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선영이

by 새벽책장

내 친구 선영이는 못난이였다. 키도 작고 눈도 작았는데, 옆으로 쭉 찢어져서 눈동자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콧등은 아예 없다고 해야 하나. 콧구멍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콧등은 정말 낮았던 기억이 난다. 나도 낮지만 네가 더 낮다, 뭐 그런 생각을 했었으니까.

아휴 외모 가지고 뭐라고 하면 안 되지만 살면서 내가 만난 친구 중에 제일 못났다.


선영이와 나는 같은 반이었지만 별로 친하지는 않았다. 그 아이와 친해진 건 성당에서였다. 어느 날 성당에서 그 얘가 책을 읽고 있는 걸 봤다.

"어? 쟤가 성당에 다녔었나?"

말이 없고 책을 좋아하던 두 아이는 친구가 되었다.


성당에서 열혈 봉사자로 일하던 우리 엄마도 당연히 선영이를 알았다. 선영이 엄마는 성당에 나오지 않으셨다. 그래도 선영이는 참으로 열심히 나왔다. 이상했다. 나는 우리 엄마가 가라고 등 떠밀어서 오는 건데, 선영이는 가라는 사람도 없는 성당엘 왜 이렇게 열심히 오는 걸까.

티브이도 보고 싶고 친구들과 놀이터도 가고 싶던 어린 시절의 토요일 오후를 어린이 미사로 채워야 했기 때문에 나는 늘 불만이었다. 그래도 성당은 그렇게 공기처럼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었다. 가기는 싫었지만 안 간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을 정도였으니, 우리 엄마의 세뇌 실력은 대단하다. 다음 생에는 꼭 국정원에서 일하시길.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하게도 선영이는 엄청 멀리서 학교를 다녔다. 그때는 학교가 많지 않았을까. 어른 걸음으로 걸어도 30분은 족히 걸리는 동네에서 학교까지 지각 한번 없이 다녔다.

추운 날에는 아마 손발이 꽁꽁 얼었을 거다. 겨울에 선영이는 손등이 항상 하얗게 터있었다. 당시에는 요즘 아이들처럼 로션이나 선크림을 잘 바르는 애들이 없었고(나만 안 발랐을 수도 있지만) 나도 그랬지만, 선영이 손등은 하얗다 못해 갈라져서 피가 맺히기도 했었다.

안 아픈지 물어봐도 딱히 불편해 보이지는 않아서 금세 잊곤 했다.


어느 날 선영이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딱딱 딱딱하는 소리만 들렸다. 분명 누군가가 수화기를 들었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아 전화기가 이상한가 생각하는 순간, 선영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빠가 받아서 그래. 우리 아빠 말을 못 하시거든."이라고 말해서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선영이 아빠가 매일 집에 계시다는 것은 대화 속에서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그런데 병환으로 누워계신지는 몰랐다. 그리고 말씀을 못하신다니, 어린 마음에도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선영이에게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가 있었다. 우리가 국민학교 시절에, 그녀는 벌써 성인이었으니까 엄청 커보였다. 선영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언니였다. 언니가 일해서 가정 경제를 돌보는 것 같았다. 그녀의 언니는 당시에 어른이었으니까 직장 다니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제 갓 스무 살을 넘었을 선영이 언니의 삶에 가슴이 아린다.

언니 다음으로는 엄마를 좋아했던 것 같다. 엄마 이야기를 자주 했지만 나는 선영이 엄마를 본 적이 없다.

선영이의 말속에서 그려본 엄마는 항상 시폰 같은 샤랄라한 치마를 입고 긴 머리를 찰랑거리는 여리여리한 여인이었다. 못생긴 선영이를 바라보면 그 엄마의 모습이 굉장히 괴리감이 들었지만 말이다.


선영이는 책을 많이 읽었다. 당시에는 학교에 도서관이 없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한참 가야 나오는 도서관을 찾아다녀야 했다. 나는 그녀 덕분에 처음으로 어른 없이 버스를 타보는 경험도 해보았다. 도서관에 나를 처음 데려간 사람이 선영이었다.

책을 많이 읽으니 아는 것도 많았고, 수업시간에도 어려운 단어를 사용해서 발표를 하곤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선영이를 싫어했다. 못생기고 손도 하얗게 터진 애가 잘난 척을 하니까 눈꼴 셨나 보다.

나도 수업시간에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는 선영이가 조금은 불편했다. 친구들에게 차갑게 구는 선영이가 가끔은 어려웠다.


다음 해가 되어 선영이와는 다른 반이 되었지만 성당에서 자주 만났기 때문에 우리는 비슷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냈던 것 같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었고, 어린이 미사가 아닌 청소년 미사로 옮겨갔다. 선영이는 그때부터 성당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 아이의 존재가 희미해져 가던 어느 날, 엄마가 선영이 이야기를 꺼냈다.

"네 친구 선영이 알지? 걔네 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그래서 성당에서 장례를 도와준다고 엄마도 갔다와야쓰겄다. 친척이 없다네. 엄마도 새엄마라는 디, 애들 불쌍혀서 어쩐댜."

선영이 엄마가 새엄마라는 건 그때 알았다. 아, 그래서 선영이가 엄마를 좋아하면서도 어려워했구나, 시폰 치마를 휘날리는 모습이 그렇게도 선영이와 달라 보였구나.

그 후에 엄마가 아빠에게 하는 말을 엿들어서 알게 된 사실은, 선영이 엄마는 결국 아이들과 헤어져서 떠났다고 한다. 그때는 선영이가 불쌍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삶도 안쓰럽긴 마찬가지다.



겨울이 되면 손등이 하얗게 튼 손으로 책장을 넘기던 선영이가 생각난다. 그리고 선영이의 언니도, 새엄마도 모두 어디선가 자신의 행복을 찾았길, 이제 무신론자인 나는 그래도 가끔은 그렇게 신께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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