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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Lim Aug 09. 2017

레거시를 잊지는 않았는가

택시운전사가 나에게 준 것들


예전에 나는 역사덕후였다. 고등학교 시절, 그러니까 아직 사회탐구 영역을 4개 시험보던 시절에

(그렇게 옛날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옛날이긴한 것 같다. 10년 전이니까)


나는 근현대사, 세계사, 국사를 했다. 당시 존재하던 역사류 수업을 다 들은거였으니까 덕후였지. 이렇게 세 개를 듣는 친구들을 보고 '너 설마 삼사듣냐?(세 개의 역사수업을 듣느냐?'라곤 했었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야 ㅋㅋ 1884년에 무슨 일 있었는지 알아? 그거 갑신정변 아냐? ㅇㅇ 맞아 10년 뒤 갑오개혁이고. 갑신정변이 3일천하 그거고, 아래서 위로 간 성격. 갑오개혁이 위에서 아래로 간 성격인거고. 1970년은 뭐였게? 100억불 달성한 해야. 이런식으로 놀았다.

농담같지만 정말 그랬다. 국사-근현대사를 아우르므로 (당시 근현대사를 어떤 시기부터 논하느냐 했으면 아마도 1884년 갑신정변부터가 근현대사시기다. 라고 논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교과과정 수준에서 논한거였으니 확실한건 아니어도 어느정도 통용되는 용어라고 생각한다. 물론 동학농민운동이 있던 1894년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는데, 뭐 어찌되었든 '근현대'가 시작되었던 시기는 그 즈음이라고 생각한다.)






여튼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많은 역사적 사실의 '년도'를 외웠었다. 년도를 외우고 그 의미를 이해하고 외우고 그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떤 역사가 되게 되었는지. 국사, 근현대사, 세계사를 나름 다 연결시켜서 이해하려 했었는데 꽤나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스스로 연계해서 공부한덕에 지금도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많이 기억이 난다. (그치만 난 한국사 시험 4급이다. 많이 아는데, 많이 알지 못하는 기분이야...) 


4.19혁명(1960), 5.18 광주민주화운동(1980)과 6.10 민주항쟁(1987)을 많이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광주민주화운동은 영화를 통해서 많이 접하기도 했고, 여러 역사적 사료들을 통해 접하기도 해서 더 마음속에 있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원인과 결과를 연결지어서 그 영향과 이유와 의의등을 연결해서 생각하는걸 좋아하는데, 역사는 이런 과정들을 훨씬 더 명료하게 해줘서 좋은 것 같다. 더불어 개인의 삶이 경험을 통해 축적되는 경향이 있는데, 역사는 이 경험들을 정말... 그 얻어진 결과에 비하면 정말 값싸게 전달해준다. 남들이 흘린 피를, 난 문장 한 줄로 얻어가는거니까.






오늘 택시운전사를 보며 내가 잊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다.


한 사람의 삶은 온전히 그 사람의 몫일까?


다들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내 삶은 나의 몫이다. 내가 공부하고 내가 탐구하며 내가 돈을 벌고 내가 사유하고 내가 커뮤니케이션한다.
그 누구도 나의 삶을 챙겨주지 않으며, 내 몸은 내가 돌봐야하고, 나의 것은 내가 돌봐야한다.

당연히 그러하다.


근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이 타자를 치고 있는 노트북은 어디서부터 시작된걸까. 그리고 지금 내 옆에서 내 취향의 음악을 재생해주고 있는 아이폰은 어디서부터 시작된걸까.

물론 이건 내가 내 돈을 주고 산게 맞다. 내 손끝으로 시작된거지.

근데 이 노트북이 한 순간에 뿅하고 나타났을까. 아이폰의 기술력과 디자인이 한 순간에 뿅하고 나타났을까.


아니다. 뭐 물론, 이 것들은 LG라는 회사가. 애플이라는 회사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만들어낸 재화이긴 하지만 이러한 형태를 갖추기까지, 수 많은 이들의 경험과 생각과 희생이 묻어나왔을 것이다.

노트북이 나오기전에 퍼스널 컴퓨터, PC가 나왔을 것이고. 그걸 만들어내기 위해 누군가는 배를 곪으며 연구에 몰두했을 것이다. PC가 나오기전에 애니악이 나왔을 것이고, 명확한 전후관계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앨런 튜링처럼, '새로 나온 기술로 인간의 삶(전쟁)을 저울질해야만하는' 상황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에서, 온전한 나의 이 삶에서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나만을 위해 나온 것도 아니고 내가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난 이미 존재하고 있는 기술이나 생각등을 마땅한 값어치를 지불하고 사실상 '대여'하고 있을 뿐.(내가 만들어낸게 아니고, 내가 100%이해하고 있는게 아니라면 돈을 지불하고 샀더라도 그게 온전히 내것이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삶의 기간동안 대여하는 것이지)

 그 대여도 지금의 체제가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돈'을 지불하고 대여가 가능한 것이다. 이 자본주의 또한 누군가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겠지.


