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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Jul 10. 2023

내가 열정이 없지 애정이 없냐

나에게는 없는 몸의 장기가 하나 있다. 충수돌기. 흔히 말해 맹장을 떼어냈다. 흔하디 흔한 충수염에 걸려 맹장수술을 한 흔하디 흔한 사람 중에 한 명이다.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부평지하상가에서 친구들과 학교에 가기 위해 걷던 중이었다. 나는 갑자기 어지러웠고 쓰러졌다. 이내 119 구급대원이 도착했고, 정신이 든 나는 정신이 든 채로 119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어리둥절한 친구 두 명을 같이 태우고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엄마는 별로 다급해하지 않은 모습으로 걸어 들어왔으며 같이 있어준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친구들은 엄마가 건넨 2만 원으로 택시를 탔다.

'여기서 학교까지 2만 원이면 될까?' 그런 생각을 했다.

5월이었다. 만난 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은 친구들과 그렇게 친해져 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하다. 연연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관계가 좋았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친구 사귀기가 어려웠다. 너무 연연해했다. 아등바등하면 어떤 관계도 금세 시들해지고 만다.


한 번은 고등학교 3학년 때 한 친구가 맹장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나는 그 친구와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사는 곳도 너무 멀었기에 병문안을 가지 않았다.

그 후 친구는 나에게 서운하다고 말했고, 나는 의아했다. 버스를 두세 번 갈아타는 곳에 사는 친구, 들어본 적도 없던 동네에 사는 친구, 나는 별로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같은 반이니까 병문안을 갔어야 하는 건지 잘 몰랐던 나는 그렇게 친구 한 명을 잃었다.

맹장을 도려내듯, 친구라는 존재는 쉽게 떼어내도 아무렇지 않았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었는지 이미 다 잊혀 버렸다.

병실에 하나 있는 텔레비전에서는 아침이 되면 드라마가 송출된다. 나에게는 없는 채널 선택권에 연연해하지 않았고, 아줌마들과 아침드라마를 봤다. 그리고 이내 아침 마당과 드라마 재방송으로 연이어 이어지는 지루한 시간들.

"병원 지하에 도서 대여점 있어요. 심심하면 가서 책 빌려 읽어도 돼요."

수술한 지 3일째였나, 슬슬 돌아다닐 수 있는 몸상태가 되었고, 나는 빈츠가 너무 먹고 싶었으며, 아침드라마가 재미없었다.

링거대를 밀며 잔돈을 챙겨서 병원지하로 내려갔다. 동네 문구점보다 더 작은 도서 대여점에는 내가 좋아하는 꿉꿉한 오래된 책냄새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동안 읽어볼 생각조차 없었던 해리포터를 집어 들었다. 나는 판타지를 안 좋아한다. 그리고 이건 애들용 소설이니까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는데, 그날은 해리포터밖에 손이 가는 책이 없었다. 볼 게 없네, 하면서 해리포터를 빌려왔는데, 그날 오후가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 가는 게 아까웠다.

오후에 엄마가 오면 잔돈을 좀 달라고 했다. 그리고 빈츠가 너무 먹고 싶다고 했다. 아직 가스가 나오지 않아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주린 배를 움켜쥐고 나는 병원 지하로 내려갔다.

당시에 해리포터는 완결이 나지 않았다. 퇴원을 하면서 해리포터 이야기도 중단되었다. 그래서 완결이 나지 않은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뭐든 시작하면 끝을 보고 싶어 하는 성질머리 때문인지 중간에 끊기는 건 딱 질색인데 그렇게 해리포터를 읽었고, 당연하게도 해리포터는 또 잊혔다.


세월이 흘러 직장인이 된 후에 해리포터가 완결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이미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발령 첫 해 여름방학 때 아이들과 극장에 갔다. 지금처럼 멀티플렉스 영화관뿐만 아니라 동시상영관처럼 저렴한 극장도 공존하던 시기였다. 4000원이면 어린이 요금을 낼 수 있던 시절에, 방학식을 한 다음 날 아이들과 동네 마을버스 정거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몇 명은 나왔고 몇 명은 나오지 못했다. 나온 어린이들만 데리고 버스를 타고 영화관에 갔다. 팝콘을 사고 서로 나눠주고 우리는 다 같이 해리포터를 봤다. 앞 내용을 본 아이들도 보지 않은 아이들도 모두 봤다.

