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팩의 추억

by 새벽책장

그날은 영하 10도를 웃돌던 평범한 겨울이었다.

지하철역에 내려 약속 장소로 향하는데 그의 등이 보였다. 인형 뽑기 기계 앞에서 무엇인가 열중하는 그의 뒷모습이 흥미로워 가만가만 다가갔다. 그것은 인형 뽑기가 아닌 잡동사니 뽑기 기계였다. 뭘 저렇게 열심히 뽑고 있나, 필요한 게 있으면 사면될 것을.이라는 생각을 하며 지켜보는데, 뽑기에 실패하고 뒤돌아서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왔어요?

-뭘 뽑고 있어요?

-아니에요.

수줍게 웃는 입술 사이로 보이는 그의 덧니가 사랑스럽다.


그 겨울 항상 손을 잡고 다녔다. 평소 손발이 차가운 나와 다르게 그의 손은 늘 따뜻했다.

'핫팩이 따로 없네.'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따뜻한 손이었다.




다음날도 어김없이 퇴근 후 지하철 역 근처에서 그를 만나기로 했다. 그는 오늘도 기계 앞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오늘은 꼭 물어봐야지.

-오늘도 뽑기하고 있네요?

-아, 왔어요?

그는 어제와 다르게 환하게 웃으며 손에 든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충전식 핫팩'이었다.

-이거 뽑으려고 그렇게 애를 쓴 거예요?

밝게 웃는 그의 눈이 반달이 되었다.

식당에 가서 돈가스를 먹었다. 그는 돈가스가 나오면 항상 작게 잘라서 먹기 편하게 놓아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주머니에 있던 충전식 핫팩을 꺼내 내 손에 쥐어주었다.

-어? 따뜻하네요? 언제 충전했어요?

-아까 돈가스 집에서 부탁해서 했어요. 잠깐 충전한 거라 금방 식을 수도 있으니까 집에 가서 충전해놓고 자요.

아끼는 사람에게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해주었다는 자신감이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해 겨울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받던 기억이 떠오르면 핫팩만큼 따뜻한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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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가 그를 위해 겨울이면 핫팩을 한 상자씩 산다. 주로 외부에서 일을 하는 그에게 내복과 붙이는 핫팩은 필수품이다. 덧니와 반달눈은 여전히 사랑스럽지만 자글자글한 주름과 눈에 띄는 흰머리를 볼 때면 애잔함도 느껴진다. 그렇게 중년이 된 부부는 아직도 손을 잡고 다닌다. 그의 손은 여전히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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