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연작소설

내 나이가 어때서

#10

by 새벽책장

은숙은 침대에 누워 조금 분한 마음을 다독이고 있었다. 40대 싱글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된다는 인식이 그녀를 화나게 만들었다.

어제 교직원회의에서 있었던 일이다.

"선생님들, 수고해 주셔서 학교에 큰 일 없이 1학기를 잘 마무리해가고 있습니다. 이제 방학하려면 이틀 남았는데 방학식날까지 애써주세요. 에, 그리고 제가 가만히 보니까 금요일에 유독 조퇴를 많이 하시는 몇몇 분들이 계십니다. 특별한 사정 아니면 선생님들 조퇴는 앞으로 반려할 예정이니까, 조퇴사유가 있으시면 교감선생님과 상의한 후에 상신 올려주시기 바라요."

교장선생님의 발언이 끝나기도 전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뒤쪽에서부터 들려왔다.

은숙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대체 황당해서 화도 나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1학년 3반 서정희 선생님이 은숙을 돌아보며 "뭐래는 거야?" 하는 눈빛을 보낸다.

맞다, 금요일에 자주 조퇴하는 그 몇몇 중에 한 명이 은숙이다. 은숙은 교사노조에서 일을 하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전교조 활동도 했는데 몇 해전에 생긴 교사 노조에서 힘을 실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지역 교사 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느라 금요일 오후에는 노조에 모여 회의도 하고 2030 교사들을 위한 워크숍도 준비하느라 눈치가 보이지만 매주 금요일마다 일찍 퇴근하고 있었다.

은숙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손을 번쩍 들고 누가 발언권을 주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장 선생님, 조퇴는 개개인의 권리인데요. 자기 연가일수 안에서 조퇴 쓰는 건데 허가를 안 해주신다는 건 부당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무도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역시 순응적인 사람들이야, 은숙은 할 말도 못 하고 그저 속앓이만 하는 선생님들이 안타까웠다.

옆자리의 정희만이 자리에 앉은 채 말을 보태주었다.

"맞아요. 쌍팔년도도 아니고 나이스에 조퇴사유도 이제 안 쓰는 시대에 허가를 안 해준다는 건 좀 심한 거 같네요."

교장선생님의 학교 동기인 서정희 선생님 말에는 교장선생님도 입을 비죽일 뿐 큼큼 소리만 낸다.

한 템포 쉬고 교감 선생님의 말이 이어졌다.

"네네 선생님, 연가 일수 안에서 쓰시는 거 누가 뭐라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즘 개인복부를 철저히 하라는 교육청 공문이 매일 옵니다. 방학이 다가와서 그런가 봐요. 거 코로나 때도 선생님들 클럽 가고 그러셔서 동선 밝혀지고 그때마다 기강이야기 나오지 않았습니까. 교장선생님은 그런 취지로 말씀하신 거니까 편하게 저와 상의하시면 제가 불합리하게 반려하겠습니까 어디."

"교감 선생님, 교사는 클럽 가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요? 금요일에 자기 할 일 끝내고 클럽 갈 수도 있죠."

"아유 그럼요. 그래도 코로나 때 클럽 간 건 좀 그랬죠. 요즘에는 많이 다니세요. 괜찮습니다."

곳곳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교감선생님 저희가 주말에 어디 간다고 보고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죠. 보고하라는 게 아니라 정당한 사유로 조퇴하시라는 이야깁니다."

교감 선생님은 반짝이는 이마를 자꾸만 손으로 쓸어 올리며 안절부절못했다.

정희는 옆에서 은숙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하라면 다 해야 하는 일들이 자꾸만 부당하게 여겨지는 건 은숙 혼자만의 생각인 걸까, 문득 그런 마음이 들자 은숙은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수첩에 낙서를 끼적이고 있는 선생님, 핸드폰 화면만 바라보는 선생님, 팔짱을 낀 채 말없이 허공만 바라보는 선생님. 은숙은 조금 지치는 기분이었다.


