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친척분들이 십여 년 만에 모였다.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도 다 같이 모인 적은 어렸을 때 이후로 없었다고 하니 꽤 오랜만이란다.
남편의 외삼촌 세 분의 가족들이 다 모이니 작은 집에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둘째 외삼촌 따님은 스물아홉 살로 유치원 선생님이셨는데, 다른 사촌들과도 매우 오랜만에 만났다고 한다. 다들 반가워하는 친척들 사이에서 나는 뻘쭘하니 혼자 방황하다가 식사준비를 시작했다.
유치원생인 우리 집 이호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신이 나서 매우 소란스러웠다. 평소보다 목소리도 크고 행동도 과장되게 하는 모습에 나는 혹시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아이를 자리에 앉히려고 애써보았다. 그래도 가족들이니 어느 정도 이해는 해주리라는 기대도 있었고, 평소 할머니집에 가면 놀던 상태가 있으니 그 정도에서 그냥 두었던 게 화근이었을까.
식사시간이 되어 나는 아이가 빨리 밥을 먹고 작은방에 들어가 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숟가락을 급하게 움직였다. 아이는 한 입 먹고 일어서서 엉덩이 춤을 추다가 나의 부름에 다시 달려오곤 했다.
한창 식사를 하고 있는데 사촌아가씨가 자꾸만 우리 아이를 흘깃흘깃 쳐다보곤 하여 나는 사촌오빠의 어린 아들이 귀여워서 쳐다보는 걸로 대단히 큰 착각을 하고 말았다.
아이는 내가 떠 준 밥을 한 입 가득 물고 또 엉덩이를 들썩들썩거리는데, 작은 목소리가 반대편에서 들려온다.
"나는 애 낳아도 절대 밥 안 떠먹여 줄 거야. 저게 뭐야."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사실 작은 목소리라고는 했지만 나에게도 또렷하게 들려온 음성을 막아낼 재간은 없었다. 유치원 선생님으로서 아이가 스스로 떠먹지 않고 번잡스럽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꽤나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야야 너도 애 낳아봐라. 낳아보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야."
시외숙모님께서 한마디 해주셨지만, 나의 가라앉은 마음과는 다르게 깔깔 웃는 즐거운 분위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유치원 선생님이니까 네가 한번 잘 먹게 해 봐. 허허" 셋째 외삼촌이 말씀하신다.
"유치원 선생님 멋있네." 남편이 말한다. 저걸 죽여 살려.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스스로 수저질을 할 것이다. 물론 우리 집 작은 친구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아이가 밥을 잘 먹는다고 하셨다. 다른 칭찬보다 그 말씀을 먼저 하신 게, 딱히 해주실 칭찬이 없어서이기도 했겠지만 유치원에서 밥을 스스로 싹싹 먹는 게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바쁜 아침 시간이나 식당에 갔을 때, 방방 뜨는 분위기에서는 내가 수저를 아이 입에 집어넣는 일이 다반사다. 그래야 빨리 먹이고 이 자리를 뜰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서는 계속 먹여주었는데도 어느새 스스로 수저질을 잘하는 아이로 자라 있어서 나는 나름 대견하게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저게 뭐야."라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꽤 사나워졌다.
해보지 않은 일에 장담하여 말하지 않는 것은 이십 대 아가씨들에게는 어려운 일일까. 그래도 나라면 대놓고 그런 소리가 들리게 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저게 뭐야,는 아이에게가 아니라 나를 향한 지적이었다는 것을 느끼고 얼굴이 붉어졌다.
수년 전 큰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났는데 주말이라 동네 소아과는 문을 열지 않아,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소아과에 가야 했다. 나는 둘째를 아기띠로 그러매고, 첫째 손을 잡고 큰길로 나가 빈 택시에 손을 흔들어댔다. 그때만 해도 카카오택시는 없었고, 어플은 있었지만 아이가 아픈 와중에 뭘 검색할 정신이 없었다. 그냥 늘 그랬듯이 길거리로 나가 손을 흔들어댔지만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까지 택시 기사들은 나를 보고는 손을 흔들고 지나쳐갔다.
그냥 지나쳐 간 것도 아니고 손을 흔들어댔다. 아 귀찮아. 안 태워 안 태워. 뭐 이런 느낌.
주말에 집에 없는 남편도 원망스러웠고, 세상이 미웠던 뚜벅이 시절의 모습들이 불현듯 그녀의 "저게 뭐야."와 함께 뇌리에 떠올랐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작은 사람들과 엄마들에게 불친절하다.
나도 이십 대 미혼이던 시절이 있었다. 미혼시절 맡았던 초등학교 2학년 학급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시업식날부터 종업식날까지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에 어리둥절하고, 화가 들끓던 날들이었다. 그때 내 나이가 스물아홉이었다. 그 이후에 나는 무조건 "고학년 좋아."를 외치며 고학년만 맡곤 했는데, 아이를 낳고 휴직기간을 거쳐 복직 후 처음 2학년을 맡게 되었을 때, 아이들이 무척 의젓해 보였다.
-아이들이 스스로 가위질을 해.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자리를 청소해.
-아이들이 글씨를 읽어!!
-아이들이 양보를 해.
집에 있는 천둥벌거숭이들과 비교하니 세상 천재들로 보였던 아홉 살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고, 이상하게만 보이던 작은 사람들.
아동발달을 공부했던 나조차도 그랬으니 사촌 아가씨를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들으라는 듯이 표현하는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와 다르면 꼰대로 규정지어서 선을 긋거나,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타인을 함부로 깔아내리는 것들이 그들이 특성이라면 나도 할 말이 있다.
나도 사람 면전에 대고 "저게 뭐야"라고 말하는 MZ가 싫다.
나도 "No MZ Zone"을 만들어 내걸고 싶다.
사실 뭐, 살아보니 나이의 문제는 아니기는 하다. 그냥 사람의 문제인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그날 같이 있던 셋째 외삼촌의 대학생 따님은 계속 부엌을 왔다 갔다 하며 "제가 뭐 할 일 없을까요?"
"힘드시죠?"라는 말을 하고 음식도 나르고 우리 아이들에게 말도 시켜주곤 했다. (심지어 그녀는 의대생이다! 공부가 다는 아니지만. 인성도 공부도 훌륭한 건 사실.)
모든 MZ들이 그런 건 아니고, 또 그러했다 한들 세월이 지나면 변하기도 하지 않던가.
우리 집 작은 사람도 그렇다. 밥 먹다가 엉덩이춤추는 걸 몇 살까지 하겠나.
노 꼰대 존
노 아줌마 존
노 노인 존
살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zone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날 시댁에서 나는 "노 타인 존"을 느꼈으니 말이다.
조금만 너그러우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엉덩이춤을 추던 시절이 있었으니.
누군가를 배척하는" No 땡땡이 Zone"은 조금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