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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 Jun 16. 2023

하와이에서 일 년 살다 올 거라서요

아무렇지도 않게 툭 뱉어내는 말이었다.

"아이는 캐나다에서 살자고 하는데, 저는 추운 게 싫어서요. 하와이로 가기로 했어요."

"어렸을 때 캐나다 선생님들한테 영어를 배웠는데, 그때 그분들의 기억이 좋았나 보더라고요."

"하지만 뭐, 제 맘이 중요하죠. 하하. 하와이로 결정했어요."

"음. 집은 그냥 두고 가려고요. 일 년이라 전세 주기도 애매하고 컨테이너에 짐 맡기면 곰팡이 나고 고장 난 다고 해서요. 가끔 한 번씩 친정 엄마가 와서 환기만 시켜달라고 하려고요."


솔직히 다른 세상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뭐, 연예인들이 미국에 가서 살다 온다는 그런 뉴스를 듣는 기분이랄까.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옛 속담이 있는데, 분수에 맞게 살아야지, 하면서도 나는 또 부러워지고 말았다. 그리고 마음의 소리를 뱉어냈다.

"와. 그 경제력이 부럽네요."

그때 그녀의 표정이 어땠는지, 딱히 부정하지 않던 그녀의 표정은 이 정도 가지고,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공무원 아버지 밑에서 외벌이로 두 남매 중 막내딸로 자라났고, 내가 벌어 결혼했다. 남편도 딱히 집안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서 둘이 비슷하게 가지고 시작했는데, 별로 개의치 않았지만 이렇게 가끔씩은 씁쓸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녀가 캐나다를 가든, 하와이를 가든, 나와는 하등 상관없는 일인데도 인간은 끊임없이 비교하는 동물이라 그런지, 아니면 내가 유독 속물이라 그런지, 또 속이 상하고 만다.


제주도 한 달 살이를 계획하다가 남편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유는 "너무 비싸."였다.

아구구 저 쫌생이. 나랑 애들이랑 제주도에서 한 달 살다 온다는데 그렇게 아깝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뱉지는 않았다.


나는 현재 읽고 있는 책의 영향을 잘 받는 편인데, 경제서를 읽을 때면 마음이 심란해지며 우리의 지출과 수입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동안 왜 돈을 모으지 못했는가 반성하느라 밤잠을 설치게 된다.

얼마 전 '돈의 속성'을 읽을 때 주식을 해야 한다, 는 압박감으로 주식 공부를 하려다가 말았다. 마음만은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는 나를 한심해하면서 할 수 없었다. 주식은 너무 어려웠고, 관심사가 아니라서 그런지 정말로 주식 시장을 알아보는 것 자체가 귀찮았다. 

이번에는 '돈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읽다가 또 화가 나고 말았다.

결혼한 지 십 년인데 왜 돈이 없는 거야!

휴직을 하고 나서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아 쓰고 있는데, 사실 일을 할 때에는 내 월급으로 식비,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 생활용품 들에 지출했다. 남편은 대출금과 관리비, 자신의 핸드폰 요금만 낼 뿐이었는데, 작년에 마이너스 통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대판 싸웠다.

마이너스 통장을 해지하면서 남편의 빚을 갚았고, 그래서 또 돈이 없었다.

남은 돈을 싹싹 긁어모아 대출금을 단 몇 천만원정도 갚았고, 그래서 통장잔고가 까딱까딱하다.


내년에 복직을 하면 우리는 얼마씩 무조건 적금 들 거고, 일 년에 한 번씩 목돈을 모아 대출금을 상환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5년이면 대출금을 모두 갚을 수 있고 그때부터는 또 열심히 모아야지.라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

그러려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자는 의논을 했다.

말 그대로 아등바등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아등바등은 책을 읽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제서를 읽지 않았다면 그냥 되는대로 저축도 없이 계속 살고 있었겠지. 나에게 책은 그만큼 중요하다. 나는 너무나도 지혜롭지 못하고, 얇은 귀를 소유하고 있어서 읽는 책의 영향을 자꾸만 받는다. 안 받으려고 해도 받는다. 읽으면서 속상해하고, 화가 나지만 그래서 읽는다.






비교하자면 끝도 없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니까. 우리 부부의 수입으로는 하와이는커녕 제주도도 사실 가랑이 찢어지는 일이 맞다.

그녀가 하와이를 운운할 때 '돈의 심리학'을 읽고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는 소득이 다르기에, 지출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고 억만장자의 부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불필요한 걸 사지 않음으로써 저축을 열심히 해야겠다, 는 뭔가 희망적인 생각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필요 없는 물건을 사고 싶지만, 사지 않기 위한 마음을 하루에 여러 번씩 먹다 보면 어느 날은 우리 집이 그토록 꿈꾸던 미니멀리스트의 집이 되어 있을 수도 있을 테니까, 꿩 먹고 알 먹기가 제대로 적용된 결과일 거라고 생각하며 나는 쿠팡 장바구니 목록을 삭제하러 가야겠다.


그녀의 하와이 생활만큼, 나의 대한민국에서의 일 년도 꼭 성장하는 시간이 되리라 다짐한다. 

그래서 계속 읽고, 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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