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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 Aug 30. 2023

잊을만하면 악플이 달리곤 하지.

나는 잘 나가는 브런치 작가도 아닌데, 나를 질투해서는 절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내 글이 그만큼 형편없었다는 뜻이 되는 거라 좀 쓴 맛이 나는 사탕을 먹고 있는 기분이다. 이걸 뱉을지 계속 빨아먹을지 고민하는 느낌이지 뭔가. 나는 보통은 맛이 없어도 정말 토할 정도가 아니면 한 번 입에 들어온 건 삼켜버리는 경향이 있다. 먹는 것뿐만 아니라 나에게 닿는 모든 것들을 삼켜버리려고 한다. 삼켜서 그걸 없애려고 하는 거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없어진 게 아니고 흡수된 건데도 말이다.


얼마 전 고깃집에서 밥을 먹을 때였다. 8살 난 아들은 제 아빠를 무서워한다. 그리고 질긴 고기를 잘 먹지 못한다. 이 두 가지가 한꺼번에 합쳐져서 "뱉기만 해 봐. 그냥 먹어. 뭐가 질기다고 그래."라는 아빠의 말에 그 반대편에 앉아있던 나는 보고 말았다. 아이가 헛구역질을 하며 그걸 물과 함께 삼키는 모습을.

나는 남편을 한 번 째려보고 "이호야 헛구역질 나면 먹지 않아도 돼."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그걸 삼켰으니까 약간 눈물이 조금 맺힌 눈으로 씩씩한 척하며 괜찮다고 말했다.

나한테는 온갖 떼와 짜증을 다 내면서 제 아빠한테는 조금 입만 내밀고 아무 소리 못하는 아이를 보니, 시아버지와 우리 아빠가 떠오르고 만다.


나도 우리 아빠를 참 많이 무서워했다. 늘 불퉁불퉁 말하는 말투부터 잘 웃지 않던 얼굴까지. 당연히 대화도 없었다. 무뚝뚝하기로 세계 최고였으니까, 그리고 그게 아빠의 성격이라는 걸 아니까 원망하지는 않지만 나는 좀 자상하고 부드러운 남자와 살고 싶긴 했다.

하지만 남편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시아버지의 모습이 남편에게서 보일 때면 나는 시아버지를 잘 알지도 못하지만 흠칫흠칫 놀라고 만다. 특히 웃을 때 "헤헤헤헤"하고 웃는 웃음톤이 어찌나 비슷한지. 

신혼 초 임신 중인 나에게 연락도 안 하고, 명절에 아버님 집으로 차례 지내러 오지 않는다며 호통을 치시던 모습이 트라우마가 되었다고 하면 내가 너무 나약한 걸까. 변명하자면 아버님은 이혼을 하셔서 나는 어머님댁으로 명절을 지내러 간다. 어머님은 이혼하셨으니 명절이라고 딱히 다를 바 없이, 산책 다니고 맛있는 걸 사 먹으며 즐겁게 놀다 온다. 아버님은 신기하게도 명절에 내가 시댁에는 가지 않는 사람인 줄 아셨나 보다. 나는 어머님댁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아버님 입장에서는 내가 어머님댁에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셨는지, 명절에 밖에서 만나 뵙는 아버님은 식사를 마치고 나면 이제 우리 보고 어디로 가냐고 종종 물어보셨다. 명절인데 친정으로 갈 건지 우리 집으로 돌아갈 건지 궁금하셨나. 

아니요. 저는 옆동네 어머님댁으로 가요. 거기에 어제 도착해서 하루 자고 지금 아버님 뵈러 일부러 온 거잖아요, 라고 정확히 설명을 해드려야 하는 거였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어머님댁에 있지 어딜간단 말인가.

그러나 시아버님은 이런 걸 이해를 하지 못하셨다. 결혼했으니 며느리인 내가 차례를 지내지 않는 게 괘씸할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혼 후 결혼 전에 아들 딸을 불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친척들과 만나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작년까지 명절에 만나지 않던 아들과 결혼하고 나서 만나기 시작했는데, 더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지.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결혼한 지 십 년이 되었으니 이제 아버님도 포기하셨다. 중간에 내가 화를 냈던 사건이 있었고, 그 일로 말미암아 아버님은 나에게 연락을 끊으셨으며 나를 만나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신다. 나는 상관없는데 사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런 모습이 보기 좋을 리가 없어서 그게 좀 아쉽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건 외갓집에 가서도 외할아버지와 엄마인 내가 별로 살뜰히 대화하지 않으니까 온도차를 크게 느끼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무뚝뚝한 우리 부녀사이가 이렇게 유용할 수가.