영화가 끝나고 동네로 돌아와 각자 헤어졌다. 어린이들과 방학 때 영화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법 같던 날들이었다.

서른에 해리포터를 완독 했다. 책을 다 읽고 그 감흥이 사라지기 전에 영화를 죄다 다운로드해서 밤을 세우며 영화를 봤다. 역시 책이 더 좋았다. 뭐든 그렇지만 책 보다 영화가 더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에게 사라진 걸 생각한다. 이제는 없어진 열정 같은 거. 절대로 어린이들과 여름방학 때 따로 만나지 않는다. '방과 후에 선생님과 컵라면 먹기' 같은 쿠폰도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그때 우리 반이었던 제자가 가끔 문자를 보낸다. 이 또한 마법 같다. 사라진 나의 열정에 불을 지펴주는 마법지팡이가 아직 존재하는 건 그런 것들이다. 주로 지나간 것들.


맹장을 떼어내고 병실에 누워서 누가 누가 병문안을 올까 궁금했다. 내가 좋아하던 남자애도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머리를 감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오지 말라고 할까, 고민하던 날들이 있었다.

고민을 했던 시간이 무색하게도 그 애는 오지 않았다.

서운하지 않았다. 친하지 않았으니까. 친하지 않은 사람의 병문안을 가는 건 조금 이상하니까, 괜찮았다. 고등학생이던 시절에는 서운할 수 도 있겠지만, 나는 스물세 살이나 먹은 성인이었으니까 괜찮았다.

맹장은 사라졌지만 삶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가끔 맹장은 어느 쪽이 아픈지 궁금해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왼쪽이 아픈 거면 괜찮아 맹장은 아니야, 하고 안심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해리포터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 도비를 가장 좋아한다. 서른을 목전에 두고 있었는데 도비가 죽어서 엉엉 울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남편한테 양말을 받으면 좋겠다." 하지만 퇴근한 그가 방구석에 처박아 버린 양말을 주워 들어도 나는 해방되지 않는다.

인생은 판타지가 아니니까,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고 있으면 많이 슬프지는 않은데 조금 먹먹해질 때가 있다.


여전히 나는 빈츠를 좋아한다. 퇴원하자마자 그토록 먹고 싶던 빈츠를 한 자리에서 한 상자 다 뜯어먹고 행복했다.

완결된 이야기는 여전히 좋아하지만 삶은 여전히 완결되지 않은 채 흘러가므로 모든 것이 빗속을 헤맬 것 같은 날들이어도, 언젠가는 9와 3/4 승강장으로 들어가는 날 따위는 없겠지만 그래도 삶이 계속되는 게 좋다.

아줌마가 되었지만 아침드라마와 아침 마당을 여전히 보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취향이라는 건 나이를 먹는다고 변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비 오는 날이 좋고, 글이 좋고, 빈츠가 좋다.

나는 마법사가 아닌 게 좋다. 머글이라서 다행이고 여전히 도비가 불쌍하다. 도비 같은 집요정이 될 나의 정체성 때문이었을까.


잃어버린 열정 같은 건 그런대로 흘러가도 좋다. 내가 열정은 없어도 애정은 더 많아졌을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아니, 처음부터 열정보다는 애정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별로 아등바등하며 살지 않아서, 계속 아등바등하고 싶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천천히 음미하는 삶이 잃어버린 것들을 채워준다.

완결된 소설 같은 거, 한 박스의 빈츠 같은 거. 좋아했던 남자애를 지금 만나도 아무렇지 않은 것. 비 오는 날의 공기 같은 게 삶을 지속해 주는 듯해서, 이 모든 것이 삶에 대한 애정이라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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