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주황색부터

Orange Light

by 새벽책장


교차로에서는 차라리 주황불이 빨리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멈추거나 가거나.

도로에 차가 많지 않으면 속도를 내서 통과해야 하는데 중간에 갑자기 신호가 바뀌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차가 많을 때는 여기를 통과 하다가 꼬리 잡는 상황이 되면 어쩌지, 그 짧은 순간에도 걱정이다.

게다가 교차로를 통과하기 직전에 갑자기 주황불이 들어오는 경우는 매우 난감하다.

급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나, 속도를 더 올려야 하나.

교차로에 일단 진입하면 속도를 내서 통과하는 게 맞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상황은 진입하기 직전에 켜지는 주황불이다.

초보시절에는 주황불이 들어왔을 때 무조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한 번은 브레이크를 밟고 룸미러를 봤는데 뒤차 운전자가 할아버지셨다. 옆좌석에 할머니가 앉으셨는데, 급하게 정지하셨는지, 두 분 다 놀라보이셨다. 내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 사고가 날 뻔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분께 무척 죄송했다.


주황불은 이미 우리에게 예고를 해주는 신호이다. 그런데 나는 "주황불이 곧 들어옵니다. 딸랑딸랑 예고합니다." 하는 주황불 예고 신호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갑자기 들어오는 주황불에(그럼 갑자기 들어오지 어떻게 들어오냐.) 자주 놀란다.






이십 대에 사귄 남자친구는 가끔 연락이 안 되곤 했다. 내 생일에도, 크리스마스에도, 새해 첫날에도 같이 한 날이 없었다. 그냥 연락이 안 됐다.

이별을 알리는 주황 불이었겠지만 그때는 이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했고 머릿속은 뜨거웠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라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그는 회기역 근처에 살았다. 두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지하철을 타고 가서 무작정 집 앞에 서서 기다렸다. 하염없이 기다리다 근처 피시방으로 향했다. 가까운 곳부터 하나씩 뒤지기로 했다.

여러 곳에 갈 필요도 없었다. 첫 번째 피시방에서 그를 만났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미친년이다. 내가 남자친구였어도 좀 무서웠겠다. 나는 형사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잠복근무 엄청 잘했을 것 같은데.


단지 얘기가 하고 싶었다. 끝내려면 말을 해야지 않나. 주황불도 없이 훅 빨간불이 되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 그러다 사고 나면 책임질 건가.

그렇게 헤어지자는 말을 억지로 받아내고 돌아오는 길에 별이 반짝거렸다. 도시에서는 별을 잘 볼 수 없는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별을 봤다. 별이 참 크고 반짝이네, 그렇게 생각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 그거 인공위성이었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거 아니고 억지로 인간이 만들어서 쏘아 올린 거.

억지로 쏘아 올린 위성을 태초부터 반짝이는 별이라고 착각했다.

모든 것은 착각이라는 생각이 나를 오히려 자유롭게 했다. 이제라도 알았잖아. 별이 아니라는 거.


다음날은 따뜻한 일요일이었다. 꽃샘추위가 사그라들고 드디어 벚꽃이 하나둘씩 피기 시작하는 계절.

산책을 나갔다. 부드러운 바람과 햇살이 오랜만에 행복했다. 요 며칠 동안 봄인지도 모르고 내 마음은 겨울을 헤매고 있었는데, 그 해 봄이었다. 이별이 왔지만 행복했던 봄날.


나는 주황불은 미리 켜주는 게 좋다. 주황불이라고 말해주는 게 좋다. 갑자기 훅 들어오면 놀란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좀 지키는 게 좋다.


그린라이트가 켜지면 우리는 질주를 하지.
그리고 반드시 오렌지라이트가 켜지는 데 그때 모르고 멈추지 않으면 사고가 난단다.
레드라이트에는 잠시 멈춰서 휴식을 취해. 창밖 풍경도 한 번 돌아보고, 하늘도 올려다 보고.

그러다 보면 그린라이트는 또 켜지게 마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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