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연작소설

우리 애아빠가 화가 많이 났어요.

#1

by 새벽책장

"선생님, 우리 애아빠가 화가 많이 났어요."

서은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말들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느껴져 말이 곧바로 나오지 않았다. 대학 때까지만 해도 한 말발 한다던 자부심도 현장에 나오고부터는 불씨가 꺼지듯 사그라들었다. 게다가 불씨는 말발뿐만 아니라 열정까지도 사그라들게 만들었다.

"네 어머님, 어떻게 처리해 드리면 좋으실까요?"

제 생각에 제일 친한 성민이와 준호를 분리시키는 게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좋을 건 없을 것 같은데요,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지만 꾸역꾸역 삼켰다. 그런 말을 했다가는 더 큰 호통이 떨어질게 뻔하기 때문이다.

교사가 교육하는 시대는 끝났다. 뭐니 뭐니 해도 고객님의 니즈를 맞춰주는 것이 우선시 되고 있다. 몸을 사리는 것이다.

철밥통이네 뭐네 해도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교사 하나쯤은 잘라버릴 수 있다는 자만과 오만이 가득한 상태이니 굳이 그들의 먹잇감이 될 필요는 없었다. 서은은 초원의 하이에나가 되기로 결심했던 지난 시절을 떠올렸다.


서은은 4년 전, 교사들이 기피하는 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다. 새내기 교사로서 얼마나 열의에 차 있었던지 지금 생각하면 자조적인 웃음만 지어진다. 3년을 꾸역꾸역 채우고 만기 전역을 하는 병장처럼 의기양양하게 가급지의 학교로 옮겼지만 웬걸, 이곳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은 새 학기가 시작되던 3월부터였다.

준호 어머님은 늘 화가 나 있었다. 준호의 말에서 가끔 드러나는 '우리 가족'의 단상들은 짐작건대 화목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학교가 끝나면 영어 학원 버스를 타고 하교를 하고 태권도 학원을 거쳐 피아노 학원으로 마무리되는 준호의 일상은 어느 날은 과학실험 학원으로, 어느 날은 미술 학원과 축구 학원으로 세부 사항이 조금씩 바뀔 뿐이지 큰 틀은 그대로다. 그래서 아이도 늘 놀고 싶어하고 화가 나면 분을 참지 못한다.

서은이 준호의 스케줄을 꿰는 이유는 매일 아침마다 전달되는 준호 어머니의 메시지 덕분이다.

"선생님 오늘은 2시 30분에 영어학원버스 태워주세요. 그리고 준호한테 영어학원 끝나고 태권도 갔다가 피아노 가라고 해주시고요."

월화수목금 매일 오전에 전달되는 그녀의 메시지에 처음에는 서은도 대응을 했었다.

"어머니, 아이들의 개인 스케줄은 아이들에게 직접 전달해 주세요. 28명의 아이들 스케줄을 제가 다 알기도 어렵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고요."

라는 메시지를 전송했다가 1교시 수업 중에 교실로 전화를 걸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그녀를 마주한 서은은 그래도 경력 4년 차의 신규딱지를 막 벗어낸 교사였기에 그녀와 더 이상 대거리를 하지 않았고, 교감선생님께 이 문제를 상의드렸다.

하지만 그가 교사의 편이 되어줄 거라고도 믿지는 않았다. 지난 학교에서 당했던 것이 비단 학부모에게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교사의 편에 서는 관리자가 드문 세상이다. 관리자, 장학사, 교육감은 모두 한 통속이 되어 철저히 학부모의 편이라는 것쯤은 이제 알 수 있다.

교감선생님께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달라고 말씀을 드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교감선생님은 서은을 설득하려고만 했지 교권보호위원회 따위를 감히 4년 차 교사가 열어달라고 했다며 오히려 노기를 드러내셨다.

"박서은 선생님, 교권보호위원회를 막 아무 때나 열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우리 학교에 올해 전입하셨는데, 벌써 교권보호위원회를 열고 싶다고 하면 다른 선생님들 다 웃어요. 다들 그 정도 일쯤은 유연하게 넘어가는 게 교사의 능력인데, 아직 어려서 잘 모르시나. 이 정도로 교권보호위원회 열자면 지금 우리 학교 선생님들 스무 명도 더 넘게 열어야 할걸요. 그냥 학부모가 하는 말에는 크게 응대할 것도 없어요. 알았다, 한 마디만 하면 되는 게 어려워요?"

네 어렵습니다 교감 선생님!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고 서은은 벌게진 얼굴로 교실로 들어와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난 조용한 복도에 서은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서은을 위로해 주러 달려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름 방학을 앞둔 7월의 점심시간이었다. 서은은 잠시 학년 협의실에 학급 준비물을 가지러 내려갔고 아이들은 교실에 모여 놀거나 그 중에 몇 명은 쨍쨍한 햇빛을 받으며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매미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학교 교정은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교실과 사뭇 다른 장소처럼 다르게 느껴졌다.

