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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Jun 27. 2023

갑자기 영상통화

저녁을 먹고 설거지까지 끝낸 일요일이었다. 아이들은 영어 영상을 보고 있었고, 나는 식탁모퉁이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그때 담배 피우러 밖에 나갔던 남편이 누군가와 도란도란 말하며 들어온다.

"또 엄마랑 통화하는구먼."

그는 자기의 엄마와 통화를 자주 한다. 아니, 매일 한다. 하루만 안 해도 무슨 일이 있나 싶은지 꼭 통화를 한다. 나는 그 모습이 가끔은 대수롭지 않지만 아직도 가끔은 이상하다.

나한테 전화강요를 하는 사람은 시아버지밖에 안 계셨지만 그마저도 포기하신 지 오래라 시어른들과의 의무적인 통화가 힘들다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하지 않는다.

사실 어머님이 아들과 매일 통화하시기 때문에 남편의 휴무가 어떤지, 요즘 애들이 뭘 하고 있는지, 오늘은 뭘 했는지까지 다 알고 계신다. 그러니 내가 따로 전화해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전혀 없지 않을까. 물론 그건 내 생각이지만 말이다.


딸아이에게 작년 말쯤에 핸드폰을 사줬다. 아이는 학교가 끝나면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엄마, 나 학교 끝났어. 피아노 갔다가 갈게."라고 보고를 했다. 나는 그런 게 싫었다. 끝났으면 끝난 거지 왜 전화를 할까.

그러다가 문득, 아이가 요즘 동생보다 자기가 더 귀엽지 않느냐는 말을 자주 하는 걸 깨닫고 사랑이 부족한가 싶은 생각에 가슴이 뜨끔했다. 그래서 통화를 하는 행위로 엄마와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쩍 엄마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면 내 사랑이 채워지지 않아서 그러는 건가 싶기도 해서 또 자책이 된다. 사랑이란 표현을 해도 해도 부족하지 않은 법이니까.


연애할 때 남편과 거의 매일 만났고 당연히 매일 통화했다. 대부분 연인들이 거의 매일 통화하듯이 말이다. 그때는 남편이 전화를 걸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치부했었는데, 그게 나의 이중적인 모습의 하나라고 본다.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 핸드폰 화면에 남편의 이름이 뜨면 안도하던 마음.

딸아이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귀찮아하며 전화를 받았던 나를 돌아본다. 좀 더 사랑한다고 말해줘야지. 좀 더 반가워하는 목소리톤으로 받아줘야지.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던 남편은 어느새 화면을 영상통화로 바꿨는지 소파에 앉은 아이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냥 전화통화라면 사적인 대화의 영역이니 침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영상통화는 또 다르다. 갑자기 같은 공간에 있는 모두의 영역이 되고 만다.

나는 영상통화로 바뀐 걸 알고 금세 안절부절못한다. 언제 끼어들어서 인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말이다. 내가 좀 더 곰살맞은 사람이었다면 당장에 달려가서 "어머님 식사하셨어요?" 했겠지만 나는 그런 인간이 못되기 때문에 눈치만 살핀다.

결국 남편이 나에게 화면을 넘기고 나면 그때서야 "안녕하셨어요?" 하고 마니,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가 살갑지 못한 게 죄송하기도 하고 못내 아쉬우실 거라는 마음은 십분 이해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나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가식적인 모습을 떨고 싶지 않아 진다.

"며느리는 뭐 하는 거냐?"

"뜨개질해요."

"뭐 뜨냐 이 더위에"

"옷이요."

곧 있을 친정 엄마 생신에 드릴 여름티를 뜨고 있다. 순간 또 죄송해지고 만다. 어머님께 드릴 게 아니라서. 그래서 차마 엄마선물이라고는 못하고, 바보처럼 헤헤 웃고 만다.


그래서 영상통화가 마음에 안 든다. 너무나도 거짓을 말할 수가 없어서. 어색한 내 표정과 지금 하고 있는 행동도 숨길 수가 없다. 남편과 연애시절 밤에 통화를 할 때면 얼굴에 팩을 하고 티브이를 보다가도 '책 읽고 있다'며 거짓말로 나를 포장할 수 있었는데, 영상통화는 그런 게 불가능해서.


영상통화는 원래 부모 자식이나(그것도 성인이 된 자식과 영상통화는 좀 그렇지 않나.) 연인들끼리나 하는 거 아닌가.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하는 영상통화라는 건 좀, 어색한 일이 아닌가. 아이들 뒤에서 살짝 얼굴만 내미는 거라면 괜찮지만 나와 어머니의 투샷은 많이도 어색하고 오히려 그냥 통화보다 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어머님께 드릴 뜨개옷은 겨울 스터로 해야겠다. 어머님 생신은 12월이니까, 아직 많이 남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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