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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Jun 20. 2023

부끄러움

얼마 전에 시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가족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나는 시할머니께서 우리 아래 아랫집에 사시는 할머니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는 사이는 아니었다. 

1931년생. 내가 감히 그분의 인생을 논할 자격이 있을까. 


갑자기 10년 전에 돌아가신 1921년생 우리 할머니가 생각났다. 

기억 속 우리 할머니는 꼿꼿하신 분이셨다. 집안의 어른이셨지만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의 기세에 눌려 항상 큰아들, 큰며느리 눈치를 보셨다. 그래도 내 기억에 주눅 든 할머니의 모습은 없다. 항상 당당하셨고 잘 웃으셨다.

작은 키에 문맹이셨지만, 그분이 글을 모르신다는 사실을 나는 다 커서까지도 몰랐다. 글도 모르시는 분이 서울에서 인천까지 지하철을 갈아타고 버스를 환승해서, 큰어머니와 싸우실 때마다 연락도 없이 초인종을 누르셨다.

아들, 딸이 드리는 용돈을 모으고 모아 9명이나 되는 손자 손녀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마다 백만 원씩 내미셨다. 나는 사수를 했으니 사백만 원을 받았느냐, 그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용돈을 모아 손주들에게 백만 원씩 주신다는 일이 그때의 나는 대수롭지 않았지만, 지금의 나는 그건 절대로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자식들이 힘들지 않게 조용히 돌아가신 어여쁜 분.

할머니의 주름 없던 뽀얀 피부를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겠지.


시할머니를 뵐 때마다 우리 할머니가 떠올랐다. 우리 할머니는 남편을 만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기에, 남편에게 할머니의 이야기를 한다는 건 아무런 공감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건 우리 할머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할머니는 남편의 할머니이기 때문에 나 역시 마음의 동요를 크게 느끼지 않았다. 

시할머니를 뵌 것은 채 열 번도 되지 않는다. 처음 인사드리던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우리가 벗어서 바닥에 둔 외투를 건너 다니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시는 모습을 보고 그분을 정의 내려버렸다.

시어머니께서 시아버지와 이혼하실 때, 전화를 걸어서 "내가 너무 억울해서 울었다. 그 아파트를 너를 줘버리면 어쩌자고."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또 한 번 시할머니를 판단해 버렸다. 

아들이 이혼도 하기 전에 외도 상대를 집으로 불러서 밥을 차려주셨다는 말을 당신의 며느리에게 당당하게 전했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며느리의 말에, "네 아들이 딴 여자 데려와봐라. 너도 그럴걸."이라는 말로 응수했다는 말을 듣고는 시할머니를 뵙고 싶지도 않았다.

물론 모든 것은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전해 들은 내용이니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이혼한 아버지 쪽과 왕래도 없이 살아오던 세월 동안 지금의 내남편은 장성했고, 친가 친척들과는 연락도 하지 않았으니, 남편도 사실 할머니에게 정이 없다 했다.

그래도 어디 핏줄이 그럴 수 있을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남편의 심정을 온전히 알 수는 없지만, 장례식장에 3일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지내는 동안, 나에게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보다는 어린애들을 데리고 여기 앉아있는 내 상황만 힘이 들었을 뿐이다.


시할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동네 친구들의 "아이고 힘들었겠다. 괜찮아요?"라는 말을 순간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괜찮으냐는 그 말은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슬프고 힘들겠어.'라는 뜻이었다는 걸 말이다. 

남편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일이 나에게 아무런 타격감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는 내가 마치 사이코패스라도 된 것처럼 스스로에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죽음 앞에서는 숙연해지는 법이거늘. 열 번 정도 만남 동안 당신의 며느리에게 하시던 모진 말을 손주 며느리인 나에게도 툭툭 내뱉으시던 그런 모습만이 나에게 박혔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남편의 할머니인데, 이렇게 아무런 감정도 없을 수가 있다는 사실에 나는 내가 부끄러워졌고, 민망해졌다. 


우리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의 손주며느리들이 눈물을 훔쳐내던 모습이 떠올랐다. 

잘 알지 못하시는 분이지만, 아무리 나에게 모진 말을 뱉어내셨던 분이지만, 죽음 앞에서 그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나는 그분을 잘 모른다. 어떤 삶을 사셨는지. 그래서 시간이 흐르고 보니 나의 태도가 더욱 한심하게 느껴진다.

1931년에 태어난 여성의 삶이란,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던 일들을 겪으신, 그런 모진 세월을 내가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거늘.

이렇게 죽음이란 모든 것을 용서해야 하는 것일텐데, 옹졸하고 치졸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나의 잘못인것만 같아서 자꾸만 더 부끄러워진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부끄러울 일이 자꾸만 쌓여가는 것이 인생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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