그리고 우린 사실 이런 기술과 자본의 대여에 대해서 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이 내가 고생한 것(일한 것)과 비교해서 '교환'하기에 합당한가?를 따지면서 비용을 따지고, 구매결정을 하며 살아간다.









자본주의는 그러한데, 민주주의는 어떠할까.


가끔 우리가 자주 잊고 사는 사실인데, '태어났을 때부터 뿅! 누군가가 제 삶에서 F10키 눌러서 환경설정 들어와가지고 경제체제 : 자본주의. 사회체제 : 민주주의로 설정해주고 갔어욘 >_<! 그 상태에서 시작했어욘ㅎㅎ 이거 당연한거 아닌가욘 ㅎㅎ' 라고 생각한다는거다.


위에서 열거한 내용처럼 마치 자본주의처럼, 민주주의도 누군가의 피와 땀과 생각과 기술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보다도 오래되었지. 자본주의는 재화의 폭발이 일어나면서, 그러니까 '잉여재화'가 나타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체제니까. 그에 반해 민주주의는 더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라고 나도 그렇게 알고 있다.)


이처럼 두 체제 모두 개인의 삶을 위해 나타난게 아니라, 개인의 삶이 쌓이며 나타난 것이다. 인류의 지식과 모든 것들이 쌓여 나타난 것. 인류의 유산. 레거시(legacy).

(난 이 legacy라는 단어가 그 어떠한 것보다 내가 표현하고자하는걸 잘 표현하는 어휘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한국어랑 영어만 알아서 그런것일수도 있겠지만)


나는 우리의 삶에, 개인의 삶에 이 레거시를 쌓아가야할 + 이어나가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난 이 삶에서 많은 것들을 '감사하게도' '저작권료 없이' 많은 것들을 '대여'한채 살아가고있으니까. 누군가의 고통과 시행착오로 이루어진 이 건물. 이 전기. 이 기술들을 난 그저 '현시대의 제 값'만 치루면 평생 대여할 수 있는 것이니. 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









개인의 삶은 온전한 개인의 것이지만. 그래서 니 삶 니 맘대로가 맞는 말이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본다면, 이 레거시처럼 많은 것들이 개인의 삶을 점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생각나는 것들만 열거해보자면


자본주의, 민주주의 같은 패러다임들. 수 많은 고전들. 많은 사람들에게 별이 되어주고 있는 철학. 삶을 편하고 손쉽게 만들어주는 과학기술. 세상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는 기초과학(선험과학도 포함하여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과 살아갈 때 생각하고 지켜야할 예의, 매너들. 안정된 국가 체제 등?

사실 국가라는건 어떤 범주에 놓느냐, 어떤 시각으로 놓느냐에 따라 달라지기에 저기 포함시킬까말까 했지만 일단 넣어보았다. 국가라는것도 하나의 단일 항목으로 놓고 보면 분명 레거시 중 하나일테니까.


위에 열거한 것들을 개인의 삶에 얼마만큼의 퍼센테이지를 줄 것이냐가 개인의 선택이겠지. 개인의 영역을 제외한 모든것들에 합쳐서 1%만 할당해도 괜찮다. 하지만 0%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저런 레거시 영역의 것들을 공부하고 탐구하며 살면 정말 멋진 삶이겠지만(내 기준에서 저런것들을 탐구하는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어찌되었든 개인의 삶에 초점을 더 할당할 수 있는데, 그러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니까) 모든 이들의 저런 것들을 좇으면서 살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개인의 삶, 본인의 삶에만 집중해도 힘든 사람이 분명히 있고, 그 사람이 틀린 사람이 절대 아니다. 

사실 '올바르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옳다' 라는 명제의 시작은 '올바르게 살아라'라기보다는 '모든 개인은 옳다.'에서 시작된거니까. 그 사람이 어떠한 삶을 살든, 본인 입장에서는 옳은 사람이니까. '올바르게 살아라'는 분명 개인의 영역이 아닌, 사회의 영역 혹은 레거시의 영역에 속한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개인의 삶'만 살아가기 시작하면, 그렇게 우리가 쌓아온, 유지해온 레거시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기 시작하면 그 레거시들이 점차 곪아들어가고 무너져내려가기 시작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이 '돈 주고 무엇을 산다'라는 개념이, '내 의견이 사회에 반영된다'라는 생각이. '장자왈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르게땅 ><!'이라는 아주 생각해볼만한 생각이, '사과는 떨어집니다. 왜냐면 지구에는 졸라 중력이 중력중력하거든요!'라는 기초과학에 해당하는 생각이, 무너지고 사라지게된다.


