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은 아침부터 아들 해규에게 싫은 소리를 내뱉은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아침마다 아이를 깨워서 등원시키고 출근하는 일상이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점점 버거워지고 있다. 아들은 쑥쑥 자라고 점점 말을 듣지 않는다. 해규에게 아침밥을 먹이는 것을 포기한 지는 오래되었고 그나마 먹는 우유 한 팩을 차 뒷좌석에 흘려버린 아이에게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엄마가 운전을 덜컹해서 그랬지."
"그래서 빨대 꽂아 준거잖아. 그런데 그걸 옆으로 내려둔 게 누군데 그래?"
"거의 다 먹었단 말이야."
"다 먹은 건 아니잖아. 옆으로 놓으면 샌다는 걸 몰라? 여섯 살이?"
서른네 살인 민정은 여섯 살인 해규와 아침마다 싸우는 이런 현실이 지긋지긋하다.
"그럼 휴직을 하던가."
남편인 대성은 그렇게 말하지만 누구 때문에 휴직을 못하는 건데 저런 소리를 함부로 지껄이는지 대꾸할 힘도 없다.
그래도 다른 학급 담임들보다는 나은 편이다. 오전에 육아시간을 20분 쓰고 출근을 하는 것과 8시 40분까지 출근해야 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오전 육아시간을 쓸 수 있기까지 교감, 교장과 얼마나 대화를 해야 했는지. 말이 좋아 대화지, 그들의 일방적인 훈계에 민정도 그냥 '아, 더러워서 안 쓰고 만다.' 하려다가 '너의 당당한 권리'를 왜 포기하냐는 지은숙 선생님 말씀에 용기를 얻어 교육청 자문까지 얻어와서 교감에게 들이밀어 성취해 낸 것이다. 이게 과연 성취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주민정 선생님, 보건 선생님이 학교에 일찍 오셔서, 등교하다가 다친 아이들이나 아침에 학교에 와서 배 아픈 애들 돌봐줘야 아이들이 안정감이 생기지요. 1교시 시작하기 전에 아픈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 애들이 다 심각하게 아픈 건 아니라도 학교에서 보건교사가 엄마같이 보듬어줘야 애들도 마음이 편해져서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과연 보건교사의 역할이 아이들을 엄마처럼 보듬어줘야 하는 것까지였나, 민정은 임용공부를 할 때 아동간호학이나 교육학 어디에서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심리적으로 안정이 필요하면 상담실에 가서 상담을 하면 될 문제 아닌가 싶었다.
간호사라는 프레임이 백의의 천사라는 이미지로 각인된 것에 신물이 나서 병원을 그만두고 임용을 치른 건데 학교에서까지 백의의 천사 노릇을 하라니 민정은 자신이 굳이 나누자면 천사보다는 악마에 가까울 텐데, 하는 자조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민정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3교대로 돌아가는 대학병원 생활은 말 그대로 지옥 같았다. 그곳에서 어떻게 다들 버티며 지내는지 궁금해질 때쯤 남편인 대성을 만나 결혼을 했고 바로 아이를 낳았다. 일 년 휴직을 끝내고 병원으로 복직할 때, 민정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해규를 어떻게 할 것인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고, 결국 민정은 병원을 그만두고 말았다.
하지만 아이만 키우기에는 가정 경제가 그리 넉넉하지 않은 편이었다. 시댁으로 들어가는 돈이 생각보다 크고, 그마저도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병원에 그냥 근무했으면 아버지 수술비 좀 경감받을 수 있는 거 아니었어?"
따위의 말들이 시댁에서 흘러나오면서 민정은 결혼생활에 회의가 들었다. 그리고 20개월 된 해규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임용시험 준비를 했다. 악착같이 했다. 그리고 합격을 했다.
학교는 병원보다 근무환경이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겪어보니 어느 직업이나 만만하게 돈 벌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손가락의 상처를 들이밀며 밴드를 붙여달라고 몰려드는 아이들 때문에 업무는 제대로 볼 수도 없으며, 배가 아프다는 아이에게 어린이용 백초시럽을 먹였다가 학부모에게 알리지도 않고 약을 함부로 먹였다며 민원을 받는 일도 허다하다. 그래서 요즘에는 복통으로 보건실에 오는 아이들에게는 약보다 화장실을 먼저 권하곤 하는데, 이럴 경우에도 배가 아픈데 약은 안 주고 똥이나 싸고 오라고 했다고 하는 민원전화 때문에 기운이 쪽 빠진다.
오늘도 해규에게 싫은 소리를 해대고 인상을 찌푸린 채, 아이를 유치원에 내려주고 부리나케 달려왔지만 겨우 8시 57분에 보건실로 들어올 수 있었다. 지각은 면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컴퓨터를 켜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려는데 출근한걸 어떻게 찰떡같이 알아냈는지 누군가 문을 똑똑똑 두드린다.
