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옷에 붙어있는 거미에도 속마음과는 다르게 그냥 툭툭 털어버릴 정도의 내공이 생겼달까.
어른은 이렇게 속마음과 다르게 의연한 척 행동해야 할 때도 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래서 뿌듯하지만, 힘이 든다.
그 당당함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어딘가에 계속 숨어 있어서 나를 애태우지 않고, 나 여기 있소, 하며 보란 듯이 돌아다니는 녀석이 차라리 고마웠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밤새도록 집안 곳곳을 여행하고 이제 좀 쉬고 싶다는 듯이. 그 모습이 저 녀석을 잡아온 아들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귀엽기까지 했으니, 내 눈에 콩깍지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지만 도롱뇽까지가 딱 적당한 에피소드였을텐데, 문제는 어제 탈출한 도마뱀이었다.
아이의 방과 후 생명과학 시간에 받아온 도마뱀은 무려 두 마리였다. 그중에 한 마리가 집에 데리고 와서 사육장에 넣다가 곧장 탈출을 감행했다. 아이와 나는 둘 다 도롱뇽과 비슷하게 생긴 도마뱀의 모습 때문에 엉금엉금 기어가지 않고, 휘리릭 재빠르게 도망치는 도마뱀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창문에 붙어있는 녀석을 통으로 재빠르게 탁 휙, 해서 포획했으나, 나는 이미 엉엉 울다가 눈물범벅이 된 모습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노출하고 말았다.
엄마가 엉엉 울자 아들은 나를 위로해 줬다. 야, 네가 놓쳐놓고 뭐가 괜찮다고 나를 위로하는 거야. 아휴 속이 탄다 속이 타.
그리고 그 녀석은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밀웜도 먹지 않고 며칠 뒤 운명했다. 남은 한 마리는 잘 먹고 잘 싸고 사육통 안에서 바지런히 움직여댔다. 그러다 어제 남편이 사육통 청소를 하러 들어간 화장실에서 탈출을 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그 녀석은 화장실 안에 있는 건지, 밖으로 나온 건지 오리무중 상태가 되었다.
차라리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면 더 좋을 텐데, 그럴 수도 없으니, 우리는 동거 아닌 동거상태가 되었고, 이제는 녀석의 생사보다는 죽은 이후에 이 더위속에서 부패할 것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결국은 녀석보다는 나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내가 그 녀석의 생존을 걱정할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이곳은 싱가포르도 아니고 태국도 아닌데, 도마뱀과 동거라니.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은 도마뱀이 있으면 모기가 잘 없다는 이야기였는데, 모기는 홈키파가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 도마뱀 녀석 모습을 드러냈으면 좋겠다.
영화 기생충이 떠오르면서, 어딘가에 숨어서 밤마다 나와 집안을 누비고 다닐 도마뱀을 생각하면, 그냥 잊고 살고 싶으면서, 심지어 이사를 가고 싶어 진다. 그러나 새로 들어올 분들께 죄송해서 안 되겠다.
더 이상 우리 집에 생명체는 성인 둘, 어린이 둘, 강아지 한 마리 그 이상은 안된다고 못 박아버렸다.
아직 구피 한 마리와 얼마 전 계곡에서 잡아온 버들치가 살아있긴 하지만 말이다.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작은 생명체들이 자꾸만 우리 집에 오게 돼서 대단히 미안하고 짜증 난다.
어린이 둘이 성인 둘이 되었을 즈음에는 마음이 헛헛해서 다른 생명체에 온기를 맡기고 싶어 질까.
노인 둘이서 지금은 짜증 나지만 그때는 웃을 수 있는, 이런 추억을 곱씹으며 과거를 아쉬워할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도마뱀이 해충도 아니고 나를 공격할 것도 아닌데, 아등바등하고 싶지 않아 졌다.
어딘가에서 안온하게 살아가길.
우리 가족도 안온하게 노인 둘, 성인 둘, 늙은 개 한마리가 되어 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