜀틀과 매트운동 따위를 잘하고 나서 남는 시간에 피구를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수학시간에 게임을 하자는 것과 뭐가 다른 주장이겠는가. 마치 피구나 발야구를 나에게 맡겨놓은 양 "또 뜀틀 해요?"라고 입을 내밀지만 나는 주간학습을 내밀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끝이다.


매일 "선생님 체육시간에 뭐해요?"

하면 나는 "체육"이라고 대답한다.

"선생님 국어 시간에 뭐해요?"

그럼 "국어"라고 대답하듯이.


단 하루의 가을 운동회를 위해 엄연히 수업이 이루어져야 할 다른 시간들을 빼서 연습을 하고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애쓰던 모습들이 점차 사라져 가는 것에 찬성한다.

이어달리기에서 바통을 떨어뜨리든, 거꾸로 달리든 재미있으면 된 것처럼 말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부채춤을 연습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즐거움과 배움이 있겠지만 그걸 위해 희생되고 포기되었던 다른 일들을 생각하면 자유로운 영혼으로 아무 노래에 맞춰 아무 춤이나 춰대는 시간이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무슨 교육전문가라고 할 수도 없는 일개 말단 교사지만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매일매일 학교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는 그런 교실이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학교 가기를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나라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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