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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 Oct 13. 2023

제가 언니라고요?

민증까!

13살 때부터 노안이었다. 아니면 그보다 더 전부터.


오빠와 나는 2살 차이가 나는 남매인데 그는 조금 잘생긴 편이었고, 얼굴이 작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연예인을 해도 괜찮았을 것 같은 외모다. 엄청난 꽃미남은 아니지만 살짝 스마트하게 생겼달까. 물론 하는 짓은 언스마트하지만 말이다.

반면에 나는 대두에 광대가 도드라지고 입술은 두꺼운 스타일로 한마디로 말해서 못생겼다.


중학생이던 시절에 우리 동네에서는 내가 누나고 오빠가 내 남동생인 줄 아는 주민들이 많았다. 언젠가 낯익은 아줌마를 만나서 인사를 하니 "어, 602호 딸이네. 잘생긴 동생은 어디 가고 혼자 가?" 따위의 말들을 종종 들었다. 그러면 소심한 나는 반박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숙이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나곤 했다.


스무 살에 우리 집은 옆 단지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그때 군대에서 휴가 나온 오빠와 집에서 재수를 하던 나는 열심히 이삿짐을 옮겼다. 직원분들 중 유일하게 여성이었던 한 아주머니께서는 말씀이 꽤 많은 편이었는데, 짐을 나르는 나를 보더니 "어휴 이 집 며느리는 일을 잘하네."라고 해서 이 집에 며느리가 누굴까? 엄마를 말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한 3초 정도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단발로 자르기 위해 다니던 미용실에 갔다. 실장님은 나에게 "이번에 입학했죠? 어디 학교 갔어요?" 물으셨고, 나는 "00 고등학교요."라고 대답하니, 당황한 표정으로 "아, 중학생이었어요?" 라며 침묵 속 컷팅을 해주셨다.


대학을 간 후 꾸미고 다니면서부터는 굳이 누군가가 나를 아줌마로 보는 일은 좀처럼 없었던 것 같은데, 출산을 하고 진짜 아줌마가 되고부터는 아줌마니까 아줌마로 불리는걸 어느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살아보니 예쁘면 어려 보인다. 조금 슬프지만 어쩌겠는가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야지.

그래도 하나의 희망적인 말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 노안이 나이 들면 그 나이대보다 젊어 보인다."였다. 하지만 마흔이 넘었지만 아직도 나는 내 나이보다 적어 보이지는 않는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놀이터 지킴이가 된 이후로 아이 친구 엄마들과 자주 마주치게 된다. 처음에는 서로 조심하던 사이였는데,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샌가 주위 엄마들이 죄다 나에게 "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내가 언제 나이를 말한 적이 있던가? 나의 나이를 알지 못하는 그녀들은 왜 나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걸까? 내가 볼 때는 그녀가 언니 같은데.


어제는 큰아들이 중학생인 동네 엄마가 또 나에게 "언니 이거 하나 드세요."라며 사탕을 내밀었다. 난 큰아이가 겨우 10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더 나이 들어 보였다는 거겠지?


나름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고 머리는 포니테일로 묶었다. 이렇게 하고 나면 내가 대학생처럼 보일 거라고 착각했나 보다. 동네 도서관에서 마스크를 쓰고 성인책을 반납할 때조차도 나에게 "어머님, 대출증 찍어주세요."라는 말을 들었으니,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는 노안의 설움이 요새 부쩍 느껴진다.


그래도 나이를 물어보지도 않고 언니 취급하는 건 기분이 좋지 않다. 동생취급 당하면 모를까.

거울을 들여다본다. 팔자주름이 더 깊어졌다. 자판을 두드리는 손도 쭈글쭈글, 이제는 고무장갑을 잘 끼고 설거지를 해야지.

선배들 말이 맞았다. 내가 30대였을 때 나를 보며 참 예쁜 나이라고 했는데, 30대의 그녀들을 보니 정말 그렇다. 30대와 40대는 차이가 크다.

아무튼, 내 눈에는 나보다 언니 같은  00 엄마랑 **엄마가 나를 언니라고 부를 때마다 흠칫 놀라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오늘은 은근슬쩍 볼터치를 하고 아이를 데리러 가야겠다.


동네 엄마들과 깊은 관계를 맺으면 안 되는 이유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나이공개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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