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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 Aug 30. 2023

스승의 날에 교사가 된 제자의 문자를 받았다


작년 스승의 날에 제자에게 케이크를 선물했다. 그걸 기억하고 아마 올해는 선수를 친 것 같다. 참, 이런 선물을 받아도 되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나는 경력 15년 차지만 길게 인연을 이어가는 제자도, 동료도 없다. 이 친구가 교사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이런 연락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올해 스승의 날에 적다가 만, 작가의 서랍에서 꺼낸 글이다.

이 친구는 올해로 4년 차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 친구보다도 더 어린 교사가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의 첫 제자보다도 더 어린 교사였다.


나는 뭘 했을까.

내가 신규일 때는 공무원이라는 사회가 답답했다. 시키면 하는 거였고, 까라면 깠다. 그 속에서 나는 몹시도 순종적이었고, 모두와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그 첫 학교에서 나는 단 한 번의 학부모 민원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민원이 없던 그 첫 학교에서의 4년이 진심으로 부끄럽다. 신규가 뭘 잘했겠는가, 그래서 저런 메시지에 나는 뿌듯하기보다 부끄러움이 앞선다.

아마도 열정은 많았고 시간도 많았으니까 아이들과 영화도 보러 가고, 토요일 오후에 (놀토가 있던 시절이었다!) 컵라면도 먹곤 했다. 지금은 시간도 없을뿐더러 그럴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아이들 데리고 영화관에 갔다가 사고라도 나면?' 이 생각이 먼저다. '애들한테 컵라면 줬다가 민원이라도 들어오면?' 이 생각이 먼저란 말이다.

에이 하지 말자. 결론은 이렇게 흘러가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학교도 그렇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 예쁜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결국 우리 아이들에게 저런 추억하나 얹어주지 못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되겠지.

최근에는 코로나 때문에 더욱더 아무것도 못했고, 나는 휴직을 해버렸다.

아이들이 어려서, 주말에 독박육아라서,라는 핑계로 집회에 참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번 7차 집회를 위해 국회의사당역에 주차할 수 있는 곳을 열심히 검색했고, 우리 애들이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얌전히 앉아 있을 수 있도록 방석과 젤리를 샀다.(먹는 거 중요함.) 국회의사당 역 근처 편의점에서 진라면 순한 맛 컵라면을 사주기로 약속했다. 편의점 표 복숭아아이스티도 함께.

너희들을 위한 거라고 말하지만, 사실 나는 내 후배들을 위해 함께하고 싶다.

어린이들이 행복하려면 교사가 행복해야 한다.

그 아이들이 어린이였을 때, 나는 행복한 교사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도 훌륭하게 자라나 또 다른 어린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된 제자이자 후배교사를 위해.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에는 아이들의 학교에 가족동반체험학습을 신청했다. 꽃 같은 선생님의 49재날.


전쟁 속에서도 학교는 유지되었고,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의 학교는 존재했다. 학교가 없다면 삶도 없다. 공교육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진다.

No school, No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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