그냥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 일들에 유독 더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은숙이 그런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여름방학이 다가와서 마음이 조급해지는 걸까. 한해 한해 나이를 먹을수록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정말 있었다. 은숙에게는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진리였는데, 진리라는 것은 세월의 흐름에 조금씩 빛이 바래가거나, 본질이 변하기도 한다는 걸 사십 대 중반이 되니 조금 알 것 같았다.


"에, 그리고 한 가지 더 전달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번 여름방학 근무조가 조금 변경이 있게 되었습니다. 1학년 4반 조성지 선생님이 학기를 마무리 못하시고 급하게 산전육아휴직을 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루 더 근무를 해도 되는데, 하필 그날이 저희 가족 여행날이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가능하신 분이 하루만 더 해주시면 겨울 방학 근무에서는 빼드릴 예정입니다. 자원하실 분?"

교감 선생님과 더불어 반짝이는 머리를 가진 교무부장이 자신의 오른손을 귀 옆으로 올리며 자원하실 분을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당연하겠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는 않았다.

"에, 그럼 그날 연가 안 쓰신 분들 중에 장희재선생님? 선생님이 그날 연가가 아니시더라고요. 41조 취소하시고 그날 근무 가능하실까요? 날짜는 8월 3일입니다."

6학년 5반 담임인 희재는 올해 첫 발령을 받은 신규교사다. 딱 봐도 속셈이 드러나 보인다. 이 자리에서 물어보면 신규선생님은 당연히 알겠다고 할 것이고, 심지어 희재는 주로 시키는 대로 하는 편이라는 걸 교무부장이 모를 리가 없다.

은숙은 또 벌떡 일어섰다.

"제가 할게요. 신규 선생님 첫 방학인데 좀 쉬게 둡시다."

여기저기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게 박수를 받을 일인가 싶어서 머쓱해져 뒤통수를 긁으며 은숙은 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이번 교사노조에서 회의할 내용이 쓸데없는 방학 근무 폐지였는데, 방학 중 근무를 더 얻어가니 회의에서 할 말이 없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뭐, 학교 밖에서는 방학에 교사들이 쉬는 걸 아니꼽게 본다는데, 언제부터 방학에 교사들이 출근하지 않는 게 이상한 세상이 되었지. 학교가 존재하고 방학이 존재한 이래로 쭉 그래왔던 일을 말이다.

여기까지였으면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도 있었는데, 교무부장의 마지막 말에 은숙은 집에 와서도 잠을 못 자고 이불킥을 하고 있다.

"우리 지은숙 선생님 후배 사랑하는 마음이 아주 멋지십니다. 저렇게 멋진 여성이 왜 아직 싱글일까요. 주변에 괜찮은 남성분 계시면 우리 지 선생님 소개 좀 시켜주세요."

은숙은 입을 벌린 채 교무부장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을 알아챈 교무부장이 재빨리 회의를 마무리 지었고, 선생님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말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쳤다.

와 씨, 저거 성희롱 아냐? 직장 내 성희롱 신고를 해 말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교실로 돌아온 은숙은 교무부장에게 조용히 메시지를 하나 보내고 퇴근했다.

"교무부장님 그런 사적인 발언은 공적인 자리에서 하지 마셨어야 했어요. 큰 일 하실 분이니 제가 미리 말씀드립니다. 요즘 세상에 말 한마디 잘못하면 신고당하는 거 아시죠? 아까 발언은 많이 언짢으니 빠른 시일 내에 사과 부탁드립니다."


40대에 혼자 산다고 하면 다들 속으로 뭔가 문제가 있으니까 결혼을 못했지,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은숙은 알고 있다. 그리고 은숙이 무슨 말 한마디나 행동 하나라도 잘못하면 '그럼 그렇지, 저러니 결혼을 못했지.'라며 당연한 듯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가끔은 은숙도 그런 대접을 받다 보면 정말 내가 성격이 이상한 걸까,라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교실 안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한다. 26명 모두 다 다른 개성의 아이들. 어느 하나도 똑같은 아이가 없다. 교사는 그런 아이들은 모두 인정해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니 이런 어른도 인정해 주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어린애 같은 생각을 해본다.

그러다 보니 교무부장도, 교장도, 교감도 갑자기 불쌍하고 안쓰러워진다. 편협한 세상에 갇혀 사는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야, 그제야 은숙은 잠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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