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아기띠에 안은 나이 서른다섯에 아줌마라 불리는 게 큰일은 아니다. 그래도 마음에 울리는 파장은 꽤나 충격이었다.
-고미씨, 오늘 나 아줌마란 소리 들었어. 아줌마는 맞는데 불리니까 기분이 거시기하네.
-아줌마지. 그럼 뭐라고 불러. 언니? 이모?
-헉 나보다 나이 많은 아줌마가 나보고 이모라고 불러도 진짜 별로겠다.
아이가 흘린 장난감을 주워준 친절한 '아줌마'도 딱히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아줌마'말고는 적절한 호칭이 없다는 게 서글펐다. 뭔가 외국의 어느 나라처럼 미혼이든 기혼이든 상관없이 불릴만한 호칭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백하자면 서른다섯에 불린 아줌마가 처음은 아니었다. 방년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꽃무늬 추리닝을 입고 강아지와 산책하던 나는 당시 재수생이었다. 꽃스물이라도 재수생과 대학생의 외모는 상당히 달랐음을 미리 말하고자 한다. 그때 내가 아닌, 강아지에게 몰려드는 동네 꼬마들에게 그 말을 들었던 것이다.
-아줌마. 얘 이름이 뭐예요?
스무 살에 아줌마라 불린 소녀는 황급히 그 자리를 피했고, 그 녀석을 저주했다.(꼬마야 미안. 내 저주는 신통치는 않으나 지금이라도 사과할게.)
뭐든 처음이 어렵지, 자주 겪게 되면 익숙해지는 게 또 사람의 습성 아니겠는가. 이제는 누가 나에게 아줌마라고 불러도 기분이 조금만 나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이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보다 아줌마가 아줌마라고 부르면 더 기분이 묘하다.
아줌마의 사전적 의미는 "아주머니를 낮추어 이르는 말", "어린아이의 말로 아주머니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어린이는 아주머니를 아줌마로 불러도 되지만 성인끼리는 낮추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의 입에서 나오는 아줌마 소리에 언짢았나 보다.
요즘은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나를 '이모'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이모라는 말도 나는 딱히 좋지 않다.
나는 그대의 어머님과 일면식도 없는데요, 왜 나를 이모라고 부릅니까?라고 어린이에게 따져 묻고 싶어질 지경이다. 뭐, 이쯤 되면 프로 불편러 등극이다. 왜 나는 이모라는 호칭도 불편할까?
생각해보면 친구의 아들 딸들이 부르는 이모라는 호칭은 자연스럽다. 아니 오히려 그네들이 나를 아줌마라고 부르면 어색할테다.
그러나 동네에서 만난 꼬마들이 이모라고 부르는 건 내 선을 넘어오는 친근함이다. 꼬마들의 친근함이 불편했다기보다는 그 어린이의 엄마와의 관계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나만의 선이 확실한 나는 동네에서 아는 엄마를 만들지 않는다. 혼자 노는 게 세상 으뜸으로 좋다. 그래서 가까워지고 싶지 않다.
모두의 의견을 존중한다. 꼬마 친구들이 나를 이모라고 부르는 것도 존중하고 아줌마라고 불러도 괜찮다. 그래도 나는 나 스스로를 지칭할 때 이모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그냥 적당히 거리 두기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