준호와 가장 친한 친구인 성민이는 생일파티를 앞두고 들떠 있었다. 방학식인 금요일 오후에 성민이 어머님이 아이들을 집에 초대해서 놀게 해 주신다고 성민이는 잔뜩 들떠 있었다. 그에 반해 준호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여러 번의 경험상 준호는 아무래도 생일파티에 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짐작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준호가 난데없이 성민이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내며 욕을 했다. 자신은 갈 수 없는 생일파티 이야기로 즐거워하는 아이들이 못마땅해서였을 것이다. 준호에게 갑자기 욕을 얻어먹은 성민이도 화가 나기는 마찬가지였다. 둘이 주거니 받거니 걸쭉한 욕을 내뱉다가 참지 못한 준호가 성민이를 발로 찼다. 그 순간 교실에 들어온 서은은 아이들을 제지했지만 이미 화가 날 데로 난 아이들은 쉽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특히 준호는 화가 나면 분노가 폭발하듯이 터져 나온다. 그런 준호를 알고 있던 서은이 재빨리 준호를 뒤에서 잡았지만 준호의 팔이 더 빨랐는지 성민이의 뺨을 세차게 때려버렸다.

교실에 "짝"소리가 울려 퍼지고 두 손으로 뺨을 감싼 성민이는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서은의 머릿속에는 또다시 준호의 어머니에게 시달릴 일들이 머릿속을 뱅뱅 돌았다.


그날 오후 서은은 성민이 어머니께 먼저 전화를 드렸다. 성민이 어머니는 아이들의 모든 사정을 고려하지 못하고 생일 초대를 해서 괜히 분란을 만들었나 보다며 오히려 죄송하다고 했다. 서은은 눈물이 났다. 죄송하다고 말해주는 학부모에게 어떻게 감동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발로 차이고 뺨을 맞았지만 성민이는 괜찮다고 했다. 전혀 괜찮을 것 같지 않은데 괜찮다고 해주는 성민이가 서은 자신보다 더 어른스러워 보였다. 역시 '그 부모에 그 자식'이다. 서은은 성민에 대한 애정이 샘솟았다. 아무래도 서은도 교사이기 전에 인간이다 보니 자신이 보기에도 인자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감동하고 존경하게 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겨우 11살 어린이인 성민이가 27살인 서은보다 더 어른 같아 보였다.

"선생님 준호 어머님께는 괜찮다고 전해주세요. 문제 삼지는 않을게요. 아이들이 싸우기도 하고 그렇게 크는 거지요 뭐. 그래도 준호가 화날 때 참는 방법도 배워가면 좋겠네요. 고생이 많으십니다."

서은은 성민이 어머님과 통화를 마치고 또다시 눈물을 훔쳤다. 사실 괜찮은 학부모가 대부분이다. 이상한 사람 몇 명 때문에 모든 학부모들을 적으로 돌리고 있는 것도 현실의 아픔이고 슬픔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 몇몇이 서은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니까.

성민이 어머님과 통화를 마치고 용기를 얻은 서은은 준호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역시나 자초지종을 들은 준호 어머님은 성민이가 먼저 욕한 거 아니냐며 다른 아이 탓을 하기 시작했다. 준호가 학원 끝나고 집에 오면 이야기해보겠다고 전화를 끊었던 그녀가 저녁 8시에 퇴근하고 소파에 누워있던 서은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처음으로 뱉은 말이 바로 "우리 애 아빠가 화가 많이 났어요."였다.

왜? 어느 포인트에서 화가 났을까? 그리고 왜 애 아빠가 화가 났다고 굳이 말하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복합적으로 들었기에 서은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성민이가 괜찮은 앤 줄 알았는데 누구는 초대하고 누구는 초대하지 않고 그랬다면서요? 초대장을 다 준 게 아니라서 준호가 기분이 안 좋았대요. 그런데 성민이가 자꾸 자기 엄마 자랑을 심하게 해서 화가 나서 욕을 좀 했다는데 준호 말로는 성민이도 욕을 장난 아니게 했다는데요? 아니, 애를 어떻게 키웠길래 어린애 입에서 그런 상스러운 욕이 나오는지, 저는 살다 살다 그런 욕을 처음 들어봐요."

그런 욕은 성민이가 준호한테서 배운 걸 거예요,라는 말이 또 혓바닥까지 나왔지만 간신히 붙잡고 서은은 정신줄도 단단히 붙잡으려고 노력했다.

"네, 그런데 준호도 화가 많이 났겠지만 친구를 때린 것은 가정에서 지도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성민이 어머님은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시니 성민이 생일파티에 준호도 참석해서 아이들끼리 잘 풀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아니 선생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그럼 제가 우리 준호 가정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말씀이세요? 준호 이야기 듣고 애 아빠도 화가 많이 났다니까요? 왜 교실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건지. 그때 선생님은 대체 뭘 하고 있었길래 아이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동안 자리를 비우셨는지, 우리 애아빠가 지금 그거 따지려고 학교 가겠다는 걸 제가 간신히 뜯어말렸다고요! 그리고 성민이라는 아이와 앞으로 준호가 친하게 지내지 못하도록 해주세요. 그 아이 아주 안되겠더라고요."

서은은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는 이 통화를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한마디만 하면 된다. 한마디만.

"죄송합니다. 어머님. 제 불찰입니다."

"그래요. 선생님도 좀 잘하셔야겠어요. 애들만 놔두고 교실을 비우시면 어떡합니까. 저희도 크게 문제 삼지는 않을 테니 앞으로 잘하세요! 성민이랑은 자리도 좀 떨어뜨려 주시고요."

서은은 소파에 다시 누우면서 핸드폰을 집어던져버렸다. 바닥에 찍힌 핸드폰은 세 번쯤 굴러 책장 아래에서 멈춰 섰다. 오른팔을 이마 위에 올리며 생각한다.

"너네 아빠만 화났냐? 이거 말하면 우리 아빠도 화 많이 날 거거든!"

며칠 남지 않은 여름방학을 기다리며 서은은 편두통이 시작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