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에 꽤 유명한 국제학교가 있다. 연예인들의 자녀들도 다닌다는 소문이 무성하고, 실제로 보내려면 돈이 많이 드는 학교이다. 학교 주변을 지날 일이 있으면 무엇인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지는데 이건 그냥 내 기분 탓일 수도 있다.
여기 살면서 그 학교를 부러워한 적은 없었다. 일단 입학시험을 봐야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국제학교 입학시험을 볼 수 있는 영어실력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고, 무엇보다도 일 년에 최소 5천 이상이 든다는 등록금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제 딸아이 발레학원 픽업을 가려고 지하주차장에 차를 댔다.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데, 마침 발레학원 가려는 다른 아이가 차에서 내리는 걸 보았다. 엄마와 아이가 차문을 닫고 돌아설 때 입고 있는 점퍼가 눈에 들어왔다. 국제 학교 점퍼였다. 순간 속물처럼 나는 그녀의 차를 돌아보았다. 역시, BMW였다.
실제로 국제 학교 학생을 처음 본 나는 존재한다는 소문만 무성한 유니콘을 실제로 만난 듯 아이를 쳐다보게 되었다. 아이의 엄마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평범한데, 무진장 평범한데 하면서.
그녀는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전화를 끊고 딸에게 말했다.
"땡땡이 다시 서울로 전학 가고 싶은가 봐."
"왜?"
"학교는 좋은데 너무 멀어서 힘들대."
"이사 오면 되잖아."
"땡땡이 형 때문에 아직 거기 있어야 한대."
서울에서도 경기도에서도 그 학교를 다닌다. 어떤 부잣집은 학교 근처 아파트에 전세를 얻어놓고 주중에 지내다가 주말에는 서울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는, 뭐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딴 세상 이야기다.
그런데 기분이 축 처졌다. 지하주차장에 내려갈 때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던 기분이, 단지 그 점퍼를 본 순간 몹시도 슬퍼졌다.
역시 나란 인간은 지극히도 속물적이고 계산적이다.
그들은 아이를 국제학교에 입학시킬 정도로 영유아기 때부터 영어 사교육을 진행했을 것이며 입학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돈을 들여 과외를 받고, 또 실제로 등록금을 내고 다닌다.
웬만한 사립대학교의 등록금보다 훨씬 비싼 학교를 초, 중, 고 근 십 년 동안 보내는 집도 있다는 게, 그런 일이 지척에서 벌어지는 것이 왠지 서글펐다. 상류층의 생활이란 것은 나와는 상관없으니 그냥 연예인 구경하듯 스치고 지나치면 될 일을 하루가 지난 오늘까지 반추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스러우면서도 싫다.
나름 교육관이 뚜렷하다고, 학원 보내고 공부시키는 것은 나의 교육철학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사교육을 시키는 엄마들과 대화를 하고 나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불안하다.
최근에 대치동의 학원은 엄마들의 불안을 먹고 산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 나는 불안하지 않다, 하면서 책이나 많이 읽히고 많이 뛰어놀게 하자 하다가도, 단지 국제학교 점퍼를 입은 학생을 스쳐 지나가기만 했는데도 기분이 울렁울렁 출렁댄다.
아이들 학원을 안 보내는 사람을 한심하게 보는 사람도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오히려 나는 초등 저학년에 영어, 수학 학원을 보내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니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것뿐인데 말이다.
작년에 딸아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 서연이가 3학년 때 수학 학원 안 다니면 바보 된대."
"에? 무슨 그런 말이 있어. 어릴 때 학원에서 주입식으로 교육받는 게 더 공부 못하는 길이야. 스스로 생각해서 풀어내는 일이 중요하지. 학원에 앉아서 문제풀이방식 강의 듣는 게 더 안 좋은 거야. 학원을 다니든 안 다니든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중요한 거야."
아이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자기는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한다.
실제로 예체능만 다니는 우리 아이는 친구들에게 "나 발레 가야 해."가 아니라 "나 학원 가야 해."라고 말하곤 한다. 자기도 학원을 다닌다는 것을 뽐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공부하는 건 또 죽어라 싫어한다. 단지 나 학원 다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할 뿐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지만 나는 타인에게서 보이는 점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비교하게 되고 쉽게 동요되면서, 쉽게 서글퍼진다.
삶의 방식에 정답이란 없다. 그냥 내 방식이 맞다고 믿으며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래도 돈이 많았다면 국제학교를 보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속물적인 나를 마주하니 진짜 내가 싫어지려고 한다.
그래도 아직은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가 아니라, 놀이터에서 흙 묻히며 노는 아이를 볼 때 '오늘 하루 잘 보냈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놀이터에서 모르는 동네 형들과 친구들과 놀다 보면 어느새 모두 학원으로 향했고, 우리 아이들만 남을 때가 있다. 오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놀았다는 뿌듯함이 나에게는 충만한데,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흙을 파는 인생도 소중하다는 나의 교육관이 정말 아이에게 도움을 주는 가치관일지 아직도 매일 흔들린다. 그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도종환 시인의 글귀)
비비탄 총알을 소중하게 줍고, 누군가의 무덤을 만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