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 반짝이는 은빛 정원

료안지와 은각사

지난주 두 아이를 데리고 일본 간사이 지역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 유치원생 딸 그리고 저, 이렇게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자유여행팀은 출발 전부터 주변분들의 걱정과 격려를 잔뜩 받았습니다. "아이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해?", "정말 괜찮겠어?", "진짜 대단하네, 남편도 없이 애 둘을 데리고 해외여행을 가다니...."등 많은 우려 속에 저희는 비행기 마일리지와 호텔스 닷컴 마일리지를 태우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미국과 영국으로 장기 출장을 간 남편도 “내가 같이 가야 할 것 같은데..."라며 걱정스러운 한마디를 던졌지만 저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한적한 교토의 유적지를 방문하고 싶은 마음과 일본 간사이 지방에 살고 있는 오래된 친구와 재회하고 싶은 저의 의지는 모든 우려와 걱정을 뒤로하고 아이 둘을 데리고 아침 비행기를 타게 했습니다. 물론 출발 전에 걱정이 정말 많이 되었습니다. '오사카-고베-나라-교토의 5박 6일 일정에 철부지 아이들을 데리고 잘 다닐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제 스스로에게 여러 번 던져보았는데 저는 '하지 않으면 알 수없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출발했습니다.


오사카에서 1박, 고베에 위치한 친구 집에서 1박 그리고 친구 가족과 함께 나라 사슴 공원을 방문한 후 교토에 도착한 저는 교토에서 실현가능한 3박 관광 일정을 구체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사카에서 발이 아프다고 주저앉아 울던 저의 딸을 보며 원래 세웠던 목표에서 현실적인 목적지를 추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교토에서 가장 가고 싶은 장소이자 아이들에게 제일 보여주고 싶었던 장소는 료안지였습니다. 약 12년 전 료안지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신비함과 낯설었던 감정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대학원 시절 건축사 수업 시간에 유현준 교수님께서 료안지는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원이라면서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방문해 보라는 권유를 해주셨었습니다. 12년 전 첫 방문 때는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교수님께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가보라고 하셨을까?'라는 호기심과 의문점을 가지고 료안지에 찾았고 한국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은빛 모래와 바위 그리고 이끼로만 구성된 정원을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하염없이 바라보고 돌아왔습니다. 12년 전에는 한겨울에 방문했었기에 당시 관람객도 거의 없는 찬바람이 부는 사원에서 저 홀로 사색을 시간을 오래 가질 수 있었습니다.



2024년 11월 하순 교토의 료안지



2024년 11월 하순 교토의 료안지, 촬영을 하니 무지개가 찍혔다.



바야흐로 12년이 지났고 저는 두 아이와 함께 교토의 관광 성수기 늦가을에 료안지를 다시 찾았습니다. 서울보다 따뜻한 날씨로 인해 절정에 무르익은 교토의 단풍은 화려한 빛깔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또한 전 세계에서 방문한 관광객으로 인해 료안지를 향해가는 버스는 만원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료안지의 바위 정원에 도착했을 때는 저희 세 명이 앉을자리도 없어 보였습니다. 사람으로 가득한 료안지는 제가 기억하던 그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고요하고 조용한 정원이 아니라 활기가 넘치는 곳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름답고 신비로웠던 은빛 정원은 여전히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유치원생인 저희 아이들의 눈에도 이곳은 아름다워 보였는지 "엄마! 여기는 정말 예쁘다! 이제 우리 사진 찍어 줘야지!"라며 저에게 사진 촬영을 요청했습니다. 아이들 눈에도 아름다운 은빛 정원은 지난 몇 백 년을 유지해 온 지라 제가 다녀간 지난 12년 동안은 큰 변화 없이 그 모습 그대로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료안지의 흙벽으로 둘러싸인 은색 모래 위에 위치한 15개의 바위는 한 시선에서는 다 보이지 않습니다. 깨달음을 얻어야 15개의 바위를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바위 정원은 선불교의 미학을 잘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1450년에 다이묘 호소카와 가츠 모토(1561-1628)에 의해 료안지 사원이 설립되었지만 이 바위 정원이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곳에 불어 들어오는 바람과 빛만이 비밀스러운 시간과 역사를 알 것 같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료안지는 은빛 정원 외에도 주변의 연못과 조경이 정말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교토에 여행할 기회가 되신다면 꼭 방문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료안지의 연못과 단풍



교토에는 료안지 이외에 은빛 모래로 구성된 정원이 한 군데 더 있습니다. 바로 은각사입니다. 일본어로 긴카쿠지라고 불리는 이곳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은빛의 정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는 금각사처럼 건물 외벽에 은색을 칠하려고 했으나 실제로는 행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황금색의 금각사가 주는 장엄함과 달리 은각사는 도입부부터 고요하고 아늑한 인상을 줍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은각사의 정원은 연못과 소나무, 법당과 은빛 모래로 조성된 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래로 쌓아 올린 탑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의 양식으로 시각적인 신선함을 더해줍니다. 일본과 한국은 다르지만 비슷한 면도 많기에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조경과 조형물을 발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더 머무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은각사에서도 저희 아이들은 정말로 아름답고 예쁜 장소라며 매우 좋아했습니다. 교토 철도 박물관과 은각사 중에 가고 싶은 곳을 고르라고 하니 어르신처럼 은각사를 선택한 저희 아이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만족한 것 같았습니다. 12년 전에 방문했던 은각사는 매서운 겨울 날씨로 인해 나뭇잎이 다 떨어진 상태였고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은빛 정원이 더 잘 보였습니다. 늦가을에 방문한 은각사는 붉은색 단풍이 만개한 모습으로 서늘한 겨울의 은빛 정원이 주었던 차분함과 달리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2024년 11월 단풍 속의 은각사



은각사의 은빛 모래 정원



은빛 모래와 작은 자갈로 구성된 은각사의 모래탑




우리는 전통적인 정원이라고 하면 구불구불한 소나무, 단풍나무, 정자와 들꽃으로 구성된 장소를 떠올립니다. 모래와 바위가 형성한 장소를 정원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일본의 전통 정원은 모래와 바위로만으로도 조형적으로 구성된 공간을 포함합니다. 비움의 미학과 사유의 공간으로 자리 잡은 료안지와 은각사는 교토시의 주요 관광지이자 유적지로 많은 관광객의 발걸음이 닿는 곳입니다. 비슷한 듯 하지만 우리와 확연하게 다른 일본 고유의 조경을 체험하시고 싶다면 료안지와 은각사 방문을 추천드립니다. 이 두 곳은 시각적으로 아름다우면서 마음이 평안해지는 장소입니다. 벚꽃과 단풍이 만개한 관광 성수기는 관광하기에 물론 좋은 시기이지만 찬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겨울 시즌이 주는 매력도 큰 것 같습니다. 홀로 시간을 보내고 싶으신 분들에겐 겨울철을 추천드립니다. 저 홀로 방문했던 12년 전의 겨울이 그리웠던 것은 두 아이들에게는 영원한 비밀로 남겨 두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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