"어? 박서은 선생님 어서 와요. 아침부터 무슨 일이에요?"
오른쪽 관자놀이를 손으로 누른 채 4학년 3반 담임인 서은이 들어온다. 학급의 진상 학부모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소문을 듣긴 했는데, 아침부터 교실을 비우고 올 사람은 아닌 걸 알아서 민정은 의아하게 서은을 바라보았다.
"애들 1교시에 영어전담교실 올려 보냈거든요. 저 편두통이 너무 심한데 혹시 두통약 한 알만 얻을 수 있을까요?"
"또 무슨 일 있었어요? 편두통이 잦네. 지난주에 애들 학폭 열릴뻔한 건 사과하고 끝냈다면서요."
"아... 그거요. 네. 그것도 할 말이 많지만.. 어제는 그때 학폭 가해자로 갈 뻔한 아이가 또 애를 때렸거든요. 상대방 부모님이 그냥 넘어가주셔서 학폭이야기는 안 나왔는데, 본인 아들이 잘못한 건 하나도 생각이 안 드는지 적반하장으로 저한테 뭐라고 하잖아요. 그것도 저녁 8시에 전화해서."
"그렇구나. 안 그래도 자꾸 두통 있는데 신경 쓰니까 더 그러네."
민정은 서랍에서 열쇠를 꺼내 약장문을 열고 타이레놀 4알을 잘라 서은에게 건넸다."
"심하면 한 번에 두 알 드셔도 되고, 점심때 한 번 더 드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개인 폰 번호는 알려주지 마요. 하이톡으로만 대화하거나 전화는 교실전화만 사용하고, 투폰 쓰는 선생님들도 계시다던데, 업무용 폰은 교실에 두고 다니니까 따로 관리할 일도 없다고 그러고."
"저도 처음에는 폰 번호 공개 안 했는데, 3월부터 전화해서 너무 난리를 치니까 알려드릴 수밖에 없었어요. 방학하면 번호를 바꿀까 생각 중이에요."
"아이고, 고생이 많네요."
그때 보건실 문이 빼꼼히 열리며 귀엽고 작은 얼굴 하나가 문 사이로 나타났다.
"어, 어서 와요. 어디 아파서 왔어요?"
서은은 민정에게 눈으로 인사를 건네고 아이를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선생님, 배가 아파요."
"혹시 아침에 뭐 먹었을까?"
아이는 눈을 굴리며 고개만 저었다.
"아무것도 안 먹었어? 배가 고픈 게 아닐까요? 응가는 했어요?"
여전히 아이는 고개만 저었다.
"선생님이 배 좀 문질러 줄까? 이름이 뭐예요? 자주 안오던 친구같은데 보건실에 처음 와요?"
"지난주에 전학 왔어요. 1학년 3반 김은비예요."
"그렇구나. 은비는 여름방학 다 되어가는데 전학을 왔네요. 선생님이 배를 문질러주고도 계속 아프면 저기 누워서 배에 핫팩을 올려놓고 찜질을 좀 해볼게요. 아침을 안 먹었다니까 배가 고파서일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잘 생각해 봐요."
"네."
은비는 1학년 치고도 더 작은 몸을 하고서 민정이 문질러주는 손길에 잔뜩 긴장을 한 모습이었다.
그 사이 컴퓨터가 부팅이 되었고, 메신저에 자동 로그인이 되면서 업무 메신저에 무엇인가가 잔뜩 전송되고 있는 것을 민정은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도 업무 폭탄이 쏟아지려나 보다, 하며 업무포털에 들어가서 오늘은 몇 개의 기안을 상신해야 할지, 3시 30분에 육아시간 사용하고 제 때 퇴근 할 수 있을지, 한숨이 나왔다.
멍하니 은비의 배를 문지르다 보니 아이의 티셔츠가 살짝 올라갔다. 은비는 재빨리 티셔츠를 끌어당기는데 순간 뽀얀 살색이 아니라 갈색빛을 본 것 같아 민정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은비야 선생님이 여기 배 옆에 살짝 봐도 될까?"
"안 돼요."
"왜?"
왜냐는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은비는 방금까지 얌전히 앉아 있던 의자에서 폴짝 내려갔다.
"배가 이제 안 아파요. 안녕히 계세요."
은비는 쪼르르 보건실 밖으로 몸을 숨기듯 나가버렸다.
민정은 이마를 찌푸리고 1학년 3반 선생님에게 상담을 요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저 업무 메시지들 좀 먼저 처리하고 나서 말이다.
업무 메시지 창을 클릭했지만 목구멍에 생선 가시가 걸린 것처럼 은비가 목구멍 어딘가에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