이것들이 사라지면 우리의 삶은 더 이상 '개인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고 유지할 수 없게 되리란 것은 뻔한 사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레거시들에 늘 관심을 줘야한다. 모든 '사람'이라면 1%라도 할당하자는 것이다.


나는 오늘 본 택시운전사 '김사복'을 통해 그 레거시를 지키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김사복씨에게는 개인의 삶이 중요했다. 딸을 키워야하고, 떠나보낸 와이프의 마지막 유언을 또 지켜야하니까. 그래서 그는 인류에게 주어진 레거시를 지키는 일을 할 수 없었다. 그게 0%여서 안 하는거였는지. 0.0001%여서 안했던것처럼 보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김사복씨는 광주를 방문했다가, 단순한 한 생각의 발로로 그 레거시를 지켜야함을 다시금 깨닫고 레거시를 위해 돌진했다.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아빠가 해야하는 일이 있어'를 통해. 아마도 그 레거시의 재기는 '어떻게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시작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어떻게 사람이

어떻게 사람이 이유없이 사람을 쏠 수가 있지

어떻게 사람이 아픈 사람을 안 도울수가 있지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돈만 받고 끝낼 수가 있지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거짓말을 할 수가 있지


이러한 생각들 모두 레거시로부터 기인한게 아니다. 생각이 먼저 나타나고, 그것들이 발현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당연하게도, 레거시를 거치며 인류의 유산을 지키자가 목적이 되는 듯 하다.


애초부터 레거시라는 것들이. 인류의 유산이란게. 인간이 인간다워지면서 쌓아진 것이니까. 인간이라면 인간이 이래야지라고 생각하면 쌓인 것들이니까. 사람의 삶의 본질을 찾으면서 쌓인 것들이니까. 유별난 것도 아니다. 그저 사람이니까.


레거시가 흔들리는 순간을 목도한 순간, 그것을 위해 돌진했다.

그게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임을 본인도 알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개인의 삶이 중요한 사람이어도, 레거시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엄청난 애국자도 아니고, 엄청난 민주주의 투사도 아니고, 엄청난 자본주의 신봉자 혹은 자본주의 비판자도 아니다. 특정 철학을 수호하는 이도 아니고, 특정 영역에서 이게 무조건 맞아. 라고 하는 이도 아니다.

그렇지만 오늘 김사복을 통해, 내가 레거시를 너무 잊고 산 것은 아니었던가 생각이 든다. 

비단 시위. 집회만이 아니라, 과학의 발전에. 생각의 발전에.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에.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그 무엇에. 그것들을 위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레거시들을 매우 흥미로워하면서, 감사히 여길줄을 몰랐다.

나는 이 레거시들로 세상에 내 이야기를 전하면서, 정작 그것들의 발로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는 이 레거시들 덕에 흥미로운 삶을 추구하고 살아갈 수 있으면서, 그것에 깔린 피의 무게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당장은 내 개인의 삶이 영역이 적어서, 많은 레거시들을 지켜낼 수는 없지만.

항상 이들을 생각해야겠다.






레거시의 첫 번째 뜻이 죽은 사람의 유산. 두 번째 뜻이 과거의 유산이라는 점에서.

나는 이 첫 번째 뜻을 '금수저의 길'로 두 번째 뜻을 '역사 유적지'로만 생각했던건 아니었던지 되돌아보게된다.

레거시의 첫 번째 뜻은 '그 사람이 살아온 길이고, 그 사람의 개인의 삶의 흔적들이며, 그가 두 번째 뜻을 위해 행해온 길들'을 말하는 것이고, 레거시의 두 번째 뜻은 '그렇게 우리가 지키고 지키며 이어나가야할 것들'이라는 것을, 늘 되새겨야겠다.




김사복이 아내의 레거시를 지키며, 본인의 레거시를 지켜냈다는 점에서, 정말 멋진 사람이 아니었는가 생각이 든다. 과연 나는 그런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택시 승객이 '광화문이요'라고 말한 것을 들으며, 김사복과 레거시는 뗄래야 뗄수가 없구나 생각도 들었다.











나는 레거시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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