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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Jun 26. 2023

도마뱀이 도망쳤다

집에서

아들 엄마로 산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온갖 생물체들을 집으로 들고 와서 키우고 싶어 하는 성향의 아이라면 아들이든 딸이든 나와 맞지 않아 더욱 힘이 든다.

나는 어릴 때부터 곤충 따위에 관심도 없었고,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듯, 그런 것들을 싫어했다. 그래도 어른이 된 이후로는 호들갑스럽게 "끼아아악"소리를 지르며 벌레의 공격에 점잖치 못한 태도를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 벌레가 나타났을 때 의연하게 대처하곤 한다.

옷에 붙어있는 거미에도 속마음과는 다르게 그냥 툭툭 털어버릴 정도의 내공이 생겼달까.


이십 대 때, 교실에서 바퀴벌레가 등장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수업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지르고 의자 위로 올라가고 난리를 쳐댔지만 나는 속으로는 "젠장"을 외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내 책상 위에 있는 교과서를 들고 가서 벽을 향해 날렸다.

퍽-

휴지를 가져와서 바퀴벌레 사체를 책과 벽에서 닦아낸 후 "조용"이라고 말하고 아무렇지 않게 수업을 했었다. 하지만 나도 바퀴벌레를 죽여본 게 처음이었다. 교과서에 바퀴벌레가 뭉그러지는 그 느낌이 정말 싫었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어른'처럼 행동했던 내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어른은 이렇게 속마음과 다르게 의연한 척 행동해야 할 때도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래서 뿌듯하지만, 힘이 든다.


아이가 6살, 7살 때에는 유치원 옆에 공터가 하나 있어서 하원하고 나서 그곳을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며 메뚜기를 잡아댔다. 방아깨비와 메뚜기를 잡아주면 아이는 신이 나서 그걸 빈 통에 집어넣고 차에 탔다가 차에서 탈출하는 소동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메뚜기의 습격도 너무 싫었지만 그건 약과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집을 거쳐간 생명체들은 수도 없다.

정말 통통했던 누에는 나비가 되었으나 키우던 강아지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진즉에 방생해줘야 했는데 말이다. 사슴벌레, 매미(정말 시끄러워서 반나절만에 풀어줬다.), 잠자리, 달팽이, 올챙이, 개구리, 도롱뇽(도롱뇽은 잡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던데, 캠핑장에 갔다가 모르고 잡아왔다. 그 녀석은 3주 후에 다시 캠핑장으로 데리고 가 놓아주었다.)

도롱뇽을 구피가 살고 있는 어항에 같이 넣어주었는데, 어항 바닥에 깔린 모래를 경사지게 해서 그 위에 살게 해 주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어항을 탈출할 줄은 몰랐다. 탈출한 줄도 몰랐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청소를 하려는 내 눈에 무엇인가 시커먼 덩어리가 포착되어 보니, 어디 구석에서 굴러다니다가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도롱뇽이 마치 제 집인 듯 뻔뻔하고 의연하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개털을 뒤집어쓴 당당이

그 당당함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어딘가에 계속 숨어 있어서 나를 애태우지 않고, 나 여기 있소, 하며 보란 듯이 돌아다니는 녀석이 차라리 고마웠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밤새도록 집안 곳곳을 여행하고 이제 좀 쉬고 싶다는 듯이. 그 모습이 저 녀석을 잡아온 아들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귀엽기까지 했으니, 내 눈에 콩깍지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지만 도롱뇽까지가 딱 적당한 에피소드였을텐데, 문제는 어제 탈출한 도마뱀이었다.

아이의 방과 후 생명과학 시간에 받아온 도마뱀은 무려 두 마리였다. 그중에 한 마리가 집에 데리고 와서 사육장에 넣다가 곧장 탈출을 감행했다. 아이와 나는 둘 다 도롱뇽과 비슷하게 생긴 도마뱀의 모습 때문에 엉금엉금 기어가지 않고, 휘리릭 재빠르게 도망치는 도마뱀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창문에 붙어있는 녀석을 통으로 재빠르게 탁 휙, 해서 포획했으나, 나는 이미 엉엉 울다가 눈물범벅이 된 모습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노출하고 말았다.

엄마가 엉엉 울자 아들은 나를 위로해 줬다. 야, 네가 놓쳐놓고 뭐가 괜찮다고 나를 위로하는 거야. 아휴 속이 탄다 속이 타.

그리고 그 녀석은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밀웜도 먹지 않고 며칠 뒤 운명했다. 남은 한 마리는 잘 먹고 잘 싸고 사육통 안에서 바지런히 움직여댔다. 그러다 어제 남편이 사육통 청소를 하러 들어간 화장실에서 탈출을 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그 녀석은 화장실 안에 있는 건지, 밖으로 나온 건지 오리무중 상태가 되었다.

차라리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면 더 좋을 텐데, 그럴 수도 없으니, 우리는 동거 아닌 동거상태가 되었고, 이제는 녀석의 생사보다는 죽은 이후에 이 더위속에서 부패할 것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결국은 녀석보다는 나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내가 그 녀석의 생존을 걱정할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이곳은 싱가포르도 아니고 태국도 아닌데, 도마뱀과 동거라니.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은 도마뱀이 있으면 모기가 잘 없다는 이야기였는데, 모기는 홈키파가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 도마뱀 녀석 모습을 드러냈으면 좋겠다.


영화 기생충이 떠오르면서, 어딘가에 숨어서 밤마다 나와 집안을 누비고 다닐 도마뱀을 생각하면, 그냥 잊고 살고 싶으면서, 심지어 이사를 가고 싶어 진다. 그러나 새로 들어올 분들께 죄송해서 안 되겠다.


더 이상 우리 집에 생명체는 성인 둘, 어린이 둘, 강아지 한 마리 그 이상은 안된다고 못 박아버렸다. 

아직 구피 한 마리와 얼마 전 계곡에서 잡아온 버들치가 살아있긴 하지만 말이다.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작은 생명체들이 자꾸만 우리 집에 오게 돼서 대단히 미안하고 짜증 난다.

어린이 둘이 성인 둘이 되었을 즈음에는 마음이 헛헛해서 다른 생명체에 온기를 맡기고 싶어 질까. 

노인 둘이서 지금은 짜증 나지만 그때는 웃을 수 있는, 이런 추억을 곱씹으며 과거를 아쉬워할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도마뱀이 해충도 아니고 나를 공격할 것도 아닌데, 아등바등하고 싶지 않아 졌다. 

어딘가에서 안온하게 살아가길. 

우리 가족도 안온하게 노인 둘, 성인 둘, 늙은 개 한마리가 되어 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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