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아카이브실 '베를린 컬렉션'
요즘 국악에 푹 빠져있는 아들(초3)과 딸(초1)의 손을 잡고 국립국악원의 국악박물관을 찾았습니다. 3주 연속 속 주말마다 찾고 있는 국악박물관은 다양한 콘텐츠로 방문객을 반기고 있습니다. 악기 체험 위주의 체험실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진 유치원 및 초등학생 어린이들과 동공이 풀린 부모님들로 인해 인산인해입니다. 주중의 한적한 국악박물관을 방문하신 분들이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의 시끌벅적한 주말의 국악박물관은 흥과 정취를 타고난 한국인의 DNA를 보여주는 곳이라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3주간 연속으로 찾은 덕택에 저는 국악박물관의 이모저모를 알게 되었습니다. 1층의 반응형 미디어 전시실 국악뜰, 2층의 악기실, 아카이브실, 명인실, 문헌실 그리고 광란의 체험실. 3층의 기획전시실로 구성된 국악박물관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콘텐츠가 알차고 음악을 다루는 박물관답게 청각자료가 풍부합니다. QR을 통해 자신의 핸드폰에서 악기 소리 및 전통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전시장에 설치된 헤드폰으로도 다양한 자료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음악을 박물관이라는 시각적인 아카이브로 접하는 장소이기에 국악박물관은 다양한 시각적 자료와 청각적 자료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감각이 만족되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국악이라는 전통적인 문화적인 요소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오늘 오후에 접한 국악박물관의 전시콘텐츠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아카이브실에 전시되어 있는 '베를린 컬렉션'입니다. '베를린 컬렉션'은 세계 제1차 대전 중 러시아군으로 참전한 한국인 포로의 육성을 녹음한 것으로 1916년, 1917년에 녹음된 자료입니다. 거의 100년 전의 아리랑, 그것도 전쟁 중에 포로의 노래를 자료화했다는 측면이 놀라운 청각자료입니다. '과연 내가 이 노래를 듣고 알아들을 수 있을까? 러시아군으로 전쟁에 참여한 한국인이라니, 그가 사용했던 언어도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순식간에 종식시키는 '베를린 컬렉션'의 아리랑은 우리가 잘 아는 "아리 아리랑~"으로 시작되는 아리랑입니다. 약 1세기의 시간을 뛰어넘어 저의 귀에 콕콕 박히는 한국인 포로의 아리랑은 가사를 제가 전부다 100% 선명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기본 리듬과 가사를 이해하기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국어 문법 시간에 배운 언어의 특징 중에는 보편성과 역사성이 있습니다. 언어의 보편성이라고 하는 것은 전 세계의 언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나 규칙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언어에 자음과 모음이 있고 문법이 있고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된다는 것이 보편성을 잘 말해줍니다. 역사성이라고 하는 측면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언어가 생성되고 변화되고 소멸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면, 현재 대한민국의 60-70대 어르신들은 남자아이를 보시면 '사내아이'라는 표현을 잘 쓰십니다. MZ세대들은 사내아이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죠. 문학작품 속에서 보던 '사내아이'라는 단어를 서울 시내의 명산을 초3 아이와 함께 찾으면 어르신들로부터 들을 수 있습니다. "아이고, 사내아이가 산에 왔구나~"라고 반겨주시며 간식을 나눠주시곤 합니다.
약 한 세기 전 러시아군 한국인 포로의 입을 통해 전해진 아리랑은 아리랑의 보편성과 역사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아리랑은 경기, 정선, 밀양, 진도 등 지역별로 특색 있는 가사를 가지고 있지만 아리랑이라는 동일한 민요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입을 통해 전해진 아리랑도 청자로 하여금 아리랑을 인식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2000년대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제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의 일부분은 그가 불렀던 아리랑의 역사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한국인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이름을 통해 그의 입을 통해 불리어진 아리랑의 역사성을 국악 분야의 비전문가 청자로 '그 시대 그 지역의 한국인 후예들은 이런 표현을 했었나 보다'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국악박물관의 너무나 인상 깊은 '베를린 컬렉션'은 1916년과 1917년에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녹음된 것으로 민요와 독립군가 음원 그리고 포로들의 신상정보를 담은 기록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재 베를린 민속학 박물관 포노그람 아카이브와 훔볼트 대학교 라우트 아카이브를 통해 기록물의 사본 이용권을 확보하여 국악박물관 아카이브실에서 시청각자료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한 세기의 시간을 뛰어넘은 세계 제1차 대전의 한국인 포로의 아리랑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아리랑입니다. 약 100년 전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한과 두려움이 응축된 시간을 보냈던 한국인 포로들에게 아리랑은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자신을 달래는 시간이자 도구였을 것 같습니다. 그들이 전쟁 후에 고향으로 돌아갔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들의 덤덤한 목소리를 통해 울려퍼지는 강렬한 그리움은 한 세기가 지나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습니다. 국악박물관에 방문하시면 2층 아카이브실에 들리셔서 '베를린 컬렉션'을 감상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화면을 통해 보이는 세계 제1차 대전 한국인 포로의 모습은 너무나 평범한 한국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구성진 목소리를 통해 들려지는 아리랑은 지금도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는 바로 그 아리랑으로 귓가에 맴돕니다.
아리랑은 한국인을 가장 빠른 시간에 결집시키는 노래입니다. 나이, 성별, 국적을 불문하고 아리랑이 들리면 알게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는 존재가 바로 한국인이기 때문입니다. 약 100년 전 러시아군으로 세계 제1차 대전에 참전한 한국인 포로의 가슴을 달래어주었던 그 곡을 지금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민속악 아리랑이 가진 민족성이자 보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1학년인 저희 아이들도 100년 전 한국인 포로가 담담하게 불러내는 구성진 아리랑의 가사를 귀 기울여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가진 전통문화유산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값진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 개인의 라이프 사이클은 길어야 100년이지만 한 민족의 문화는 수세기에 걸쳐 전달됩니다. 문화는 긴 시간에 걸쳐 다듬어지고 응축되면서 독특함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강렬하면서 아름다운 인상을 주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앞으로도 수세기 그 생명력이 강건하게 유지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 합니다.