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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Jul 12. 2023

카톡 선물을 환불했다


휴직을 하고 남편에게서 200만 원씩 받고 있다. 일하는 동안 내 통장에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해결해 왔는데 그동안 남편 통장의 돈들은 쌓여만 가고 있었으니 분명 몇 천만 원은 모았을 것이라고 믿고만 있었다.

이상하게도 일하는 4년 동안 남편게는 마이너스 통장만 남아있었다.

대출금과 남편의 카드값, 통신요금, 관리비가 남편에게서 빠져나가고 있었으나, 그는 나에게 한 푼도 보내주고 있지는 않았으니 당연히 나보다 월급이 많은 그는 돈이 남아야 맞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던 나의 불찰일까.

남편 월급의 2/3도 되지 않은 나의 월급조차도 생활비를 쓰고 나서 남은 돈들이 4년 동안 차곡차곡 모여 몇 백은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휴직을 하고 남편에게 돈을 받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그는 자기 돈이 내 돈이니까 그냥 평소처럼 쓰면 된다고 했다. 왜 자기에게 돈을 보내달라고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아니, 내 통장에 꽂히는 돈이 없으니까 자기가 보내줘야 애들하고 먹고 살 거 아닌가.


우여곡절 끝에 내가 다시 복직을 하더라도 매월 200만 원은 나에게 보내는 걸로 잠정 합의를 봤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의 월급은 그냥 공중분해 될 것이 분명하다. 술 마시고 대리운전 부르는 그의 소비습관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돈이 많이 드는 현실에 비상등이 켜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남편의 마이너스통장의 빚을 갚고 정리하던 날, 우리는 서로 모아놓은 돈을 모아 대출금의 일부를 갚았다. 나는 내 통장에서 남아 있던 여윳돈을 모두 그러모아 그에게 보냈는데, 덕분에 알거지가 되어버렸다. 남편이 주는 200만 원이면 한 달 사는데 적당할 거라고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아이들은 하교하고 뭐라도 사 먹고 싶어 했고, 아이들에게 드는 소소한 비용들은 당시에는 계산에 없었다. 결국 내가 쓰는 건 그런 소소한 것들이 모인 한 달의 결과물이었는데 말이다.

어제는 지난달에 사용한 카드값을 며칠 뒤에 가져가겠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통장 잔고가 부족했다.

아무리 여기저기에서 돈을 긁어모아도 이번달 펑크가 날 것이 분명해지니 나는 어디서 돈을 더 모을 데가 없나 고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카톡 선물방에 들어가 그동안 받았으나 사용하지 않고 유효기간을 연장해 오던 케이크 쿠폰들을 환불 하기로 했다. 3개의 케이크를 환불받고 나니 총 6만 원가량의 돈이 되었다.

타인에게 선물 받은 걸 내 계좌로 환불받고 있는 내 심정이 참으로 비참했다. 겨우 6만 원을 위해서 말이다. 그걸 환불받는다고 해도 카드값을 메꿀 수는 없는 노릇인데도 나는 환불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내 생일이라고, 아이들 생일이라고 카톡에서 어떤 케이크를 고를까 고심했던 그들에게 미안해졌다. 그의 선물이 내 통장으로 환불되고, 나는 아이들 입에 들어갈 떡볶이며 감자튀김을 사서 먹일 테다.

신용카드를 잘라버리라는 돈의 속성 작가님의 말씀이 자꾸만 귓가에 내려온다. 카드를 자르면 정말 부자가 될까요.


저녁을 먹으며 돈이 없어서 엄마가 오늘 카톡 선물함에서 그걸 환불하는데 기분이 많이 안 좋았다고 말했다. 둘째는 잠깐만 기다리라며 자기 방에서 모아놓은 돈 51000원을 꺼내 내 지갑에 넣어주었다. 첫째는 자기 통장에 있는 거 써도 된다고 해주었다.


너무나도 복직이 하고 싶어 졌지만 내년부터 돈을 더 알뜰히 모으기로 다짐하면서 나는 가계부를 적기로 다짐했다. 게으른 나는 분명 제대로 안 할 것임을 알기에 작은 수첩에 지출내역을 상세히 적어야지 다짐했는데, 그러려면 작은 수첩을 또 사야 하네? 이런.


가난해서 슬프다. 아이들 학원도 많이 안 다니는데 왜 이렇게 돈이 없지.

내가 조금 더 알뜰하게 살림을 해야 하는 걸까, 이번달에는 우선 냉장고를 열심히 파먹어야지, 이런 생각만 하다가 남편에게 돈이 남으면 좀 보내달라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밤 11시가 되어 입금이 되었다는 알림을 받고 나는 잠이 들었다. 자기돈이 내 돈이라니까 당당하게 요구해도 되겠지.

괜히 내가 쓸데없는데 돈을 쓰는 것도 아니라는 합리화를 하면서 남편이 술만 안 마시고 담배만 안 펴도 벌써 대출금을 갚았겠다고 우겨보는 나는 여전히 가난해서 슬프다.

텅장이 된것도 그렇지만, 고단하게 일하고 술한잔에 잠드는 그를 생각하면 역시 속이 상하고 만다.


마지막으로 가계부로 쓸 수첩만 사고 이번달에는 정말 아무것도 안 사야지. 나는 또 이상한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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