싸이월드를 하던 시기에도 누군가와 온라인으로 나쁜 말을 해본 적이 없고, 익명으로 어딘가에 악플을 달아본다거나, 뭐, 내가 악플을 받아볼 일도 없었다.

대놓고 내 앞에서 나를 욕하거나 공격한 사람들은 학교에서 만난 학부모 몇몇들과 시아버지가 다였는데, 그런 것들은 여러 번 당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제 자식이 학교 끝나고 자기가 데리러 오지도 않았는데 집에 가 있었다고 나에게 소리를 지르던 어머님. 

제 자식이 학원 가기 싫어서 일부러 학원 버스를 놓쳤는데, 내가 청소를 시켜서 놓쳤다고 전화로 소리를 지르던 어머님. 그 아이만 그 해에 일인일역을 빼줬는데요. 일인일역이 뭐냐고 소리를 지르셨죠.

과학행사 담당이라서 과학상자대회 신청서를 낸 친구들을 불러 내일 준비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가 다음날 학교로 찾아와서 자기가 준비물 사러 다니기 힘들었다고 소리 지른 어머님. 미리 준비하셨어야지요. 신청서 냈을 때가 열흘 전이었는데요. 그리고 내가 어이없어하자, 교장실로 찾아가겠다고 협박하셨죠. 교장실 하나도 안 무섭거든요. 가세요. 꼭 가세요. 두 번 가세요.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가끔 공격적인 댓글을 받곤 한다. 뭐 나는 유명 작가도 아니고 아마 다음 메인에 걸린 글을 타고 들어오셨을 테니 자주 있는 일도 아니지만 속으로만 생각해도 될 말들을 굳이 손가락 아프게 자판을 두드리고 가신다. 악플도 부지런해야 할 수 있다. 

학교에 와서 소리 지르는 일도 게으르면 못한다. 아, 귀찮아. 다음에 하자. 하다가 보면 마음이 누그러지고 만다. 화가 나서 불같이 득달같이 달려들 수 있는 부지런함은 그네들의 장점일 텐데, 그걸 좀 더 생산적인 곳에 사용했으면 좋겠다. 

사실 기분 나쁘게 댓글을 다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본인 글이 아직 없는 '작가'가 아닌 분들이다. 나를 드러내는 글을 쓰지 않았기에, 나의 익명성을 이용해 누군가에게 기분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거다. 나도 가끔은 이 사람은 왜 이런 말을 썼지? 싶은 그들이 있지만 거기에 반박할 글을 쓸 용기가 없다. 아니, 실은 나는 댓글을 달만큼 부지런하지가 못하다. (그래서 댓글을 잘 못 달고 하트만 누르는데, 죄송해 죽겠다.) 


며느리를 들였으니 이제부터 일을 시켜야지, 매주 전화하라고 시켜야지, 나를 우러르게 만들어야지, 했는데 나 같은 며느리를 들이셔서 계획대로 하나도 못하신 시아버지께 죄송하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할 생각은 없고, 시어머님은 모셔도 시아버지는 못 모셔요. 죄송합니다.

자식의 말을 백 프로 믿어주시는 훌륭한 학부모님, 그렇게 아이를 믿어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말을 믿다 보니 선생님은 거짓말쟁이에 나쁜 년이 되어있더라고요. 그래서 저에게 소리 지르신 거잖아요. 아이말을 믿어서요.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이지만, 사리분별은 하셔야 해요. 그래야 아이도 분별력 있게 자랍니다.

앞으로도 제 글에 기분 나쁜 댓글을 쓰실 미래 악플러님 고마워요. 덕분에 이런 글을 또 한 편 썼네요. 


잘하려고 해도,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면 예수님도 부처님도 공자님도 재수 없어 보일 수 있다. 지가 뭔데 인류를 구원해? 막 이러면서.


여덟 살 아들이 아빠를 무서워해서 먹기 싫은 고기도 꿀꺽 삼키는 일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내가 틀릴 수도 있으니까 속상해하는 아들을 위로하는 역할에 충실하려고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을 바지런히 해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 속에서 분명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 것이고, 많은 상처를 받았으며 앞으로 내 아이들이 상처 하나 없이 크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상처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어쩌다 보니가 아니라, 의도된 상처와 의도된 화풀이는 결국 나에게도 돌아온다.

칼을 잡고 남을 공격하면 내 손에도 상처가 나듯이 말이다.


그래도 아들아, 헛구역질을 할 정도의 것들은 그냥 뱉어버리렴. 너를 헤치면서까지 그걸 삼키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악플도, 정당하지 못한 공격도, 욕설도 내 잘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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